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에 대한 내 나름의 기준  _  2009.7.7
화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소화도 할 겸 가는 곳이 책방이다. 원래 월요일 오후였는데 사정이 생겨 날을 변경했다.

늘 가는 교보문고 강남지점, 주 초반 오후의 책방은 공기마저 한가롭다. 난 서점을 내 개인 서재로 여긴다, 딱지 몇 장만 주면 마음대로 책을 골라 가져올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난 이미 성공을 해도 한참 성공했다. 30 대 초반, 은행원이던 시절 삶의 목표는 마음대로 책을 사보는 것이었다. 당시 종로서적에서 나는 읽고픈 책을 골라놓고 요모 저모 면밀히 따지면서 책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곤 했다. 책을 고르고 돈을 따지다가 그만 현기증을 느끼고 돌아온 날 밤, 심정을 써놓은 일기장이 아직 내 서랍 속에 있다.

책을 고르는 버릇과 기준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워낙 숙련된 솜씨에 경제적 여유로 하여 이제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게 변했을 뿐, 여전히 세상 모든 것을 책값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고방식은 그대로이다.

가령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몇 만원을 지불하면 아, 좋은 책 세 권 정도 허공에 날렸구나 하는 생각은 늘 하며 산다. 그러니 하루 저녁 룸살롱에서 수백만원을 쓰는 친구를 만나면 이해는 물론 하지만 피차 사실상 외계인이다. E.T. each other!

내 관점에서 좋은 책의 기준은 이렇다. (물론 읽고픈 마음이 있어야 하지만 나는 원체 다방면이라 중요하지 않다.)

첫째, 면당 글자들이 촘촘히 들어가 있는가? 특히 지식에 관한 책은 이 점이 중요하다. 글자가 크고 간격이 널널한 책은 또 다른 기준을 만족시키지 않는 한 사지 않는다.

줄당 30 자, 면당 27 줄이면 한 면당 810 자 정도, 면수는 450 정도 되는 책에 가격이 2만원 정도면 아주 흡족하다. 전체 글자 수가 364,500 자이고 2만원으로 나누면 1원당 18 자 정도 된다. 나는 1원당 15 자 이상이면 좋은 책으로 친다.  

도서출판 ‘까치’에서 나온 책이 대표적이다.

둘째, 글자간격과 행수가 적을지언정 좋은 그림이나 보기 드문 圖解(도해)가 들어있다면 좋은 책이다. 특히 좋은 도해는 엄청난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 나는 '알기 쉬운 한국건축용어사전’이란 책을 샀다. 동녘이란 출판사인데, 도해와 삽도가 너무나 뛰어나다. 내용이나 글자 수도 많다. 정성이 깃든  아주 훌륭한 책으로 가격은 24,000원, ‘베리’하고도 ‘굿’이다. 구웃-.

셋째, 주로 번역서들로 조금만 지나면 절판될 가능성이 한 눈에 들어오는 책이다. 예를 들면 오늘 산 ‘국가정보’, 원제는 Intelligence 인데, 바로 이런 책에 속한다. 이 책은 국가정보기관의 활동에 관한 내용, 정보의 실질적인 수집과 처리과정에 관해 오랜 실무 경험을 지닌 전문가가 지은 책이다.

이런 책은 보나 마나 조금 지나면 절판이 된다. 그러니 가격이 다소 높아도 일단 사고 볼 일이다. 대단히 소중하고 귀한 정보와 지식을 담고 있으니.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은 주로 서점의 구석에 먼지 쌓인 채로 잠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보도 없지만, 처음 출간 당시 신문에서 소개해주면 나는 신문을 찢어 책상에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며칠 지나 가보고 있으면 산다. 번역하신 분의 노고와 출판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긴다.

마지막으로 장정이 예뻐서 가지고 싶은 책이다. 주로 문학소설이다. 몇 년 사이 핸드백에 넣고 다닐 크기로 하드 카버에 그림이 인쇄된 껍데기를 씌운 예쁜 책이 유행이다. 대표적 예로 ‘열린책들’에서 나온 ‘장미의 이름’을 들 수 있겠다.

소장해도 좋고 소설 중에서도 고전성이 있는 책들이어서 훗날 늙어 난롯가 주변을 지키며 살게 될 때 다시 꺼내어 읽으면 좋겠다는 환상을 품게 하니 욕심이 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책을 사면 자꾸 서재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그 또한 일인데 말이다.

이상이 좋은 책에 대한 내 나름의 기준이다.

책을 사들고 나오는 출구 회전문 근처에서 젊은 아가씨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언니는 책 안 사?”
“난 책과 친하지 않아.”

앗, 드디어 책방에서 책과 친하지 않다고 실토하는 사람을 만났다. 갑자기 이방인같이 느껴졌다. 곁눈으로 신속하게 그러나 자세히 얼굴과 전체를 살폈다. 아, 저런 모습이 책과 친하지 않구나! 하면서 계단을 올랐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책과 친하지 않다고 해서 비난하지는 마시길, 그저 생활 속에서 조우하는 신선한 충격이었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따지자면 이방인은 바로 호호당 자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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