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恨(한)은 좀 푸셨는가!  _  2008.8.28
한때 그들은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렇게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했기에 '세상의 중심에 있는 꽃다운' 나라, 中華(중화)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것이 1840 년 여름, 영국이 48 척의 군함에 실어 보낸 4 천의 병력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했다. 인구 3억의 대국, 병력만도 몇 백만에 달하는 나라가 겨우 4 천의 병세 앞에서 기를 펼 수 없었다.

중국은 국민의 건강을 좀 먹는 영국의 일등 수출품목인 아편을 수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이에 영국은 '아니 이것들이' 하면서 발끈 화를 내어 중국을 손봐준 것이었다. 아편전쟁이라 부르는 일방적인 전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68 년 전의 일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10 년이 지나 1850 년이 되자 도탄에 신음하던 중국 하층 농민들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들고 일어났다.

기독교의 평등사상이 들어가면서 봉건 체제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를 '태평천국의 난'이라 한다. (물론 오늘날에는 '난'이 아니라 '혁명'이라 부르고 있다.)

이 난리는 무려 15 년이나 이어졌고 한때 당시 청 제국을 거의 붕괴시킬 정도로까지 갔다. 이 난리를 다스린 것은 만주족의 청 왕조가 아니라, 한족 출신의 인사들과 유지들이었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물리력을 지닌 서양으로부터 배워야 함을 통감했다. '양무운동', 즉 서양의 힘을 배워야 한다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세상의 중심인 나라가 서양 오랑캐, 洋夷(양이)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치욕이었다.

그래서 오랑캐의 기술은 배우되 중국의 본질적 혼과 문화는 지켜나가자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를 中體西用論(중체서용론)이라 한다.

양무운동의 기점은 1858 戊午(무오)년 무렵이었다.

이로부터 중국인들도 자본을 육성하고 서양식 경영기법들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심히 서양식 대포와 탄약을 만들고 특히 막대한 재원을 투자하고 서양 기술자들을 초빙하여 서양식 신예 전함들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이홍장이 주도해서 만든 '북양함대'에는 철갑으로 선체를 두른 당시 최신예 전함들이 편성되었다.

양무운동을 통해 이제 서구열강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믿었던 그들은 다시 한 번 청천벽력과도 같은 굴욕을 맛보게 된다.

1894 甲午(갑오)년에 발발한 청일전쟁은 바다에서 승부가 결정이 났다. 한반도의 서해 바다에서 청과 일의 주력함대가 정면으로 대결한 결과 청이 자랑하던 북양함대는 일거에 수장되고 말았던 것이다.

양국의 함대는 공히 12 척이었지만, 객관적 전력 면에서는 분명 청이 일본을 앞서고 있었다.

청의 주력함 '정원'과 '진원'은 7 천톤이 넘는 강력한 전함이었으나 일본의 주력함은 4 천톤 급이었고 화력 면에서도 청이 앞서 있었지만, 운용과 전술에서 일본이 한 수 위였던 것이다.

사실 이 황해해전은 청이 승리할 수도 있었던 싸움이었다. 하지만 1858 년 양무운동으로 시작된 새로운 중흥의 기운이 30 년을 지난 1888 戊子(무자)년을 기점으로 기울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을 배워 自强(자강)을 도모하자던 양무운동은 이로서 서해 바다에 함께 수장되었다. 그러자 중국인들은 이번에는 아예 전폭적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국인 스스로가 中體(중체), 즉 혼과 문화를 포기하자고 나선 것이니 나름 대단한 혁명적 발상이었다.

1898 戊戌(무술)년에 일어난 이 개혁운동을 變法自疆(변법자강)이라 했다. 기존의 법과 제도를 몽땅 뜯어고치자는 급진적 사조였다.

하지만 국운은 내리막을 걷고 있었으니 그것은 그저 개혁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마치 1894 년 우리의 '갑오개혁'과도 같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각성을 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아 이겼다고 믿었던 일본이 1905 년 러일전쟁마저도 승리하자 중국인들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이 이룬 선진화를 막는 세력은 다름 아닌 청 왕조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에 1911 辛亥(신해)년이 되자 만주족의 청을 타도하고 한족의 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는 바로 60 년 전 그러니까 한 甲子(갑자)의 주기 앞에 있었던 태평천국의 혁명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신해혁명 역시 하나의 난리였기에 누군가가 전체를 하나로 통합할 인물과 세력이 필요했다. 타도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다스릴 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안정이 되어야만 발전을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통합을 위한 투쟁이 다시 시작된다. 이른바 군벌들간의 전쟁이었다. 1918 戊午(무오)년이니 양무운동으로부터 60 년이었다.

이 전쟁에서 사실상 통합세력으로 부상한 자가 장개석이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신흥재벌과 자산계급에 기반을 둔 장개석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평등과 해방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주장한 신흥 공산당의 모택동에게 마음을 주었다.

일본의 중국 침략에 대항하면서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은 장개석과 일면 싸우고 일면 타협해가면서 마침내 중국 대륙에서 주도권을 쟁취하는 데 성공을 한다.

1918 년 중흥으로부터 30 년이 막 지난 1949 년 모택동은 천안문 광장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을 알렸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발발한 전쟁에서 미국과 싸워 휴전을 이끌어내니 중공 정권에게는 사실상 승리나 진배없었다.

한국전쟁을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이라 부르고 있다.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도운 전쟁이란 의미로서 그 속에는 이겼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러나 중국의 운세는 다시 기울고 있었다.

모택동의 영도 아래 중국은 미국이나 소련 영국 일본 등의 선진 제국을 따라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했지만 기술과 자본이 부족했다.

이른바 죽의 장막 안에서 펼쳐진 대약진 운동은 철저하게 실패했고 다시 위기를 느낀 끝에 시작한 문화대혁명은 문자 그대로 문화의 지옥을 연출했다.

여기에 다시 1978 戊午(무오)년 중흥의 기운을 맞이하면서 실용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등소평의 개혁개방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1858 년 양무운동, 1918 년 통일전쟁, 1978 년 등소평의 등장은 모두 중국의 국운이 바닥을 치고 일어서는 戊午(무오)년의 일이었던 것이다.

중국은 결국 개혁과 개방을 통해서만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득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과감하게 개방하고 모든 사상을 열어 젖혔다.

하지만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의 요구는 언제나 세상을 앞서가는 법이라, 개방으로부터 10 년이 지나자 천안문 사태가 터졌다. 이에 등소평은 그들의 요구가 시기상조임을 역설하고 탱크로 밀어붙인 결과 강제진압으로 끝을 맺는다.

언젠가 천안문 유혈사태에 대해 등소평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소평이 중국을 일으킨 지도자라는 평가는 결국 시간 속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드디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중국은 2008 년 戊子(무자)년에 와서 올림픽을 역사상 가장 성대하게 개최했고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이 또한 1978 년에 시작된 상승기운의 정점에서 맞이하는 일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중국은 외국 정상들을 불러놓고 엄청 '오버'했다. 시종일관 '오버질'이었다. 중국인들은 자긍심에 한껏 들떠서 그들의 성과를 유감없이 보여주겠다는 마음이었다.

색쟁이 장예모 감독의 개막식이나 폐막식 연출도 일관해서 엄청 오버였다.

하지만 축하한다.

아편전쟁으로 위신이 추락하고, 태평천국의 혁명에서 시작하여 양무운동에서 좌절하고 변법자강으로 개혁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다시 신해혁명으로 청조를 타도했으나, 군벌 전쟁으로 엄청난 희생을 가져와야 했고, 이어 모택동의 영도로 탄생한 중공 정권은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등소평의 개혁개방으로 오늘날 이만큼의 발전을 이룩했으니 따져보면 1840 년으로부터 장장 170 년에 걸치는 自强(자강)의 드라마였으니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단계마다 끊임없는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굴하지 않고 일어선 중국인들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개발도상국이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필자는 중국의 성공을 확인했지만 그 속에 깃든 열등감도 보았다. 그것은 恨(한)이었다.

세계 중심의 꽃다운 나라가 백년 이상 굴욕을 겪었으니 한이 서릴 법도 하다. 그러나 중국이 갈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중국 역시 장차 공산당 일당 체제의 문제, 빈부의 문제, 배타적인 민족주의 등의 열병을 앓을 것이다. 문제는 산적해있다.

하지만 필자는 기원한다. 중국이 앞으로 언젠가 시일은 걸리겠지만 진정한 대국으로 일어설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주변을 무력으로 강제하거나 배타적으로 적대하는 약한 대국이 아니라, 포용과 관용의 정신이 중심에 깃든 진정한 문화대국, 禮樂(예악)의 문화가 또 다시 살아난 그런 대국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그렇기에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인들이 보여준 유치한 '오버' 역시 눈감아 줄 수 있고 그저 애 많이 썼다고 치하해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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