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調和(조화)를 찾아서  _  2008.7.17
오늘은 성리학에 관한 것으로부터 얘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성리학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0 년 전, 중국 宋(송)나라 때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생겨나고 朱熹(주희)가 집대성했으며, 우리의 경우 조선왕조에 들어 학문과 사상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던 철학사상이다.

  주희 이전에 사실상 성리학의 기본 틀을 잡은 이는 程顥(정호)라는 사람이었다.

  정호라는 분은 天理(천리)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고, 우주와 자연은 이 천리에 의해 규율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또한 천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宗旨(종지)로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것을 정리한 사람이 주희였다.

  그렇다면 天理(천리)란 말은 어디서 나왔으며 무슨 뜻인가?

  기원 전의 先秦(선진)시대에 理(리)라는 관념은 이미 존재했다. 특히 禮記(예기)에 보면 "사람이 사물에 동화되면 천리는 소멸되고 인욕을 끝까지 추구하게 된다"는 구절이 있다. (人化物也者 滅天理而窮人慾者也)

  정호가 天理(천리)를 우주와 자연의 실체라 인정하고 사람 역시 천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게 된 데에는 여러 학자들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이 글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천리와 인욕,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욕망, 정호는 이 두 가지 명제를 학문의 주안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는 理性(이성)도 있지만 거친 慾望(욕망)도 있어 그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格物致知(격물치지)와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기본이 된다고 정호는 여겼던 것 같다.
  
  욕망을 다스리는 근본적인 힘은 인간의 이성에서 온다는 사실을 궁구한 정호는 인간의 이성이 그냥 이성이 아니라 뭔가 강력한 정당성과 힘의 원천으로서 인간만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 그 자체에 이미 주어져있는 天理(천리)에서 오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정호의 학설은 그 결과 우주론에서부터 출발하여 윤리도덕에 이르는 하나의 정교한 체계가 되었고 주희는 그것을 더욱 이론적으로 보완하고 다듬어낸 결과 성리학이라고 하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일대 사상이 생겨났던 것이다.
  
  조선 시대 이황과 기대승의 이른바 四七論辯(사칠논변), 사단칠정에 관한 쟁론은 주희가 미처 다듬어놓지 못한 盲點(맹점)에 관해 무려 팔 년에 걸쳐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은 것으로서 논쟁의 진지함이나 상대에 대한 존중, 사고의 깊이 등 여러 면에서 세계 철학사에 유례가 드문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
  
  필자가 성리학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두 분의 논쟁을 담은 '퇴계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조그만 책자를 대하고 나서였다.
  
  애초 대학 입학 시절 등록금에 포함되어 교양서적으로 받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다가 세월과 함께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서서히 스며들어서 사십 중반 무렵에는 깊은 곳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세상을 타계하신 유정동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몇 년 전 성리학 책을 제법 읽은 선비풍의 친구가 필자에게 자네 역시 꽤 (성리학을) 공부했으면서 어째서 그런 삿된 음양오행과 명리란 것을 연구하고 있느냐고 핀잔 비슷한 것을 준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재미가 있어서' 라고 답하고는 그저 웃고 말았다. 여간해선 논쟁을 하거나 속에 든 생각을 털어놓지 않기에 그랬다.
  
  성리학을 道學(도학)이라 부른다. 명리나 음양오행에 관한 연구는 術學(술학)이라 부른다.
  
  天理(천리)는 바로 天道(천도)라 여겼기에 도학인 것이다. 그러나 사물의 변화 발전하는 이치를 음양오행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은 천도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술학이라 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중국이나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예로부터 도학은 선비 내지는 지식인의 분야이고 기술이나 사물 자체에 관한 것은 이른바 '쟁이'들이 하는 격이 낮은 하등의 학문이라 여겨오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는 사회적 잉여가 축적되기 어려운 자급자족적 농업경제에 그 배경이 있다 하겠다.
  
  도학을 높이고 술학을 낮은 것으로 보는 풍토는 그러나 신기술을 통해 생산의 비약적 증대를 이룩한 19세기 서구의 기술문명에 의해 동아시아가 一敗塗地(일패도지)하는 배경의 하나가 되었음이다.
  
  사실상 성리학의 창시자 정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양은 氣(기)다. 氣(기)란 형이하의 것이요, 道(도)는 형이상의 것이다."
  
  이 말은 정호 자신의 관심사는 형이상의 것인 도학이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성리학 내지는 도학은 서구 중세를 지배한 神學(신학)과 같은 위치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1500 년경부터 자연에 대한 관찰, 동양식으로 말하면 음양에 대한 관찰과 탐구가 활발해지면서 경험론의 베이컨이 나오고,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 이어서 뉴턴 역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른바 '자연철학'의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던 것이다.
  
  서구인들은 그로부터 형이하의 것에 더 매달렸던 것이다.
  
  특히 경험론은 인식이나 지식의 근원을 플라톤적 이데아와 같은 초월적 실체나 칸트의 悟性(오성)보다는 감각이나 성찰에 의해 얻어지는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실험에 입각하여 가설을 세우고 다시 입증하는 과학적 정신의 모태가 되었으며 이윽고 자연의 힘을 새로운 차원에서 활용하는 기술 문명을 만들어내었다.
  
  이를 동아시아 식으로 표현하면 術學(술학)의 영역이 장족의 발전을 보인 셈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성리학 공부를 해온 사람이기에 도학의 가치와 필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리학의 바탕이 되는 天理(천리)관에 대해 나름의 회의도 있다.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가 실재하는 것이냐 또는 本有(본유)의 것이냐를 회의하는 입장과도 같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나중에 서구 카톨릭 신학의 본체가 되었고, 정호의 天理(천리)는 동아시아 성리학의 핵심 가르침이 되었다.
  
  하지만 필자 역시 오늘을 사는 사람이다. 경험론적 사고와 과학적 정신을 지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성리학 전체를 부정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며 그 가르침들은 오늘날에 와서 오히려 더욱 절실하다고 여긴다.
  
  필자가 찾는 것은 동양식으로 표현하면 도학과 술학의 調和(조화)이며 음양이라는 기를 통해 도를 찾는 방식이다. 형이하와 형이상의 어느 중간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음양오행과 명리를 수십년간 붙들고 놓지 않는 것 역시 이런 이유이다.
  
  동아시아의 음양오행은 그 정신과 방법에 있어 실은 서구 과학과 대단히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음양오행과 명리는 사물과 인간의 定量(정량)적인 면은 물론 定性(정성)적인 면도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이 점에 있어 음양오행은 서구적 마인드의 과학과는 궤를 달리한다.
  
  서구 과학은 사물의 실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치로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객관적일 수 없기에 포기해버렸다.
  命理(명리)는 타고난 생년월일시를 독립변수로 하고 맞이하는 운을 환경변수로 하여 사람의 일을 예측하는 것이며, 그 바탕원리인 음양오행은 사람만이 아니라 어떤 사물이든지 대상에 상관없이 그 성격을 파악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사물의 고유 변화원리를 예측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구는 과학이라는 술학으로서 성공을 했고 인류에게 대단히 큰 편의를 안겨 주었다. 필자는 앞으로 100 년 이내에 동아시아가 세계와 인류에게 그에 못하지 않은 공헌을 할 날이 오리라 믿고 있다.
  
  그런데 그 때가 되면 우리도 뭔가 내놓아야 할 것이 있어야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그저 경제수준이 발전하고 그들이 내놓은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는가.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기술문명의 혜택이 있었기에 비록 그들이 다른 문명과 세계를 유린했어도 그럭저럭 양해가 되고 또 존경을 받을 수 있듯이, 우리도 그에 준하는 무엇을 내놓아야 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近代化(근대화)가 바로 西歐化(서구화)인 등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필자가 그간 이 칼럼을 통하여 수백 회에 걸쳐 다양한 사례를 가지고 음양오행으로 검증해보고 운명의 이치에 대해 얘기해오는 것은 혹여 이 연구가 훗날 그런 '내놓을 수 있는 것'의 일부 또는 작은 밑거름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하고픈 말들이야 많지만 이것으로 왜 삿된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는 핀잔을 주었던 그 친구에게 간략한 답변이 되었으리라 여긴다.
  
  지난 세월이 마치 꿈속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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