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을 보내며  _  2007.12.27
한 해의 어둠이 가장 깊은 곳이 바로 동지(冬至)이다.

날씨는 더욱 차가워지겠지만 동지로부터 빛은 다시 살아난다. 양기(陽氣)가 다시 일어서니 부활(復活)인 것이다.

필자는 이맘 때면 동쪽 바다의 낙산사 홍련암을 찾는다. 이번 동지에도 다녀왔다.

저녁 무렵 낙산사 뒷문으로 오르는 길에서 바다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만났다. 차갑고 휘황한 달빛이 물결 잔 바다에 실려 의상대 밑 바위에 와서 빛나고 있었다. 절로 손바닥을 모두어 '풍만하신 만월보살(滿月菩薩)님 그간 안녕하신지요' 하고 고개 수그려 인사했다. 달님도 방긋 웃어주었다.

동지에 홍련암을 찾는 것은 동지 다음날 아침부터 해가 길어지니 필자는 이 날을 새해로 여기는 까닭이다. 그래서 동지 저녁에 홍련암에 들러 필자가 '마리아 보살'이라 부르는 관세음보살에게 문안드리고 다음 날 아침 백사장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성례식이다.

그런데 동지 저녁에 보름의 달님에게도 문안을 드렸으니 이번에는 대단히 마음 뿌듯한 순례(巡禮)길이었다. 새롭게 부활한 햇님과 묵은 해를 정리하는 달님, 대관령의 흰 수염 산신들과 동해바다 용왕님, 그리고 관세음보살, 이렇게 천지일월(天地日月)과 음양(陰陽)의 여러 제신(諸神)들 모두에게 인사를 드렸으니 2008 년은 대길(大吉)함이 명백하다.
  
  2007 정해(丁亥)년은 우리에게 대단히 의미 깊은 한 해였다.
  
  2008년이 건국 60 주년이 되는 해라 올 해는 그간의 여러 일들이 단락을 짓는 한편 새로운 기운이 물 밑에서 부상하는 해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난 1960년대에 시작된 우리 국민들의 줄기찬 약진들이 이로써 모두 한 차례 마무리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먹고사는 일인데, 경제면에서의 발전으로 세계 최빈국에서 유수의 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거의 기적(奇蹟)이라 해도 좋을 일이었다.
  
  경제발전을 토대로 하여 그 어렵다던 민주체제도 우리는 이룩했다. 이제 우리나라는 국가통치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란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던 얘기는 그저 우리의 자조(自嘲)였을 뿐이었다. 장미가 마침내 쓰레기통에서 피어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에는 정치범 수용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 모두의 건강을 위한 의료보험에 이어 어설프나마 국민연금제도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해마다 휴가철이면 해외로 나들이를 가며, 좀 산다 싶으면 잔디밭에서 작대기를 들고 작은 공을 때리고 있다. 이런 일들이 꼴사납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꼴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는 그게 어딘가.
  
  이처럼 우리는 일대번영을 이룩했으니 자랑스러워해도 부끄러운 일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일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우리도 이제 어느덧 기울 때가 되었다.
  
  세상도 봄에서 여름을 지나 가을을 누리면 조용한 겨울이 오듯이 우리의 전체적인 흐름도 겨울의 문턱으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이명박 정권은 스스로를 '선진화 정부'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보기에 좋은 호칭이다. '선진화'란 말은 선진(先進)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에서 더욱 그렇다.
  
  필자 생각에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해결하고 개선하며 만들어야 하는가를 놓고 모색하는 단계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무엇보다 '선진'이란 무엇인가부터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라 본다. 이 말은 차기 정권이 '선진화'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대선에 나타난 국민의 바람은 당장의 경제문제를 실용적인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을 통해 해결해보자는 것이었다.
  
  신화를 창조한 현대건설의 전설을 등에 엎고 청계천에 새 물을 흐르게 하고 서울시내 버스운영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근간의 구체적인 성취를 여권의 신당이 '민주 대 반민주'라는 때늦은 유행가와 막판의 BBK를 가지고 딴지를 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번 대선으로 김대중 시대도 막을 내렸다. 지난 20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가 지시하는 후계자들에게 표를 몰아준 호남 사람들은 이번 대선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내년 4월의 총선에서 우리는 호남표의 마지막 결집 장면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결국 2007년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지녔던 많은 것들이 정리되고 해체되며 단락이 지는 일들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아직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새로운 어려움과 과제들은 아직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나타내지 않았기에 당분간은 이념의 문제도 힘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진보 쪽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것은 보수 쪽에서 GDP 2만 달러에 이어 3만 달러를 성취하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은 진부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감히 예측해보자면, 우리가 맞이하게 될 가장 큰 어려움으로서 두 가지가 있고 우리가 한 단계 올라서야 할 과제로서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맞이할 어려움으로서 첫째는 양극화 문제이다. 아무 것도 없던 나라가 경제적으로 번영했으니 기업들은 자본이 축적되고 개인의 경우도 재산이 불어나기 마련이다. 이를 반대편에서 보면 바로 양극화이다.
  
  크게 보면 북한 문제 역시 양극화 문제에 속한다. 지금 북한은 먹고살 길을 찾지 못하고 그저 지도자 동지가 강성대국을 건설해주기만을 바라는 사이비 종교집단과도 같다.
  
  어쨌거나 한 겨레이기에 빈곤한 북한 역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양극화 문제에 속한다.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중국의 번영과 산업 발전으로 인한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필자는 10년 뒤면 서울 시내 거리를 쌍용차를 인수하여 기술을 축적한 중국의 상해차가 메울 것이라 생각한다. 부자는 외제 명품차를 타고 서민은 중국차를 타서 국산차는 국내시장에서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섭지 않은가.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있어 발전된 중국과의 가격경쟁을 견딜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가 한 단계 올라서야 할 과제로서 두 가지 점을 얘기하겠다.
  
  우리의 모든 경제활동 과정에 여전히 만연해있는 부정과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하는 일이다. 정치 차원에서 우리는 노무현 정부를 통해 비자금 문제 등등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선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에 노무현 정부의 혁혁한 공로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하부 단계에서는 비리와 부정이 규모가 축소되었는지는 몰라도 여전하다.
  
  또 한 가지 과제는 학문과 기술의 근원적 성숙화이고 발전이다.
  
  우리는 아직도 서구와 미국이 만든 학문과 사상, 기술을 국내에서 유통해먹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학문과 사상, 기술과 과학은 그 자체로서 진리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 다시 말해서 체화(體化)가 되어야 그 효용을 발휘하는 법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정은 외래의 것을 체화하고 우리 고유의 것을 참신하게 살려내는 작업이 뒤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념의 문제도 거리에서의 선동이 아니라, 글을 통해 조용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내밀한 논쟁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우리 국운의 겨울은 결국 지금껏 말한 두 가지 도전과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가는 기간이 될 것이라 본다. 그리고 다시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맞이하면 선진국으로 올라서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의 가정에 만복이 가득하기를, 무엇보다도 각자의 마음속에 즐거움이 가득하시길 기원한다. 정해(丁亥)년이여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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