물에 대한 대낮의 妄想(망상)  _  2009.7.31
내 그림이나 사진에 물이 많다는 분이 계셨다. 더운 계절이 바뀌면 사진이나 그림에서 물이 적어지겠지만 그 말은 분명하다, 나는 물을 좋아한다.

사주팔자를 보아도 물을 좋아하게 생겼다. 여름 7월 대서 무렵에 태어난 불인 내가 서늘한 기운이나 물을 좋아함이 마땅하다. 그러니 운에서도 물을 만나야 풀린다.

주식과 인연을 맺은 지 금년으로서 27 년이 되었는데, 몇 년 전 어느 날 곰곰이 따져보니 내가 주식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는 언제나 가을부터 겨울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또한 金水(금수)의 기운임을 알고 사실 나는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주식에 별 손을 대지 않는다.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큰 기대를 가지지 않는다. 물론 실적도 좋지 않다. 그저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소수의 척후병만 내보낼 뿐이다.

또 대학 다닐 적 관심사 중에 하나가 어떻게 하면 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느 가을 날, 서울대학 문리대가 있던 대학로 시절이었다. 다리를 건너다가 난간에 기대어 그 밑을 흐르는 물을 보고 그만 감탄을 했다.

물 위에는 파란 하늘이 흰 구름과 함께 담겨 있었고, 그 옆에는 개천 바닥의 수초와 이끼서린 바위가 보였다.

어릴 적, 물을 그린 것은 관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냥 물만 그렸던 것이다. 그래서 푸른 색을 풀어 도화지 위에 칠했고 그것으로서 물이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물색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을 가자, 새삼 물을 그린다는 것은 그 위에 어린 하늘과 구름, 바닥의 바위와 수초를 함께 그려야만 물 그림이 된다는 점을 그 날 다리 난간에 기대어 알게 된 것이다.

또 물을 그리기 위해 관찰을 하다보면 물은 한시도 그냥 있지 않는다는 사실도 배우게 된다. 대개의 경우 사생을 하거나 미술실에서 석고상을 놓고 데생을 하다보면 그리는 대상은 그대로 얌전히 있다.

그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림자와 밝은 면을 확인해가면서 그리는 것인데, 물을 그리기 위한 관찰은 전혀 다른 경험을 가져다 준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바라봐도 매순간 변하는 것이 물이고, 끊임없이 변하니 그 모습을 포착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가만 보면 물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늘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닷가 해변에서 파도를 보면 그렇다. 부단히 솟구치며 다가오지만 마침내 부서지고, 그런가 하면 저 멀리서는 다시 새로운 파도가 생겨나 물가를 향해 포말을 날리며 다가온다.

자연의 풍경이라면 있는 그대로를 그릴 수 있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시각에 따라 그림자가 옮겨가고 짙어지기에 어떠한 자연의 풍경도 그대로 있지 않고 그대로 그릴 수 없다. 그러나 대충 얘기한다면 있는 대로 그릴 수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바다나 물은 어느 순간도 제 아무리 빨리 그려도 있는 그대로를 그릴 수는 없다. 사진을 찍어 어느 한 순간의 물 풍경을 도려내어 그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사진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를 그린 것이지 물 풍경 자체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은 앞서 얘기했듯이 그냥 그리면 된다. 눈앞의 산더미 같은 파도는 그리는 순간 무너지지만 나는 그냥 산더미를 그리면 된다. 세부 사항을 관찰하기 위해 다시 다른 산더미 파도를 관찰하면서 계속 그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묘한 느낌을 얻게 된다.

지금 나는 寫生(사생), 즉 있는 경치를 그대로 화폭에 옮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파도 앞에 서서 파도란 이렇게 생겼다고 하는 나의 관념을 그리는 것일까? 또 그렇다면 내가 그리는 것은 무엇이고 또 그린다는 행위는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이미지’란 단어는 어느 한 순간을 잘라낸 것 또는 그것들의 중첩된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준다. 우리 기억 속에 저장된 이미지는 사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저 우리의 정서적 반응이다.

물을 두고 非定型(비정형)이라 하지만, 그 말도 사실이 아니다. 물은 정해진 형을 가지기도 한다. 그릇에 담긴 물은 그릇의 모습을 하기 때문이다.

물의 형태적 실체는 여태껏 그 누구도 규정하지 못한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점점 생각이 몽롱해져간다. 그간의 확고했던 개념과 관념들이 물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언제나 그렇듯 또 다시 해체되고 있다. 물은 확고한 것의 반대이기에 그런 것일까? 더욱 모호해진다.

그만 써야겠다. 분명한 사실은 나는 물을 좋아한다는 점 따라서 물도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물은 언제나 ‘모호함’으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불은 명확하고 뚜렷하지만, 물은 애매하고 또 모호한 것이다.

밝은 빛은 모든 것의 모습을 명백하게 드러나게 한다는 말을 한다. 불 보듯 뻔하다는 말처럼.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일까?

혹시 빛 속에서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또 다른 무엇이 있건만 빛을 통해서만 보는 우리의 한계 저편이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든다.

그리고 빛을 통해 보지 못하는 것들이야말로 물의 精靈(정령)을 지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혹시 귀신도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전페이지로    목록보기            이 글 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