途上(도상)에 놓인 삶  _  2008.4.3
늦은 밤 시간, 쉬이 잠들지 못하는 버릇으로 해서 머리맡의 책 중에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오래 전에 읽다가 접어둔 책갈피 속의 글귀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잠을 깨운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沙河(사하)를 건너갔다. 사하 가운데는 惡鬼(악귀)와 熱風(열풍)이 많다. 만나게 되면 죽게 되고 온전할 수가 없다. 위로는 나는 새가 없고, 밑으로는 다니는 짐승이 없다. 눈에 힘을 주고 멀리 둘러보면서 길을 찾고자 하나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그저 길가다 죽은 사람의 해묵은 뼈만이 길안내가 될 뿐이다."

문장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원문을 옮긴다.

度沙河. 沙河中多有惡鬼熱風. 遇則皆死, 無一全者. 上無飛鳥, 下無走獸. 徧望極目, 欲求度處, 則莫知所擬. 唯以死人枯骨爲標幟耳. (도사하, 사하중다유악귀열풍, 우즉개사, 무일전자. 상무비조, 하무주수. 편망극목, 욕구도처, 즉막지소의. 유이사인고골위표치이)

얼마나 강렬한 문장인가!

沙河(사하)란 모래가 흘러가는 큰 강이란 뜻이다. 큰 사막을 말한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타클라마칸 사막을 이렇게 불렀다. 사막에 가면 바람이 일어 모래가 물결처럼 넘실거린다. 그러니 '사하'는 대단히 실감이 가는 명칭이 아니겠는가. 원문의 '도사하'는 그런 모래의 강을 건넜다는 뜻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실크 로드의 남방 루트에 놓인 험난한 장애물이다.

중국에서 인도를 가려면 정남쪽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갈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길이다. 이 사막을 지나면 옥의 산지로 유명한 '호탄'에 도달하게 되고, 다시 나아가서 파미르 고원의 높은 險嶺(험령)을 지나면 인도 서북부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길은 옛날 중국에서 인도로 불전을 구하러 길을 갔던 求法僧(구법승)들이 통과했던 길이다. 그 구법순례의 길은 동아시아 역사에 있어 일대 '로망'이었으며 壯途(장도)였다.

중국의 현장법사, 신라의 혜초스님이 간 길이며 이름을 전하지 못한 수많은 無名(무명)의 스님들이 이 길을 가다가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길이다.

인도로 법을 구하러 또 불교의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떠난 스님 중에 '열이면 여덟, 아홉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하니 도중에 이런 험한 사막과 높은 산길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가다가 죽어도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이었을 것이다.

이 길을 지나간 스님 중에 글을 남긴 이는 세 사람이다. 앞서의 현장과 혜초,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인 法顯(법현)이다.

법현은 '大唐西域記(대당서역기)'를 남긴 현장이나 '往五天竺國傳(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보다 무려 200년을 훨씬 앞선 스님으로서 중국에 불교가 전파되던 초기에 중국 스님으로서 인도를 다녀온 사람이다. 사실상 처음으로 인도로 가는 길을 열었던 선구자였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런 사막을 건너려할 때 토착민들이 이런 말을 해주었던 것이다. 사하를 지나다보면 惡鬼(악귀)가 무수히 많고 또 뜨거운 모래바람으로 인해 그것들을 만나게 되면 살 수가 없다고.

악귀란 모래사막에 부는 특이한 바람 소리였으리라. 연신 휘이이잉- 하고 불어대는 소리는 실로 귀신이 곡하는 소리, 鬼哭聲(귀곡성)이라 하기에 족했을 것이고, 또 사막에는 가끔씩 신기루가 생기면서 이상한 물체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 또한 악귀가 아니겠는가.

더하여 뜨거운 열로 숨을 쉴 수 없게 하는 熱風(열풍) 또한 불기 시작하면 수일간을 이어 불어대니 호흡기가 약한 자는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법현은 사하에서 숱한 악귀와 열풍을 만나게 되면 오로지 죽음이요 온전하게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을 전해 듣고 불안한 마음에 그저 부처님을 연신 되뇌이면서 사막 길을 갔을 것이다.

그런 사막에는 하늘위로 한 마리 날아가는 새도 없고, 땅에는 짐승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고 적고 있다.

어디가 길인가 싶어 눈에 핏발이 서도록 잔뜩 힘을 주고 멀리 사방을 둘러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적었다. 본문 중에 있는 '極目(극목)'이란 표현은 실로 생생하다.

사막에는 표식을 남겨도 맹렬한 바람으로 인해 얼마 가지 않아 모래로 가려지고 만다. 그러니 아무런 표식을 찾을 수 없고, 그저 길을 가다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해골만이 방향을 가늠케 할 뿐이라고 적고 있다.

求法(구법)과 求道(구도)의 험난한 길을 이처럼 생생하게 전하는 글이 또 있을까 싶다. 이 글은 법현이 남긴 기행문인 '佛國記(불국기)' 또는 '고승법현전'이란 이름으로 전해지는 책 속의 일부이다.

이 책은 국내에도 '법현전'이란 이름으로 오래 전에 번역 출판된 적이 있다. 아마도 헌 책방을 뒤져보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오래 전에 번역본을 읽은 적이 있고, 나중에 대만의 삼민서국에서 펴낸 '불국기'를 구해서 다시 읽었다. 지금 소개한 본문은 이 삼민서국의 것이다.

필자는 기행문을 즐겨 읽는다. 기행문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죽음도 불사하고 구도와 구법의 길을 가면서 남긴 기행문이야말로 가슴에 와 닿는 바가 실로 크다.

법을 구하기 위해 수 백리 펼쳐진 죽음 가득한 모래의 강을 건너갔던 사람의 마음이 지극히 간결한 문장으로 묘사된 이 글을 필자는 세상에 가장 뛰어난 名文(명문)의 하나로서 꼽는 데 주저가 없다. 요즘 잘 쓰는 말로 팍 꽂히는 글이다.

무연한 사막과 그 위를 불어가는 뜨거운 한낮의 바람, 또 밤으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내는 귀신의 울음소리, 새도 짐승도 없는 죽음의 공간, 바짝 마른 뼛조각만 드문드문 보이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눈앞에 펼쳐지는 바람에 초롱한 눈빛으로 밤을 새다가 새벽 나절 겨우 잠에 들었다.

수 십 년 전, 필자의 젊은 시절 꿈은 실크로드를 내 발로 걸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전생에 필자는 그 길에서 죽었던 구법승이었는지도 모른다.

1981년 당시 MBC 기자시험을 응시했다가 필기에 붙은 뒤, 면접할 때가 생각난다. 당시 사장님이던 분이 왜 방송기자를 지망하느냐고 물어보았다.

필자는 순진하게 돈황과 실크로드를 취재해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분은 돈황은 뭐고 실크로드는 또 무엇이지 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그만 나가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왔고 물론 시험에 떨어졌다.

사실 그 때 필자는 '법현'의 책을 읽었던 터라, 엉뚱한 말을 했다가 허무하게 면접을 실패했다. 그 때 필자가 낙방을 확인한 후 '병신'이란 말을 뱉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그 사장님이 병신이란 말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누가 병신이었는지 잘 판단이 서질 않는다.

사실 법현의 불국기 중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필자가 운명 상담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 죽음의 험로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험한 파미르 고원의 낭떠러지 산길은 반드시 실크 로드를 찾아가야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도중에서도 한 번은 만나기 마련이고 또 건너야함을 얘기하기 위함이다.

사람의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그 사람의 운명과 운세를 알아보는 일을 직업적으로 하다 보니, 이제는 삶의 어느 시기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야하는지 그리고 고산준령을 넘어야 하는지가 대략은 느껴지고 또 보이기 때문이다.

큰 강과 높은 산을 건너고 넘어보지 못한 자는 물의 깊이와 산의 높이를 알지 못하는 법인데, 한 세상 살다보면 그런 것을 절로 알게 된다.

어떻게 알게 되는 것인지 예전에는 참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의 삶 자체가 끝이 없는 여행이기 때문이었다. 또 그 여행은 어떤 길을 가더라도 모두가 求法(구법)이요 求道(구도)의 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삶은 그 전체로 해서 더 높은 단계로 향하는 '통과의례'임을 알게 되었다.

어려운 일로 자신의 일을 묻고자 오는 이들에게 필자가 해주는 말도 실은 이런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막에서 이상한 귀신 소리 같은 것이 들리더라도 그것은 바람소리일 뿐이라고, 열풍을 만나게 되면 천으로 코를 막고 가만히 숨을 쉬면 살 수가 있다는 그런 얘기, 그리고 언제쯤이면 그 사막을 지나가게 될 것이니 용기를 잃지 말라는 얘기.

쉰 중반에 가까운 필자는 이제 실크로드를 걸어가고픈 마음이 없다. 체력이 약해진 탓도 있지만,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날들이 '실크로드'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는 까닭이다. 삶은 途上(도상)에 있는 것이다. 生則途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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