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그리고 공중전화 遺憾(유감)  _  2009.9.13
나는 휴대전화와 자동차,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다. 억지로 말을 만들면 ‘3무시정책’이다. 3무시는 3無C이니 Cellular Phone, Car, Card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고, 언젠가 글로 쓴 적도 있다.

내가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이유는 무척 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전화를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밤 9 시 이후에 집 전화벨이 울리면 아버님은 무척이나 싫어하셨다. 야심한 시간에 울리는 전화는 응급한 내용일 수 있어 꺼려하신 것인데 그 영향을 받았던 것이 주된 원인이라 여긴다.

또 전화가 싫은 이유는 무단히 내 생활과 활동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전화는 본질적으로 인터랍트(interrupt), 개입일 수밖에 없다. 사무실이든 집이든 늘 생각에 빠져있거나 일에 집중하는 편인 나에게 불쑥 울리는 전화벨은 리듬을 끊고 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특히 얘기할 수 있는 형편인지 아닌지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자신의 말부터 늘어놓는 경우를 두어 번 당하고 나면 그만 지쳐버린다. 비서를 두라고 농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니.

전화 자체를 싫어하는 나는 어떤 사람과 약속을 할 경우에도 한 번 시간과 장소를 정하면 다시 그 일로 전화하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그래서 약속 변경을 하는 일이 생기면 그 일 자체에 대한 흥미 자체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요즘 사람들이 만나는 경우를 지켜보면 일단 대충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정작 찾아갈 즈음에 다시 전화해서 장소를 묻는 일이 흔하다.

횡단보도 건너니? 앞에 빨간 건물이 있는데 거기서 어디로 가니? 등등 전화로 활발하게 통화를 한다. 반면 나는 장소를 찾아갈 때 반드시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한 다음 그냥 그 장소로 직행한다.
외출할 때면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꽤나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니 휴대전화를 좋아할 까닭이 없다.

걸려오는 벨 소리를 무시하는 것도 힘들고, 진동 역시 그 울림을 못 견뎌한다. 어떤 물건이이라도 책이 아닌 경우이면 들고 다니길 싫어하는 성미도 한몫 거들고 있다. 그러니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전화를 들고 다니지 않으니 세상 흐름과 동 떨어지게 되는 부작용도 있지만 나름의 편안함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나는 기억력이 무척이나 좋은 편이지만 전화를 싫어하다보니 전화번호를 외우는 일은 정말 서툴다. 아무리 암기하려 해도 잘 외워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약속 장소를 찾아갈 때는 사전에 쪽지에 상대의 전화번호를 적어서 주머니에 넣고 나간다. 혹시라도 착오가 있을 경우 공중전화를 사용하고자 함이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길에는 공중전화가 드물다는 사실이고, 또 있다 해도 먹통인 경우가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상대에게 연락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느라 한참을 걷게 될 경우도 제법 있다. 찾아낸 공중전화가 먹통일 경우 또 다시 공중전화를 찾게 될 확률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일단은 투덜거린다. 아이, XXX, 한국은 외국 관광객은 아예 무시하겠다는거야 뭐냐, 관광한국이 허울뿐이구만 등등 하면서.

사실 공중전화를 쓰는 이는 외국인이나 학생, 군인이 거의 전부일 것이다. 여기에 50 대 중반의 성미 괴팍독특한 내가 추가되는 셈이고.

수익사업이 아니다보니 물으나 마나 한국통신은 저렴한 비용의 외부용역업체에게 일을 맡겼을 것이니 당연히 공중전화는 툭하면 먹통이다.  

그러나 살아온 세월이 있는 내가 그리 당황하는 일은 별로 없다. 지나가는 행인 중에서 약간 인상이 좋고 급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화 한 통 쓸 수 있겠냐고 부탁을 하다보면 거의 쓸 수 있다는 사실.

휴대전화가 천지에 깔린 세상이라 문제는 또 있다.

어딜 가도 시계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공공장소에 가도 상점에도 그럴듯한 식당을 가도 벽걸이 시계는 거의 없다. 모두 휴대전화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시계를 가을부터 초여름까지는 차고 다닌다, 물론 가죽 끈 시계라 여름에는 차지 않는다.

그러니 얼마 전에는 시각을 알 수 없어 약간 당황했던 적도 있긴 하다.

그런 나에게 ‘아예 세상에 계속 반항하며 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면이 내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재난 영화를 보면 모든 문명 시설이 중단되었을 때 주인공이 살아남는 영화를 즐기는 편이다. 나는 늘 문명의 편익 중에서 아플 때 필요한 약과 책, 인터넷을 제외하고는 거의 혐오하는 편에 속한다.

자동차나 운반 기구가 별로 없다 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다. 없으면 거기에 맞춰 미리 출발하거나 걸어가면 되는 일이지 뭐 하는 식이다.

외국? 담배도 피우지 못 하는 비행기 까짓 거 안 탄다 안 타! 배는 물론 멀미가 있어 안 탈 것이고. 프리미엄 아파트? ‘안’ 프리미엄도 얼마든지 지낼 수 있다. 그저 배 고프지 않고 잠 잘 수 있으며 책만 약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독특한 사상을 지닌 나인지라, 카드도 쓰지 않고 차도 없고 게다가 휴대전화마저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안티 GDP’ 라 여긴다.

우리나라 GDP가 2 만 달러 운운하지만 내가 보기에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4000 달러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머지는 죄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로 여긴다.

그러니 카드? 내 돈 쓰면서 빚부터 지는 카드가 싫다는 것이고 요금 청구서 뜯어보는 일 없으니 편하고 쓰레기 유발하지 않으니 자원절약이다. 뭐 나쁜 것 같지 않다.

자동차? 돈 절약하고 기름 절약하니 애국 시민이다.

휴대 전화 없으니 역시 돈도 절약이고 성가시게 방해받을 일 없으니 평강을 누리겠다는데 뭐 어째서 하고 나름 명분은 당당하기만 하다. 그저 약간의 불편만 감수하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그저 바라옵건데 대통령님, 저 때문이 아니라 관광한국의 이미지 제고와 외국인 노동자의 편익, 불쌍한 군바리들을 위해서라도 공중전화 증설과 시설 유지는 영리 차원이 아니라 공익 차원에서 좀 더 잘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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