梧桐雨(오동우), 오동나무에 듣는 가을비  _  2009.6.4
중국 원대의 희곡, 元曲(원곡)중에서 걸작으로 알려진 ‘梧桐雨(오동우)’의 끝 부분에서 당 현종이 양귀비를 그리며 혼자 自嘆(자탄)하는 대사를 옮겼다. 소리내어 읽어보시라, 무척이나 아름답다. 주의사항은 낭독하시되 쉼표 부분에서 한 숨 쉬고 읽으라는 점이다.

장생전에서의 그날 밤, 회랑 돌아가며 맹세할 제, 오동나무 마주보고 어깨 나란히 기댄 채, 온갖 말로 도란도란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침향정에서의 그 날 아침도, ‘예상우의곡’에 맞춰 六幺(육요)를 춤추고, 붉은 박자 맞추며, 갖은 곡조 다 부려 흥청대며 즐겼는데...! 바로 그 때의 즐거운 자리가, 오늘의 서글픈 신세 잉태했나 보다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노라.

(배경곡 三煞시작)
부슬부슬 버들가지에 듣는 비는 서글픈 안채 주렴 장막 파고들고, 보슬보슬 매화에 듣는 비는 강가 가득한 누각 꾸며주며, 살구꽃에 듣는 비는 붉게 난간 적시고, 배꽃에 듣는 비는 옥 같은 얼굴 쓸쓸하게 만들며, 연꽃에 듣는 비는 파란 일산 같은 잎사귀 나풀나풀 춤추게 하고, 노굿에 듣는 비는 파름한 잎 스산하게 한다네! 이 모두는 이놈의 비같이 놀란 넋 꿈에서 깨워, 원망에 사무치고 시름 더하면서, 밤 넘기고 새벽 지새게 하진 않았노라! 혹시 물의 신선이 제 잘난 것 뽐내자고, 수양버들 적시고 바람 몰아치게 한건 아닌지?
(배경곡 二煞 시작)
콸콸 흡사 솟아오르는 샘의 상서로운 짐승이 쌍둥이 늪에 강림하기라도 한 듯, 사각사각 마치 뽕잎 먹는 봄누에가 누에채반에 널부러지기라도 하듯, 마구 옥계단에 쏟아지니, 그 물은 궁궐의 물시계로 전해져, 아로새긴 처마로 날리면서, 새 물통에 방울지누나! 시간 다 가고 물시계마저 멈추면, 배개 차지고 자리조차 썰렁해지며, 초 꺼지고 향 사그러질 때까지, 거침없이 쏟아지겠지? 여름날 저도 모르는 새, 고봉의 보리 다 쓸려 내려갔더라는 말뜻을 이제야 알겠노라!
(배경곡 黃鐘煞 시작)
서풍 따라 나지막이 깁 창문 울리고, 한기 쫓으며 빈번히 수 놓은 뙤창 두드리니, 하늘이 일부러 사람을 슬픔에 몸부림치게 하시는 건 아닐까? 벼랑길에  울려퍼지는 방울 소리 엮어내니, 화노의 갈고 소린가, 伯牙(백아)의 水仙操 (수선조) 가락인가? 노란 국화 씻기고, 울타리 축이며, 푸른 이끼 적시는가 하면, 담벼락에 쏟아 붓고, 호숫가 돌산에 배어들고, 바위틈에 스며들고, 시든 연꽃에 깃들면서, 연못으로 넘쳐 흐르누나! 때 늦은 나비 적셔 그 가루 시나브로 옅어지고, 흩날리던 반딧불이 적셔 그 불조차 켜지지 않는데, 푸른 창가에선 귀뚜라미 울어젖히고, 기러기 소리는 가깝지만 그림자는 높아, 이웃집 다듬이 소리 곳곳에서 울리도록 재촉하더니, 초가을 날씨 유난히도 빨리 다가서게 만들었구나! 곰곰이 따져보건대 이 하룻밤 내내, 비와 사람이 서로 날밤 지새면서, 銅壺(동호)에 똑똑 물방울 듣는 소리와 어우러져, 비 더욱 많이 쏟아지고, 눈물 또한 적지 않았도다! 비가 차가운 우듬지 적시면, 눈물은 곤룡포 물들이며, 서로 지지 않으려는 듯, 나란히 한 그루 오동나무를 사이에 두고 새벽까지 방울져 내리누나!

(낱말풀이)
노굿이란 콩이나 팥의 꽃.
뙤창이란 들어 올려 여는 창.
우듬지란 나무 꼭대기 줄기

戱曲(희곡)이란 본시 연기를 말하는 戱(희)와 노래를 포함하는 대사 부분인 曲(곡)이 함께 곁들여지는 양식이다. 우리 판소리나 일본의 ‘노오’나 ‘가부키’, 중국의 전통극이 그런 것들이다. 장국영이 주연한 ‘패왕별희’도 이런 희곡이다.

오래 전 중국 베이징에서 원대 잡극들을 즐겁게 관람했던 추억이 새롭다. 그런데 내가 이 ‘오동우’ 끝부분을 옮긴 것은 우리 말 번역이 너무나도 훌륭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우리말로 대사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번역한 분은 중문학 전공자들인 박성훈, 문성재이고 책은 고려원 출판사이고 1995 년 초판 본 “중국 고전희곡 10 선”이다. 이런 책들이 사장되고 절판되는 것이 늘 안타깝다.

기억해두었다가 여름 장마가 시작되면 다시 클릭해서 이 글을 감정까지 잡아가며 연기하듯 낭독해보시면 아주 즐거울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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