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야기 <하>  _  2008.1.11
소련의 운세하강이 시작된 1958 무술(戊戌)년으로부터 10년차인 1968 무신(戊申)년에 있었던 '프라하의 봄' 사건은 소련의 동유럽에 대한 지배력 퇴조를 알려주는 징후였다.

다음 해에는 맹방 중국과도 국경 분쟁이 발생하면서 소련 제국은 전 영역에서 동요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1968 년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청와대를 공격했던 1.21 무장공비 사건 역시 소련의 약화를 감지하고 초조해진 북한의 극단적 조치였다고 필자는 여긴다.

1958년에서 15년이 지난 1973년은 계절로 치면 소련이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이었다. 엄청난 군비경쟁으로 소모된 소련은 미국과 전략무기 제한협정인 'SALT I'을 체결했고 유럽에서의 상호병력감축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 역시 베트남에서 고전하고 있었기에 소련은 협상에서 강경 자세를 통해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지배를 미국이 영구적으로 인정해줄 것과 서유럽과 미국 간의 관계를 약화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처럼 상대가 강하게 나올 때에는 약함의 징표로 해석해도 좋다. 북한의 '벼랑 끝' 외교 역시 동일한 전략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북한은 이제 죽을 지경이라는 얘기.

그간 북한에 대한 지원을 놓고 '퍼주기'란 비난이 많았다. 애써 도운 결과가 핵실험이니 햇빛 정책이 핵(核)빛 정책이 된 셈,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 하지만 정작 북측 인사들을 만난 우리 측 대표들은 북측의 엄포와 공갈 외교 뒤에 가려진 낡고 헤진 고쟁이를 분명 보았을 것이다.

강성 대국 건설과 선군 정치를 연일 외쳐대니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실은 핵탄두 옆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가련한 우리의 반쪽인 것이다. 김일성 부자의 죄업(罪業)이 실로 크다.

다시 돌아와서, 소련은 계속된 작황의 어려움으로 일단 긴장완화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밀을 수입하여 숨통을 텄지만, 허세는 여전했다. 1978 무오(戊午)년부터는 오히려 강경책으로 제 3세계에 군사원조를 확대하고 유럽에서는 최신형 중거리 다탄두 미사일인 SS-20을 개발 배치하는 강경책을 택했다.

1978년은 운세 하강의 20년차였기에 사실상 이것이 소련의 마지막 군사외교적 공세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1980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에 의한 대대적인 군비확충이라는 반발을 초래함으로써 곤경에 빠져들었다. 또 1979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진주시켜 전쟁을 확대했는데 이런 일련의 일들이 허덕이던 소련 제국의 마지막 숨통을 죄고 말았다.

중국이 등소평의 등장으로 영양가 있는 미국과 1979년 국교를 수립했고, 오랜 와병 기간으로 고생하던 늙은 지도자 브레즈네프가 1982년에 사망하자 대세는 이미 기울대로 기울고 있었다.

더하여 소련 제국의 붕괴를 알리는 가장 선명하고도 직접적인 징후는 1986년 병인(丙寅)년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이었다. 미국과 함께 최첨단의 기술력을 과시하던 소련에게 핵발전소 사고는 만천하에 소련의 모든 시스템이 작동불능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린 사건이었다.

쇠퇴와 무기력의 한 와중에서 젊은 지도자가 등장했으니 고르바초프였다. 만일 그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할 것임을 미리 알았더라면 소련의 권력핵심인 정치국원들은 결코 그를 서기장으로 선출하진 않았을 것이다.

젊고 유능한 고르바초프의 등장에서 그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안정화를 기대했으나 고르바초프는 소련제국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고 그 개혁은 소련 제국의 해체라는 고르바초프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1988 무진(戊辰)년 아프간에서의 철군에서부터 국가 갱생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처럼 러시아는 무진(戊辰)이란 코드로부터 새로운 출발을 한다. 그리고 이번의 새 출발은 60년 주기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360년 대주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짜르 러시아와 사회주의 독재인 소련을 거쳐 인류 사회에 진정으로 공헌할 수 있는 새로운 러시아가 출범한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은 해체되었다. 1928년 스탈린으로부터 시작된 그 잔혹한 정치실험은 60년만인 1988 무진(戊辰)년으로서 끝난 것이다. 그 실험은 러시아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우리 역시 그 실험의 직접적인 희생자였고 지금껏 남북한 분단 상황을 통해 최후의 희생자로 남아있다.

갱생의 길은 험난하고도 또 험난한 법, 1988년으로 러시아가 바닥을 치고 일어선다고는 하나 바닥에서 일어나기가 그리 쉬운가.

특히 처음 15 년간은 가시밭길을 가야하니 말이다. 우리 역시 1964 갑진(甲辰)년에 일어서기 시작해서 1979년까지의 여정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60년 주기를 사 계절로 나누면 처음 15년은 봄이라 할 수 있다. 봄의 들판은 햇빛으로 가득하지만 먹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봄은 먹고 살 여유가 있는 자에게는 상춘(賞春)의 낭만적 시기이지만, 어려운 자에게는 그야말로 궁기(窮氣)만 가득한 처절한 계절이다.

현재 러시아는 1988년 바닥으로부터 20년을 지내고 있다. 중국 이야기에서도 했지만 22년이 되면 그간의 힘이 분출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는 바로 2010 경인(庚寅)년이 된다.

지금 푸틴의 인기가 그토록 좋은 것 역시 국운의 상승과 맞물려있기에 그런 것이다. 또 러시아 소치가 평창을 누르고 2014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것 역시 러시아의 상승을 말해주는 징표이다.

올림픽, 그 중에서도 하계 올림픽은 그냥 우연이 아니다. 그 나라의 국운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88 서울 올림픽은 1980년에 개최가 확정되었다. 당시 필자는 솔직히 말해 비웃었다. 신군부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재벌들을 앞세워 올림픽 개최 경쟁에 뛰어든 것이 어쩌다가 요행으로 개최를 따냈지만, 잘 되진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서울 올림픽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정말 기이하게도 올림픽 개최 전인 1986 병인(丙寅)년에는 최초로 무역수지 흑자가 났고 다음 해에는 기록적인 흑자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조화(造化)인가?

당시 30대 초반이던 필자는 종속이론과 좌파 이념 서적들을 열심히 읽고 있었기에 나라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수출이 늘어나도 수입이 더 늘어나서 결국 식민지 체제에서 탈피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좌파 경제학자들의 주장이었다.

잠실 운동장에서 올림픽 육상 경기를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분명히 뭔가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이 틀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사건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일본 친구로부터 어렵사리 구해 탐독했던 마르크스의 '자본론'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눈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더 많은 동서양의 다양한 사람들이 남긴 글을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새롭게 출발한 러시아, 이제 더 이상 지난 시절의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겠지만 여전히 세상은 국경선을 절대적인 테두리와 경계선으로 여기는 이상 러시아가 강국이 되면 그 또한 현실 국제정치의 갈등 구조 안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강국이 되었다. 러시아 역시 2010 경인(庚寅)년부터는 실력을 갖춘 강국으로 올라설 것이다. 일본 역시 엄청난 강국이다. 그리고 미국의 패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구상의 강자가 누구인가? 미국과 영국, 독일과 프랑스, 일본과 중국, 그리고 곧 러시아가 들어선다. 그런데 일곱 나라 중에서 무려 네 나라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이런 상황은 엄청난 기회이기도 하고 위기이기도 하다.

조만간 부강해진 중국과 러시아가 자존심을 되찾고자 공격적 민족주의의 칼날을 세운다면,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기존의 것들을 지키려든다면 우리는 그 사이에서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다.

네 나라가 함께 번영할 길을 찾는다면 우리 역시 그 가운데에서 대단한 번영을 누릴 것이고, 네 나라의 이해가 엇갈린다면 우리 앞길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주변의 네 나라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이고 친절해야 할 것이며, 그 와중에서 우리가 먹고살 것도 만들고 지켜야 하며 누구에게도 녹록하게 보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험대는 올 해 무자(戊子)년부터 시작해서 2014 갑오(甲午)년에 이르는 남북한 통일 사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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