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 달러의 앞날에 대해  _  2009.10.4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기축통화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오늘은 달러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해보는 글을 마련했다.

찍어내면 즉각 모든 나라가 받아주는 돈이 되는 달러, 이 얼마나 기막힌 도깨비 방망이인가! 금 나오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식의 달러인 셈이다. 그러니 다른 나라들은 나름 불만이 많다. 특히 외환보유고 중에 달러가 엄청 많은 중국과 일본의 불만은 여간하지 않다.

그래서 장차 중국이 급 발전하면 달러의 지위를 위협할 거라는 말도 무성하고 아무래도 유로화가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만만치 않게 들리고 있다.

이에 달러의 위상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달러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반론도 여전하다.

그런데 달러를 남발하고 있는 오늘날 미국의 행동에 대해 단순히 횡포라 말하거나, 또 제국주의 미국의 무력에서만 이유를 찾는다면 그저 ‘역사를 모르는 바보’라 말하겠다. 횡포라 쳐도 다 횡포를 부릴만한 근거가 있는 법이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이유를 알아보자. 어째서 달러가 그런 엄청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달러가 금 대신 국제간의 결제통화인 기축통화로 채택된 것은 1944 년 미국의 ‘브레튼우즈’란 작은 마을에서였다.

제2차 대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국 측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당시 44 개국의 재무장관이 이 마을에 모여 전후의 국제질서와 무역질서를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금값에 연계된 달러-이를 금환본위제라 한다-가 기축통화로 결정되었고,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과 전후 부흥을 위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 탄생했다.

브레튼우즈 협정을 통해 미국의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었지만, 확고하게 기축통화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다른 계기란 바로 ‘마샬플랜’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은 잿더미로 변했고, 자연히 권력은 미국과 소련이 쥐게 되었다.

이에 1947 년이 되자 미소간의 경쟁구도가 자연스레 첨예화되었으니 냉전의 시작이었다.

미소 냉전은 결국 누가 유럽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느냐로 귀착되었다.

이에 미국은 폐허가 된 유럽을 방치하면 결국 불만이 늘어나고 결과 공산주의 혁명에 동조하는 세력이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무언가 손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사회주의적 분위기가 강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문제였다.

동시에 유럽의 경제가 지지부진하면 결국 달러 부족으로 미국의 물건을 수입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미국의 경제도 타격을 받는다는 계산도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유럽을 빠른 시일 내에 재건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이 통합되어야만 또 다시 제2차 대전과 같은 참화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이에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재무장관 조지마샬 장관을 시켜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유럽 원조계획을 수립했으니 이른바 ‘마샬플랜’이었다. 동시에 소련의 위협을 미국이 지켜준다는 투르먼 독트린도 발표함으로서 유럽의 심리적 안정을 기했다.

미국의 특징이자 커다란 장점은 영토적 야심이 없는 해양제국이라는 점이다. 그런 미국이기에 유럽을 원조하되 유럽의 통합은 유럽인들의 손에 맡기고자 했다. (반면 소련은 대륙 국가답게 영토적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당초 미국은 동구권을 포함한 모든 유럽을 대상으로 했지만 당연히 소련이 점령하고 있는 동구권은 참가하지 않았고, 참가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서유럽 16 개국이 모여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를 통해 ‘마샬플랜’은 1948 년부터 실행에 옮겨졌다. 마샬플랜 이전에 지원했던 90 억 달러에 더하여 다시 130 억 달러의 집중적인 자금이 서유럽에 무상으로 투입되었다.

이 액수는 그간의 인플레이션과 금생산량을 감안하면 아마도 지금의 몇 조 달러 어쩌면 십 수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이를 발판으로 1949 년 미국과 서유럽간의 방위동맹체인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만들어 소련의 위협에 대처했고, 동시에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에 영향을 미쳐 오늘날의 유럽 공동체인 EU 결성에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는 나중에 1961 년 미국과 캐나다가 들어가면서 소위 ‘선진국클럽’인 OECD가 되었다. (참고로 우리는 1996 년 OECD에 가입했다.)

마샬플랜을 통해 기술과 인적 인프라가 살아있던 서유럽은 삽시간에 부흥했으니 세계의 노른자위인 서유럽에서 미국은 소련에 대한 결정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20 세기 초까지 지식과 문명수준이 가장 높았던 서유럽을 잃게 된 소련은 그 이후 주로 후진국과 과거 식민지지배로 시달림을 받았던 나라들을 대상으로 사회주의적 민족해방사상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서유럽, 그리고 아시아에서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폴과 타이완, 대한민국 등을 급속히 부흥시킨 미국의 우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1991 년 소련 자체가 붕괴하면서 냉전은 끝이 났다.

미국의 소련 봉쇄는 한 때 위태롭다는 말도 있었지만 끝내 흔들리지 않고 성공했던 것이고 그 시발점은 바로 마샬플랜이었다.

마샬플랜을 통한 엄청난 원조가 있었기에 서유럽과 여타 신흥국들이 꼼짝 못하고 오늘날 달러의 횡포를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받아먹은 것이 있으니 미국이 다소 횡포를 부려도 빚갚음하는 셈치고 얌전히 있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미국이 서유럽을 통째로 매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1970 년대 들어 미국은 월남전에서 원기를 지나치게 소모했고 더 이상 달러를 금값과 연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1971 년 어느 날 당시 닉슨 대통령은 갑자기 ‘앞으로 달러는 금과 연계 안 해, 그냥 더 찍고 싶으면 우리가 그냥 찍을래’ 하는 선언을 했다. 달러 불태환 선언이었다.

1971 년은 그렇다면 우연일가?

음양오행으로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60 년 주기는 12 년씩 다섯 개로 나눌 수 있는 바, 24 년이 지난 시점, 따라서 40 % 지점에 가서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어있다.

1947 년에 24 년을 더하면 바로 1971 년이 된다.

따라서 기축통화인 달러를 금에 연계하는 것이 더 이상 무리라는 것이 이 시점에 가서 자명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1947 년에서 60 년 한 주기를 더하면 2007 년이 된다는 점도 기억해두시길, 이 글의 말미에 이에 대한 해석이 있을 것이니.)

돌아와서 닉슨의 ‘달러 불태환선언’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은 고정환율제도에서 벗어난 환율의 파도가 거세게 요동치는 험한 바다가 되었다.

모든 나라가 달러에 대해 자국의 통화를 싸게 유지함으로서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는 정책을 택하게 되었다. 미국도 지은 죄가 있는지라 각 나라의 환율조작을 알고도 눈 감아 주었다. 특히 소련이 붕괴하기 전인 1991 년까지 미국은 자기 진영을 붙잡아두기 위해 이 점에 대해 대단히 관대했다.

환율 조작으로 재미를 본 나라는 어디 한 둘이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물론 일본도 그렇고 독일도 그러하며 대표적으로 중국은 엄청난 이득을 보았고 그로서 발전했다.

제2차 대전 이후의 모든 경제적 번영은 미국의 ‘작품’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미국 시장에 진출함으로서 달러를 벌어들였고,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국가가 되었다.

이에 미국은 1995 년 WTO 창설을 통해 새로운 글로벌리즘을 가동하고 있으나 이미 미국의 힘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는 어떤 면에서 미국의 성공적인 대외 정책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나라는 이슬람권과 쿠바를 비롯한 남미지역,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북한 밖에 없다. 그러니 북한 김정일은 저토록 미국의  ‘바지가랭이’를 물고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혹자는 호호당은 상당한 ‘친미주의자’라 여길 분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현실의 역사를 얘기하고 있을 뿐, 일방적인 친미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미국문화와 서구 문화의 일방적 수용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2004 년 무렵 기금을 지원해 줄 테니 미국에 와서 음양오행을 강의하고 연구해달라는 미국 유력 재단의 제의를 거절한 적도 있다.

당시 생각에 미국에서 강의하고 이빨 좀 풀어 반응을 좀 얻고 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엄청 뜰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음양오행은 미국 사람들이 더 철저하게 연구해서 미국의 물건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거절했다. 내 눈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을 향하지 다른 세계를 향하고 있지 않다.)

이제 기축통화 달러의 앞날에 대해 정리할 때가 되었다.

2007 년에 발생한 서브 프라임 사태는 1947 년으로부터 60 년만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축통화 달러의 시대, 달러 패권 시대는 이미 한 세월을 보낸 셈이고 그 위상에 상당한 변화조짐이 생기고 있다.

오바마가 중국을 설득해서 미국 국채를 팔지 못하게 하고 그 대신 G 2 라는 엄청난 훈장을 달아준 것도 결국 달러의 위상 약화를 반영하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말을 하지만 나는 이번 사태가 지나가는 일이 아니라 본다. 이번 문제는 미국의 위상에 근본적인 변화, 아울러 기축통화 달러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현상이라 본다.  

그러나 달러가 기축통화의 위상을 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47 년의 마샬플랜과 같은 엄청난 ‘베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기축통화 달러는 거의 모든 인류에게 혜택을 가져왔기에 그만한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니, 오늘날 유로화나 위엔화, 또는 엔화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마샬플랜과 같은 대가를 지불할 힘이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얘기이다.

중국? 어림도 없다. 유럽, 이미 노쇠한 연합체이고 엔화? 저 얍삽한 계산으로는 어림 반푼 어치도 없다 하겠다. 그러니 아직은 달러인 것이다.

절대적인 군사력은 물론 베푼 은공이 없으면 기축통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의 위상이 이대로 갈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모든 변화는 바로 60 년에 다시 12 년을 더한 시점, 따라서 1947 더하기 72 하면 2019 가 된다. 따라서 2019 년에 가면 달러의 위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새롭고도 결정적인 변화가 구체화될 것이라 본다.

그냥 달러 기축통화는 아닐 것이고, 아주 기묘한 타협이 제시되리라 본다. 달러를 기본으로 하고 유로화와 위엔화, 엔화를 각각 가중치를 주는 그런 방식의 기축통화가 제시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누가 미래를 구체화시킬 수 있겠는가? 미래는 열려있다.

(사실 이 글은 '새로운 시대가 준비되고 있다' 시리즈에서 미국에 의한 글로벌리즘을 보충 설명하는 글이기도 하다. 마샬플랜에 대해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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