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은 왜 결혼에 잘 실패하는 것일까?  _  2009.3.28
무거운 주제만을 다루지 말고 재미있는 얘기도 해달라는 독자분의 요청이 있어서, 오늘은 좀 자극적이고 재미난 이야기를 막간극으로 소개할까 한다.

왜 연예인이나 예술 하는 사람들은 결혼생활이 일반인보다 불안정할까 하는 의문에 대한 명리학적인 설명이 오늘의 주제다.

어느 사람의 사주팔자를 본다는 것은 크게 나누어 다섯 가지 성향의 배합(combination)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보아서, 그것들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 어떤 변화 과정을 밟는가를 따져보는 일이다.

그 다섯 가지란 1) 그 사람의 자아 내지는 에고(Ego), 2) 외부 세계에 대한 자아의 주장 내지는 표현(이것이 강하면 적극적인 성격이 된다), 3) 물질에 대한 지배욕, 4) 자기 통제력, 5)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수용력이다.

그런데 사주란 지난 번에도 얘기했듯이, 무려 1백4만 가지나 되지만, 결국은 이 다섯 가지 성향의 배합에 지나지 않는다. 이중 대표적인 성향과 부수적인 성향 하나가 결합되어 그 사람의 색깔을 결정짓는다. 흔히 말하는 개성이 된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성향마다 4개의 보조 성향이 있을 수 있으니 전체하면 5 곱하기 4 해서 20 가지가 된다. 물론 이것은 대단히 간단한 분류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주된 성향마다 목화토금수의 다섯 가지 경우의 수가 주어지므로 20 곱하기 5 해서 결국은 100 가지 성향으로 분류되는데 대략 사주 팔자를 볼 때는 이것에 기초해서 그 사람의 성격과 운명을 판단하게 된다.

주된 성향별로 대표적인 직업을 보면 1) 자아나 에고가 강한 사람의 대표적인 직업은 정치가이다. 2) 외부 세계에 대한 자기 주장 내지는 표현이 강한 사람은 예술가나 탤런트, 배우, 운동선수, 3) 물질에 대한 지배욕은 사업가, 부자, 4) 자기 통제력의 대표 선수는 공무원, 관리자, 5) 외부로부터 수용력이 좋은 대표 선수는 학자, 종교인이 된다.

가령 여기서 학자의 경우, 주된 성향은 5)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수용력이 기본이지만, 부수 성향으로 2) 외부 세계에 대한 자기 주장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학문을 깊게 연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외부 세계로 표현하게 되니 저술이나 발표를 통해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부수 성향으로 4) 자기 통제가 있으면 그 사람은 자신의 연구가 철저하고도 완벽해질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어내니 저술 활동은 적고 그다지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수줍고 소심한 학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순금(純金)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익혔으니, 연예인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연예인들이나 예술인들은 다섯 가지 성향 중에서 특히 2)번 성향, 즉 외부 세계에 대한 자기 주장이나 표현이 주된 성향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잘 노는 경우를 두고 참 신명나게 논다고 말한다. 신명나게 논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내부에 들어있는 감정이나 정열, 아이디어, 생각들을 외부 세계로 잘 표출하는 것을 뜻한다. 연기력이 좋은 배우나 탤런트 가수, 표현이 좋은 화가나 음악가 들은 모두 이같이 2)번 성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2)번 성향이 좋은 사람 중에서 특히 화려한 은막이나 브라운관의 스타라든가, 화가들은 주된 성향의 오행이 목이나 화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중에게 호소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엄청나게 강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안고 살아야 하는 문제점은 대개의 경우 4)번 성향, 즉 자기 통제력이나 5)번 외부로부터의 수용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자기 통제가 강하면 쉽게 자기 속의 것을 외부로 발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용력이 강한 사람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고 표현하기보다는 이해하기에 바쁜 사람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2)번 성향, 표현력이 좋은 사람들이란 생리 작용에서 배설 작용이 강한 사람들이다. 배설 작용이 강하다 보니 때로는 경박하기 쉽다. 속으로 들어온 것이 소화되어 자기 것이 되기도 전에 배설해 버리는 행위, 이를 우리는 경박하다고 말한다.

흔히 영화에서 보면 어느 무명 천재 화가가 캔버스에 물감을 옮기다가 잘 안 되는지, 붓을 집어던지고 캔버스를 북북 찢어 버리는 광경이 나온다. 이는 자신의 속에 있는 그 무엇을 자신의 개성을 통해 강력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몸부림과 그 절망을 나타낸다. 가수들이 녹음실 안에서 같은 노래를 수 천번 반복해서 부르는 모습도 종종 등장한다. 같은 광경이다. 모든 나머지 것을 던져 버리고, 오로지 표현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자아 전체를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세상에 던지는 행위다.

그리고 이런 광경도 영화에 잘 나온다. 천재 화가가 사랑을 해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 생활이 실패로 돌아가서 위스키를 병째로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 인기가 시들해진 배우가 곤경에 빠져 있는데 사랑하는 아내마저 떠나가 버리는 모습. 영화에 잘 나온다는 것은 개연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들은 결혼 생활에 실패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

왜 그들이 결혼 생활에 실패할 가능성이 큰가를 지금부터 얘기하고자 한다.

먼저 그들의 사랑은 일반인보다 훨씬 강렬하다. 사랑하는 감정을 표현할 때도 그들은 여늬 사람보다 더 강렬하며 혼신을 다해 상대를 사랑한다. 그리고 당연히 전부를 준 만큼 사랑받는 것도 그에 상응한 것을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강렬한 사랑도 시간이라는 변수 앞에서는 결국 무너지고 퇴색하고 만다는 점이다. 오히려 강렬한 만큼, 즉 집중도가 높은 만큼 그 지속성(durability)은 약해지는 것이 정상이고 상식이다.

사랑은 분명 불같이 타오르는 감정이다. 그래서 정염(情炎)이라 표현하지 않는가. 그러나 세상은 공평해서 그 불을 타오르게 하는 장작이나 땔감의 양은 사람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강렬한 불길은 쉽게 꺼져버리기 마련이다. 정염이 가버린 결혼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명리학적으로 보면 저번에 말한 충운(衝運)을 만나서 반대되는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결혼이란 애정이나 정염으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두 남녀를 결합하게 만드는 화학적 작용이다. 그를 통해 자손을 만들어 가기 위한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지, 결합이 된 다음에는 아이를 낳고 아이를 잘 양육해야 한다는 의무 내지는 책임감이 더 중요한 것이 결혼 생활이다. 따라서 연애와 결혼은 이질적인 것이다. 얼마전 앙케이트에서 결혼이란 ‘미친 짓이다’라는 인상적인 답변이 있었는데, 분방한 사람들에게 그 말은 정답이다.

그러나 연예인이나 예술가들은 그 직업적 본질이 강렬한 감정 체험을 원하고 그렇게 계속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연애의 무덤 서너 발자국 뒤에 놓인 결혼은 정열의 감옥이 되기 쉽다.

타오르는 정열 없이 살 수 없는 그들은 그래서 결혼 생활에 있어 실패하기 쉽다. 특히 연예인이나 탤런트, 배우 같은 사람들은 대중의 주목 속에 있기에 결별 소식이 들리면 연예가중계 같은 프로그램이나 스포츠 신문에게 절호의 먹이감이다. 인기를 모았던 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고통도 그들의 몫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또 다시 정열을 불태울 대상을 찾는다. 본업에 매진하게 되거나, 다시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지만 같은 결과를 반복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해야 할 말이 있다.

흔히들 요즘 세상은 튀어야 산다고 말한다. 톡톡 튀는 맥주 광고처럼 최근의 세태는 튀는 젊은이 상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아니, '너 튀지 않으면 재미없어' 식으로 아예 내몰고 있다. 튄다는 것은 바로 2)번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정리하면 모든 젊은이더러 연예인이 되라고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당당한 젊은이, 거침없이 자기의 권리를 내세우는 세태, 이런 모든 것이 동일한 풍조를 나타내고 있다. 물론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권리를 내세우는 것, 참여 민주주의 시대에 바람직한 요소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이것만 강조되고 있다는 데 있다.

얼마 전 우리 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3위를 달리고 있다는 소식에 ‘아니 벌써! 내 그럴 줄 알았다만...’하고 놀란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풍조로 볼 때, 10년 안에 금메달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도 너무도 선명하게 눈에 보인다.

연예인의 불운한 사생활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 사회의 이혼율을 부추기고 있는 요인들을 몇 가지 정리해보자.

가장 으뜸이 우리 부모들의 지나치고 왜곡된 교육열이다. 자신의 자녀를 구김살 하나 없이, 어디 가서 뒤질 것 하나 없이 키우려는 그 정열이 문제인 것이다.

다음으로 여기에 상업 광고의 선정주의. 당당하게 표현하라, 나는 마구 쏜다, 나는 나, 20 살 TTL, 톡 쏘는 젊은이, 20살 해방구 등등, 이런 카피들을 듣다보면 양보와 자제는 기피해야 할 악덕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IMF 사태 이후의 변화된 직업관. 즉, 개성 없고 특기가 없는 일반 관리직 사원들은 구조 조정의 일차적인 목표가 되어 희생당했다. 이는 얌전하고 성실하게 근무한다는 것이 더 이상 직업적 안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잘리게’ 되는 근본 원인이라는 인식을 폭발적으로 확산시켰다.

이런 요소들이 우리 사회 전체를 2)번 성향만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 성형 수술이 대유행인 것도, 너나 할 것 같이 탤런트나 개그맨이 되고 싶어하는 풍조 모두 동일한 흐름이다. 이러한 풍조는 결국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세상은 그 근본 원인이 우리 사회의 안전도(social security)가 지극히 불안하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개발 일변도 드라이브, 개발이 핵심이고 복지는 양념인 사회가 가져 온 무서운 후유증인 것이다.

지난 60년대만 해도 농촌 사회였던 우리가 공업화를 거쳐 모두 도시민으로 변했고, 거기에 탈공업화 사회의 부정적인 면이 강조되면서 우리 사회는 극도의 모바일 사회(mobile society)로 변해버린 것이다. IMF 사태는 그 기폭제였다. 갑자기 울타리를 모두 벗어 던지고 나니, 이제는 영어 못하면 대한민국 시민권마저 인정되지 않을 것 같은 사회가 되었다.

우리는 농촌 사회의 개나리 울타리를 없애고, 아파트로 숨어 들었지만, 그 아파트 속으로 수 십개의 채널이 들어오면서 우리의 의식마저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 결과, 개개인으로 보면 낱낱의 유목민(personalized nomad)이 되었다. 하지만 유목민도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무리지음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뿌리 없는 개체가 되고 무리 짓지 않은 유목민(discreted nomad)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휴대폰(mobile phone)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나름의 저항이다.

지혜로운 자여, 느리게 살라, 뒤쳐지면서 살라! 느리게 시작해서 나중에는 먼저 가있게 만드는 힘이 바로 지혜다. 약은 자는 빠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게으르다. 이것이 느림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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