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렇게 흘러가나니  _  2008.12.22
2002년 어느 날, 서울 강남 도곡동에는 전대미문의 아파트가 그 웅대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엄청난 탑이자 궁전이었다. 이름 역시 걸맞게 '타워 팰리스'.

멀리서 도시의 스모그에 살짝 가려진 그 거대한 탑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혼잣말로 "야, 기막히다. 건축공학의 한 절정이네. 그런데 참, 문제다, 문제야"라고 중얼거렸다.

절세가인이 있다 하자.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서 아무런 죄가 없다. 아름다운 것이 어찌 죄가 될 수 있으랴. 하지만 그 여인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나라가 기울 정도라면 죄는 없다 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새로 들어선 거탑은 주변의 모든 아파트들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거탑 아파트는 그냥 아파트가 아니라 입주한 부자에게는 성취의 상징일 것이고, 가난한 자에게는 원망과 질시의 대상일 것이며 보통 사람에게는 엄청난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니 문제였다.

독직사건으로 쇠고랑을 차는 공직자에 관한 보도를 접할 때면 항상 되묻곤 한다. 황금덩어리가 유죄일까 아니면 황금에 눈이 먼 사람이 유죄일까 하는 해묵은 질문 말이다.

또 다시 2002년 말 다른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부당한 기득권을 청산하고 왜곡된 과거를 청산하겠다며 등장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것이었다. 늦은 밤 시간, 시청 앞과 광화문을 메운 지지자들의 환호작약하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타워 팰리스가 눈앞을 스쳐갔다.

타워 팰리스와 노무현의 당선, 이 두 사건은 강렬한 명암대비로 다가왔다.

부자인 즉 기득권이고 기득권 하면 '부도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우리 사회에서 타워 팰리스는 그 모든 것의 아성이었고, 노무현 새 정권은 정반대의 신흥 세력이었다. 경제와 정치가 2002년 말로서 실로 숨 막히는 한판 승부에 들어서고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다시 보기 힘든 '빅 매치'가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이 일대승부의 관전 포인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과는 어떠할 것이며 결과는 과연 어떨 것인지를 궁리했다.

긴 승부가 될 것이며 치열한 접전 끝에 양자가 모두 다치는 것은 불가피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초전 기선은 정부가 장악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가있지 않느냐고 자신감에 찬 투지와 전의를 드러내면서 선제 잽을 날렸다. 애초부터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가 정권을 잡으면 한 자리 해보겠다는 사람들이었기에 날선 정권의 맞상대가 될 수 없었다.

2003년은 참여정부의 독주였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2004년 3월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지독한 말을 비아냥조로 내뱉었다. 이에 모멸감을 이기지 못한 건설회사 사장님은 한강에 몸을 던졌다. 시신은 열흘 하고도 하루 동안 차가운 한강 물속을 떠돌았다.

말 잘하는 이는 말로 망한다더니 어찌 저런 일이. 무슨 열등감이 저리도 많아서 대통령으로서 저런 지독한 말을 할까 싶었다.

유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 본인도 실은 후회스럽고 괴로웠을 것이다. 국민들도 모두 가슴이 무거웠으리라.

그 이후 필자는 이 사건을 노무현 참여정부 몰락의 기산일로 잡았다. 2004년 3월 11일의 일이었다. 이는 대통령 당선으로부터 정확하게 15개월이 지난 시점이며 또한 대통령 임기 60개월의 1/4 이 지난 시점이었다.

기승전결이란 말이 있듯이 60개월의 1/4 인 15개월은 起(기)의 단계가 마무리되는 시점, 그렇기에 시작 단계가 저러니 結(결)의 단계는 볼 것도 없었다.

현 이명박 정부도 내년 3월이면 15개월이 된다. 그 때 어떤 일이 있느냐, 그것만으로도 정권의 향배를 능히 점칠 수 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나라당은 박근혜와 전여옥이라는 여걸들을 내세우며 반격에 나섰다. 17대 총선은 '차떼기당'의 오명을 받았던 한나라당이 몰락하고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뒀지만 박근혜 대표는 특유의 지도력으로 이를 극복해나갔다.

陽(양)으로 보면 정부 여당의 찬란한 승리였지만 陰(음)으로 보면 이미 역전의 흐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 후 맞이한 마지막 승부처는 4대 개혁법안 문제였다. 그러나 이는 병법상 일대 실수였다. 전쟁에서 전선을 두 개 열면 이기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 중에 상식. 그런데 여당은 다수당이라는 것에 도취되어 4개의 전선을 펼쳤다.

甲申(갑신)년 甲戌(갑술)월, 2004년 10월의 일이었다. 일간이 戊土(무토)인 노 대통령은 두 개의 甲木(갑목)에 의해 기세가 꺾여버렸다.

돌이켜보면 노 정권의 가장 매력적인 시기는 강금실과 이창동, 이 두 분을 법무장관과 문화장관으로 임명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젊고 매력적인 강금실 씨가 여성 특유의 발랄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권위의 상징인 법무 일을 주관할 때 그 신선함은 실로 대단했다.

이 두 사람을 장관직에 임명했던 것은 향후 우리 정치 발전에 두고 두고 자양분이 될 것이라 여긴다.

그런데 강금실 씨가 장관 직을 그만 둔 것은 2004년 8월이었다. 갑신년 임신월로서 이 시점은 우리 국운의 전개상 대단히 의미가 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나타난 변화는 실로 크다. 필자는 이로부터 우리 국운이 겨울로 접어드는 前兆(전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본다.

물론 그 흐름이 어떠했는지는 시간이 지나서야 확연히 알게 된다.

먼저 달러가 이 시점을 계기로 결정적인 약세 흐름을 보이게 된다. 달러당 1164 원을 깨고 내리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2007 년 11월 달러당 900 원을 밑도는 상황이 나오면서 급반전, 금년에는 외환위기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달러 초강세 흐름이 나오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또 증권시장의 강세 흐름이 시작되었고 버블 형성의 마지막 국면이 시작되었다. 종합지수는 당시 720 포인트를 바닥으로 나중에 2085 포인트까지 일대 상승국면을 연출했고 그것의 붕괴 과정이 지금의 국면이다.

그런가 하면 그 때를 기점으로 부동산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앙등은 그 다음 해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고 정부는 마침내 8.31 대책을 발표했지만 부동산 앙등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 또한 현재에 이르러 부동산 가격의 급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2004년 8월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 모든 흐름은 노무현 정권에 대해 반대되는 쪽으로 흘러갔다. 앞서 말한 4대 개혁법안 문제가 그런 흐름의 가속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마침내 2006 년 5.31 지방선거에 이르러 노무현 정권은 사실상 수명이 끝나고 말았다.

열린우리당, 참으로 아름다운 취지였다. 열린 마음으로 모두가 우리가 되자는 것이니. 그것은 관용과 통합을 지향하고 있었다.

통합이란 못난 자와 마음에 들지 않는 자, 반대하는 자, 말썽 부리는 자 모두를 관용으로 인정하고 귀도 기울여주고 어루만져야 이루어지는 일인데 열린우리당은 멋만 부렸던 것이다.

수구꼴통이란 지독한 수식어로 상대를 자극하면서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열고 모두 하나로서의 우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현실 정치는 경쟁이고 투쟁이니 적대적 언사와 감정의 표출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측의 마음속에 통합이라는 생각이 사라지면 그 순간부터 즉각 정권은 몰락의 길을 간다.

돌아와서 2004 년 8월부터 시작된 흐름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부동산 상승이었다.

그리고 부동산이 급등한 배경이 중요한 데 여기에는 네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첫째, 달러가 약세로 가자 수출 경기가 누그러졌고 그러자 정부는 내수 경기 부양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은행들은 새로운 대출처의 발굴이 시급했다. 외환위기 이후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과다한 부채구조에서 탈피하면서 은행대출을 여간해선 쓰지 않았다. 이에 은행들은 이제 어쩔 수 없이 개인들을 상대로 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셋째, 건축 주택 업자들은 정부의 내수부양과 은행의 개인대출 전환에 따라 새로운 개념의 아파트를 대거 홍보하고 고가에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호기를 살리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아예 인테리어까지 모두 포함한 럭셔리한 아파트, 이른바 프리미엄 아파트가 대거 등장했는데 이는 사실상 짝퉁 타워 팰리스였다.

넷째, 상층으로 올라가려는 중산층의 욕망과 웰빙 풍조는 명품 아파트 구매를 촉진했다. 부동산 가격은 지난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올랐으니 검증된 투자수단이기도 했다. 사두면 자산도 불어나고 신분 상승을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대상이었다. 이번 흐름을 놓치면 상승대열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감도 강렬하게 작용했다.

그리하여 어느 날부터인가 모든 광고매체는 온통 프리미엄 아파트 광고로 도배되었다.

개혁 정권은 어느 사이 부지불식간에 아파트 정권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개혁 성향의 지지를 엎고 등장한 노 정권이었지만, 동시에 경제운영의 책임자로서 갈등구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것은 딜렘마였다.

노 정권은 흐름 속에서 어쩌다보니 결과적으로 부동산 버블의 최후 정점을 만들어낸 것이다.

필자는 2004 년 '부동산 불패신화는 끝났다'는 글을 썼다. 그러나 부동산은 그 때를 계기로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당시 필자는 이런 일을 명확하게 내다보고 있었다. 큰 상승이 있을 것이고 다시 큰 하락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하락은 우리 경제를 참담한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서 국운의 겨울을 만들게 되는 주동력이 될 것임을 말이다.

더하여 달러 약세는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무려 1500억 달러를 해외에 나가 쓰도록 유도했다.

중산층 입장에서 부동산이 오르고 주식이 오르며 달러는 싸지니 해외 명품과 해외 관광, 교육도 해외 명품 교육 등등 결국 우아한 삶으로 가는 길이 눈앞에 놓였음을 확신하기에 충분했다.

이에 당초 개혁을 주장하며 운동하던 사람들도 정권을 차지하자 그 중 상당수가 그와 같은 의식행태를 보이면서 동조화되어갔다. 아울러 대기업 노조 역시 그런 풍조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슬그머니 외면하기 시작했다.

양극화 추세는 더욱 뚜렷해졌고 어려워진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었지만 여유를 가진 사람들은 실로 우아한 삶의 나날들을 이어갔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지만 그것은 환경변수일 뿐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달러로 인해 외환위기설까지 나오고 건축업자들이 부도 직전, 아파트 시세의 연이은 폭락,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는데 급급한 은행들, 이 모든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바로 2004 년 8월부터 시작된 흐름의 결과물들인 것이다.

이제 정리하자.

2002년 하반기 타워 팰리스와 노무현 정권이 동시에 등장했다. 노무현 정권은 패배했고 타워 팰리스도 패배했다. 서로 상처만 가득하다. 승자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타워 팰리스를 惡(악)으로 본다면 그 또한 틀렸다고 본다. 그것은 우리 속에 깃든 욕망의 투영일 뿐이니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노 정권을 善(선)으로 보는 시야도 틀렸다고 본다. 과거가 잘못 되었고 정의가 패배했다는 역사관 역시 경청할만한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 전체의 생각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의 일부이기에 우리 자신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수가 보낸 트로이 목마로 보는 시야 역시 운동권적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정권의 가장 큰 임무가 국가와 국민의 통합을 유지하는 일이니 지지계층의 주장만을 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 대통령 역시 애를 많이 쓰셨다고 여긴다. 그저 한 가지, 왜 격함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런 독한 말로 사람을 한강으로 내몰았는지, 실로 천추의 한을 남겼음이다.

지금이라도 유가족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제발 지저분한 소송사태로까지 가지 않았으면 한다. 사과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 형식을 떠나 인간적으로 찾아가서 유족을 껴안고 함께 목 놓아 통곡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정말이지 바람이 없겠다.

여전히 우리는 우리 속의 욕망과 정의, 이념, 생각들과 싸우고 있다. 그 대립되는 요소들은 남이 아니라 우리 속의 것들이니 우리가 우리와 싸우고 갈등하고 때로는 타협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토록 싸우고 있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고도 자명하다. 더 잘 되고 잘 살기 위해서인 것이다.

우리가 고민하고 고뇌하는 것은 그 대상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인 것이다. 누가 대신 고민하고 고뇌해주랴.

당신이 욕망으로 씩씩거리고 좌절하고 겉멋을 부리고 허영을 좇으며 때로는 진지하고 진실한 양면성의 모순을 예리하게 느끼고 있다 하자. 그다지 괴로워할 것 없다 여긴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건강하다는 징표일 수도 있기에.

그렇기에 대한민국 역시 여전히 건강하다. 그저 앞으로 15 년에 걸친 겨울을 보내고 나면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성숙해갈 것이다.

그러고 보니 2008년, 대단했던 한 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혹여 이 글을 읽다가 필자의 생각과 논조에 마음 상하신 분이 있다면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세밑이니 모두 청산하고 넘어간다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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