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제운영 기술에 대한 비판  _  2009.9.24
프리스타일 제171회를 통해 ‘제발 금융게임에 휘둘리지 말라’는 얘기를 했다. 이 글은 이어지는 글이기도 하다.

2003 년 초 등장한 노무현 정부가 높이 쳐든 깃발은 사회적 약자의 보호와 모든 국민과 계층이 참여하는 새 시대의 개막이었다.

그런데 왜 거액의 주택 담보대출과 모기지 론이라는 위험한 제도의 도입을 통해 결과적으로 부동산 버블을 조장하는 엄청난 자충수를 두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말을 했다.

이 글은 이 부분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勢(세)를 받아야 탄력을 얻는바, 그것은 결국 票(표)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투표를 통한 대의민주정치가 갖는 가장 큰 약점이라 하겠다. 자충수를 둔 것 역시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 본다.

1997 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은 더 이상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대기 보다는 기존의 사업을 최대한 살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돈을 빌려서 판을 벌리는 ‘차입 경영’의 시대가 끝난 것이다.

이에 따라 신규 채용은 대폭 줄어들기 시작했고, 아울러 상당수의 인력자원을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발하고 양성하는 방향으로 갔다.

기업의 신규 사업 진출 축소는 그로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나라의 성장세 자체가 멈추게 되어있다.

경제란 결국 자원이 기업으로 흘러들고 그를 통해 생산이 늘어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때만이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이론이다.

그러니 1998 년 무렵부터 우리 기업들로 흘러드는 돈, 즉 借入(차입)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성장이 멈추게 된다는 얘기와 같다. 음양오행의 이론에 의하면 그 시차는 정확하게 12 년이다.

따라서 1998 년 초로부터 12 년을 더하면 2010 년 초가 된다.

따라서 나는 우리 경제가 내년 초부터 정체 상태로 들어갈 것이며 이에 따라 미래성장을 반영해서 부풀려진 자산 가격들은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 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부동산 가격을 꼽고 있다.

그러나 2004 년 무렵부터 국내 경제의 성장세는 이미 둔화조짐을 나타내고 있었다. (2010 년은 성장의 정체가 최종 확인되는 시점이고 상당수 전문가들은 그 기미를 느끼고 있었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국가 재정의 적자 폭을 최대한 키우면서 서민층을 지원했고 아울러 경기 부양책을 적극 모색했다.

바로 이 대목, 경기부양이라는 현대 경제학에 기반을 둔 경제운영기술이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경기부양이란 경제의 기본적 성장세가 건전한 가운데 일시적인 충격이나 정체를 메우는 데 사용된다면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일종의 충격 흡수책으로 말이다.

가령 증시가 잘 오르다가 외부 충격으로 급락을 보일 때 연금기금 등이 매수세로 뒷받침을 하면 증시는 회복되고 다시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증시 상승이 근본적으로 이유가 없고 오로지 돈의 일시적 유입에 의한 머니 게임의 형태를 보이는 상황에서 급락이 온다면 그것은 연금 기금 등이 나서서 장을 받칠 것이 아니라 정상적 조정 내지는 하락을 인정해야 무리가 생기지 않는 법이다.

2004 년 무렵부터 우리 경제는 수 십 년 동안의 성장을 통해 적지 않은 富(부)가 쌓여 있었지만 그것은 ‘축적’의 개념이고 ‘흐름’의 개념인 성장 자체는 정체되고 있었다.

쉽게 설명하면 그 부는 은행에 예금의 형태로 예치되어 대출 자원으로 쓰였고, 대출은 주로 기업 투자로 선순환된 것이 아니라 소비 방면으로 들어갔으니 이는 양극화만 더욱 촉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경기부양을 실시했던 바, 그것은 경제 자체가 성장하는 경우가 아니라 돈의 일시적 유입을 통한 머니 게임에서 나타나는 증시 상승을 억지로 떠받치기 위한 기금의 매수와 같은 것이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 역시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부양책을 실시하게 만든 배경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 부양책은 사실상 최후의 수단이 되었으니 미래 수요를 앞당겨 소비로 전환하는 방식이었다.

10 년 뒤에 살 집을 당겨서 사고 내년에 살 자동차를 금년에 사면 내년이면 차가 팔리지 않을 것이고 10 년 동안 집이 팔리지 않는 것이다.

특히 내수 기반 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최후적인 수요는 바로 주택이다. 왜냐면 주택이야말로 가장 고가의 내구성 소비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계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고가의 소비재를 한 번 사고 나면 더 이상 사는 법은 드물다.

그렇기에 집이란 한 번 사고 나면 도중에 이사를 통해 변경하거나 갈아탈 수는 있어도 집을 두 채씩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이 무렵 등장한 고가의 브랜드 아파트는 이전의 아파트와는 가격대부터 전혀 달랐고 인테리어도 엄청 고급이었다.

더욱 비싸진 아파트인지라 누구나 함부로 살 수 없는 것이었는데 이를 거액의 담보대출을 통해 소비하도록 만든 것이 모기지 론이고 거액의 담보 대출이었으니 당시 정부는 경기 부양책 중에서 가장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던 셈이다. 물론 집을 구매하는 쪽으로 돈이 몰려드니 부동산 상승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더 이상 살 돈이 없어지면 심하게 하락할 것이고.)

경제 측면에서 대출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가이자 최후의 소비재인 주택구매가 활황을 보이고 나면 경제가 정체되는 기간이 비교적 단기에 그친다.  

하지만 엄청난 거액의 대출을 통해 시장에 나온 주택상품을 소비시키고 나면 경제는 장기간에 걸쳐 불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이는 상식이라 하겠다.

20 년 분할 원리금 상환대출이란 말은 대출을 쓴 사람의 입장에서 20 년간은 다른 소비에 대해서는 꼼짝도 말라는 얘기와 같다.

거기에다 우리의 경우 엄청난 학비 부담이란 또 다른 질곡이 옭죄어오고 있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금융위기를 유발한 것은 서브 프라임 대출이었다.

이 대출은 간단히 말하면 집을 살 여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집살 돈을 전액 대출해 줌으로서 경기를 부양한 것이었다. 미국 경제가 더 이상 탄력을 보이지 않자 시도했던 마지막 부양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금융 위기는 예정된 사실이었다, 지금에 와서 다 들 시치미 뚝 떼고 있지만.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2004 년 당시 브랜드 아파트 붐을 통해 경기를 부양한 것은 우리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가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텔레비전에까지 출연해서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고 읍소하는 장면을 보면서 아, 저 양반은 왜 집값이 오르는 것인지 정말 모르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집값을 올리고 있는 것은 부양책을 실시하고 있는 건교부 관리들이고, 저 양반들은 바로 대통령의 부하들인데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으니 이런 블랙 코미디가 어디 있나 싶었다.

물론 노 대통령은 경기부양에 동의했을 것이다. 이에 관료들은 대통령의 뜻을 받을어 경기부양책을 썼을 것이고.

그러니 상상에 불과하지만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의 경기부양책이 부동산 상승을 불러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 양반 성격에 하지 않았을 것이라 여긴다. 선이 굵은 사람이었으니 눈앞의 표에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라 본다.

한편으로 정권을 만들어낸 정치 세력들이 경제에 문외한이었다는 사실에서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경제는 2004 년을 계기로 향후의 소비 기반을 송두리째 뽑아먹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에 작년부터 미국 발 경제불황으로 인해 정부의 재정 적자는 현 시점에서 축소할 엄두도 나지 않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경제는 지난 1998 년부터 돈이 기업으로 흘러들어가서 생산적으로 활용되지 않고 민간 소비로만 흘렀던 것이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과소비를 유발했다.

주택도 과소비, 교육도 과소비, 달러 약세로 인해 해외여행도 과소비, 모든 방면에서 오로지 과소비 일색이었다.

그것이 바로 웰빙 붐이었고 럭셔리 풍조였다.

그 결과 지금에 이르러 우리 경제 상황을 보면 사실 정부도 돈이 없고 가계도 소비 여력이 없다. 오로지 일류 기업들만이 여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돈 많은 기업들에게 돈을 내어놓으라고 말하는 것은 최악의 발상이 될 것이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황금 알을 빼내는 거나 같은 어리석음이다.

지금 미국이 돈을 찍어 경기를 부양하고 있다. 이야말로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발상이라고 나는 여긴다.

미국 경제가 아직 탄력이 남아있다면 이 방법도 가능하다고 보지만, 서브 프라임이라는 상식 이하의 부양책까지 쓰면서 경제를 골병들게 만든 오늘에 와서 돈을 풀어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발상은 골골 하고 병들어 생명이 소진되어 가는 영감님에게 섹시한 아가씨를 첩으로 들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버냉키는 1930 년대의 대공황에 대해 돈을 찍어 풀었다면 넘길 수 있었다는 이론을 통해 명성을 얻은 사람이지만, 웃기는 것은 당시 미국 경제는 엄청난 탄력 어쩌면 그 탄력이 너무 거센 바람에 맞이했던 대공황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당시에 그런 돈을 찍어 경기를 부양했다면 분명 먹혀들었을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시들어가는 미국 경제, 더 이상 기초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마당에 돈을 찍는 것은 노쇠한 몸이라고 무조건 혈압 강화제만 쓰는 것과 같은 조치일 것이니 가소롭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버냉키’의 양적 완화 정책은 엄청난 후유증만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판단하고 있다.

우리 경제 역시 그렇다.

정치를 떠나 경제만을 놓고 말한다면 우리 역시 2004 년부터 연착륙 정책을 통해 경기하강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경기하강을 유도하는 것은 비록 인기가 없는 정책이지만 서서히 진행할 경우 큰 고통을 수반하지 않고 후유증도 훨씬 덜했을 것이다.

미국은 지난 10 년간 엇나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엇나가고 있으니 대가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이 간다.

우리 역시 지난 10 년간 과소비를 통해 경기부양을 했으니 더 이상 아무 여력이 없다.

빚만 없어도 부자일 수 있는 때가 오고 있다.

(이 글이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도 있겠지만 천천히 읽어보시면 이해가 가시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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