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면 匠人(장인)이 되어라 (상)  _  2008.7.21
점심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구두를 닦았다. 구두 닦는 것은 옆에서 바라만 보아도 즐겁다.

구두는 지방 나들이로 해서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먼지를 털고 약을 칠하니 그저 거뭇하다. 다시 손가락으로 약을 바르니 구두는 이윽고 얌전해졌다. 풍겨오는 구두약 향기가 싫지 않다.

잠시 시간을 보낸 후 솔질을 하니 구두는 서서히 윤기를 드러낸다. 자연스럽고 율동적인 손길, 구두는 급기야 빛을 머금더니 가죽 본래의 아름다운 색을 뽐내기 시작한다. 이제 다 끝났구나 싶었지만, 구두 닦는 양반의 눈길은 순간 더욱 예리해진다. 마지막 손질이 마무리되자 구두는 순식간에 광채 서린 보물이 된다.

절로 나오는 탄성, 칭찬을 건넨다.

"아저씨, 구두 닦는 거 지켜보는 거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지 아시우."
"그래요? 참 별일이네-"
"그런 말씀 마시오, 더럽던 구두가 광을 내는 거 모두 좋아하지, 안 그러면 그게 이상하지."

구두 닦던 양반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흐른다. 내친 김에 "아저씨, 이게 예술이지 뭐 달리 예술이 있겠수! 그러니 아저씨는 예술가야 예술가!"하고 칭찬한 김에 아낌없이 말을 얹었다.

"구두를 좀 닦아보시지요, 댁에서요."
"에이- 다 닦아봤으니 예술인지 알지 그렇지 않으면 그게 예술인지 어떻게 알겠수."

칭찬이지만 빈 말은 아니었다. 구두 닦는 일은 분명히 예술이다. 그리고 그 양반은 장인이다.

생각해 본다, 어떤 분야든 기능으로 밥 먹고 사는 이들은 장인이고 아울러 행복한 사람이라고.

기왕이면 그 구두 닦는 부스의 그 양반처럼 자신의 사업을 하는 장인은 더 행복할 것이다.

또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더 행복한 장인의 조건은 무엇일까를.

수입의 규모? 글쎄, 버는 한도 내에서 써야하는 것이고,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알뜰하게 남겨서 저축하면 되지 않을까?

아내와 자녀로 해서 수입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정 안되면 자녀 역시 그 일을 물려받으면 될 터이고, 아내는 잘 타일러서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가르치면 될 일 아닌가.

발전성이 없다고? 꼭 발전해야 하나, 마음 편히 먹고 살면 될 일을. 천한 일을 한다고 괄시받았다는 恨(한) 서린 마음만 없다면 안달 내가며 자녀를 출세 길로 내몰 필요는 사실 없는 것이다.

정작 문제가 없지는 않다. 앞서 말한 구두 닦는 일이 천한 일이라는 열등감이 있을 수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없어야 한다는 얘기이지 현실에서는 분명히 존재한다. 없다면 그런 말 자체가 없었을 것 아닌가.

구두 닦는 일처럼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일, 잘 닦아도 다시 더러워져서 또 닦게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대개 자부를 지니지 못한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자타가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그 일은 예술이다.

또 구두를 닦느라 손과 얼굴에 검정을 묻히게 되니 스스로도 그렇고 사람들도 다소 꺼리는 면이 있어 천한 일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화가가 앞치마를 두른 채 잔뜩 물감을 묻히면서 작업하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그 일을 천하다고 하질 않는다. 몰두하는 모습이 오히려 외경심을 부른다. 칼을 든 외과의는 또 어떤가, 온통 피로 범벅일 텐데.

구두 닦는 일과 그림 그리는 일, 외과의, 이런 일들의 차이는 사회 통념에서 온다. 미술은 고상한 예술이고 의사는 숭고한 일이며 구두 일은 천하다는 생각.

사회통념이 일에 대한 만족도에 있어 분명 영향을 주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통념을 벗어버리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이 행복한 장인의 절대적 조건은 될 수 없다.

행복한 장인의 조건에 돈과 명망이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절대조건은 아니다.

한참을 궁리한 끝에 행복한 장인의 조건으로 떠오른 생각이 있다. 자신의 손을 거친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둘 수 있는 장인은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이름을 새긴다는 것은 이름값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명예는 책임을 동반한다. 책임지지 않는 명예는 한마디로 말해 사기다. 엉터리 물건을 만들어놓고 이름을 새기면 욕을 먹을 것이고, 이름을 새겼다 함은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표명이다.

얼마 전 한국의 장인들을 다루고 있는 다큐 프로를 보았다. 나전칠기공예와 은장도를 만드는 분들이 소개되었다.
그 중에 한 양반이 "작품에 혼을 불어넣지 않으면 그건 작품이 아니여" 라고 충청도 사투리로 말했다.

혼을 불어넣는다. 언제 들어도 멋진 표현이다. 뒤를 이을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지니 안타까우면서도 비장함마저 더한다. 그 장인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우리 중에 감히 누구가 자신의 일과 작품에 혼을 불어넣는다는 표현을 쓸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표현을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장인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아가 혼이 들어갔으니 그로써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으니 더 행복할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가 자신의 이름이 명기된 책을 만들어 출판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 작가는 돈과 명예를 떠나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 어디로 흘러 다닐지 몰라도 새겨진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책을 만들고 나전칠기공예품을 만들고 은장도를 만드는 모든 장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름을 새겨 넣지 않아도 연마된 기능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모든 장인들도 실은 행복하다. 그 구두에는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지만 그 구둣가게는 알려지며, 맛깔스런 음식에 이름이 들어가진 않아도 그 식당은 그곳에 있다.

장인의 다른 명칭이 바로 예술가이다. 통념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에 있어서 모두 예술가인 것이다.

사람은 예술을 해야 행복하다. 나아가서 일 또는 노동하는 사람은 예술가가 될 때만이 행복하다.

그러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노동과 예술은 무엇이 다른가? 정성껏 열심히 자신의 일에 혼을 불어넣음으로써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 여긴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일 또는 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이 神聖(신성)하다 함은 일을 통해 생계를 이을 뿐 아니라 영혼을 담는다는 거창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세상에 표현할 때 그 일은 예술이 되고 그를 통해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말은 물론 필자의 창안이 아니다, 책에서 배웠다.

장인, 예술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자긍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지를 잘 말해주는 莊子(장자)에 실린 庖丁解牛(포정해우)의 얘기를 들려드린다.

포정(요리사)은 문혜군(양나라 임금)을 위해 소를 잡았다.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누르고 무릎을 구부리며 동작을 하니, 소의 뼈와 살이 갈라지면서 서걱서걱 소리가 나고 칼이 움직이는 대로 고기 발라내는 소리가 울렸다. 소리는 모두 음률에 맞아 탕왕(은나라 임금) 당시의 유명한 춤곡과도 같았고 요 임금 당시의 명곡을 방불케 했다.

문혜군은 감탄한 나머지 야, 대단한데. 기술이 어쩌면 이런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포정은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道(도)에 이르고자 함입니다. 처음에는 세상 전체가 소로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3 년이 지나니 그냥 평범한 소로 보였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소는 보이지 않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그저 天理(천리)를 따라 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큰 틈새를 따라 칼을 놀릴 뿐입니다. 그러니 칼놀림이 잘못되어 살이나 뼈를 조금이라도 다치는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포정이 일에 몰두하자 살이 뼈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칼을 든 채 일어나 포정은 둘레를 살피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득의한 표정으로 칼을 씻어 챙겨 넣었다.

장자 '양생주' 편에 전하는 이 얘기는 천한 소백정과 존귀한 문혜군을 대비시키고 있다. 아울러 道(도)의 깨달음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천한 소 잡는 일을 통해 도달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서툰 자에게는 살과 뼈 사이가 좁아도 기술의 숙련 즉 도를 닦으면 그 사이가 아주 넓게 보인다고 하면서 기술이 도로 넘어가는 과정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임금의 부와 권력보다 장인의 예술이 더 행복할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이 얘기가 그저 재미난 비유일 뿐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장인이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아울러 누구나 장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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