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말의 멋과 정취  _  2009.6.4
홀연히 보니 한 곳에 그윽한 집이 있는데 고흔 수풀이 무성하고 드린 버들이 그림자가 엉기고 푸른 연기는 비단을 깐 듯하고 그 속에 조그마한 다락  집이 있는데 단청이 찬란하며 精灑(정쇄)하고 그윽하여 그 맑은 경치가 하   사랑할지라,
이에 채찍을 끌고 천천히 나아가 보니 긴 가지 짧은 가지가 땅에 얽혀 흔들리는 것이 미인의 머리를 감고 바람 앞에서 빗질하는 것 같으니 가히 아름답고 구경할만 하거늘 한 손으로 버들가지를 휘어잡고 주저하여 능히 가지 못하고 탄식하되,
“우리 楚中(초중)에 비록 아름다운 나무가 있으나 일쯕 이 같은 버들을 보든 바 처음이라.”하고 드디어 楊柳詞(양류사)를 지으니 하였으되,

양류 푸르러 짜는 것 같으니
긴 가지가 그림 다락에 뜰쳤더라
원하건대 그대가 부지런히 심은 뜻은
이 나무가 가장 풍류러라

楊柳靑如織 (양류청여직)
長條拂畵樓 (장조불화루)
願君勤種意 (원군근종의)
此樹崔風流 (차수최풍류)

양류가 어찌 그리 청청한고
긴 가지가 비단 기둥에 뜰치더라
원하건대 그대는 매달려 꺾지 마라
이 나무가 가장 정이 많더라

楊柳何靑靑 (양류하청청)
長條拂綺楹 (장조불기영)
願君莫攀折 (원군막반절)
此樹最多情 (차수최다정)

(중략)

다락 우에 들리니 그 속에 마침 한 가인이 있어 낮잠이 깊었다가 홀연 놀라 깨어 벼개를 밀치며 수 놓은 창을 밀치고 아로새긴 난간에 의지하여 눈을 흘려 사면으로 소래 나는 곳을 찾다가 문득 楊生(양생)으로 더불어 두 눈이 마조치니 구름 같은 터럭은 어지러졌는데 옥비녀는 비뚜로 걸려 있고 자든 눈은 朦朧(몽롱)하여 꽃다온 정신이 어리석은 듯하고 약한 기질이 힘이 없어 졸음 흔적이 오히려 눈썹 끝에 있으며 연지는 반이나 빰에 지어져 천연한 자색과 嬋娟(선연)한 태도는 가히 말로 써 형용하지 못하고 채색으로도 그리지 못할러라.

(중략)

유모 또한 기꺼하며 소매 속에서 한 봉 글을 내어 양생을 주거늘 떼어보니 곧 楊柳詞(양류사)라, 그 글에 하였으되,

다락 머리에 양류를 심고
비겨 낭군의 말을 매여 머무르게 함이어늘
어찌하여 꺾어 채찍을 맨드러
장대 길을 재촉하야 향하는고

樓頭種楊柳 (누두종양류)
擬繫郞馬住 (의계랑마주)
如何折作鞭 (여하절작편)
催向章臺路 (최향장대로)

양생이 한 번 읊고 그 글의 청신함을 사랑하여 극히 친찬하되,

(중략)

유모 응락하고 돌아와 소저께 고하되, “양생이 華山(화산)과 渭水(위수)로 맹세하여 꽃다온 인연을 完定(완정)하고 또 소저의 글을 칭찬하며 인하여 글을 지어 화답하더라.” 하고 楊郞(양랑)의 글을 드리거늘 소저 받아보니 하였으되,

양류 천만 실이
실실이 心曲(심곡)을 맺었더라
원하건대 달 아래 놋줄을 지어
좋이 봄 소식을 맺겠더라

楊柳千萬絲 (양류천만사)
絲絲結心曲 (사사결심곡)
願作月下繩 (원작월하승)
好結春消息 (호결춘소식)

소저 읽고 나서 꽃다온 얼굴에 기쁜 빛이 가득한지라,

소설 구운몽에서 양소유가 처음 만나 마음을 주는 ‘진채봉’과의 조우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을 옮겨보았다.

양소유는 처음에 시를 지어 佳人(가인)에게 마음을 전했고 이에 가인은 유모를 통해 역시 시로 和答(화답)한다. 그리하여 마음을 정하고 양소유는 다시 시 한 수를 지어 증거로서 전달하는 내용이다. 얼마나 멋스러운 佳約(가약)의 장면인가!

이 글을 여기에 옮겨놓은 까닭은 우리 옛말의 우아한 정취를 조금이나마 알려드리기 위함이다. 미인을 묘사하는 대목은 실로 압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구운몽은 연세대학교에서 출판한 ‘이가원’ 역주본으로 소중히 애장하고 있는 책이다.

가급적 우리말의 어휘를 살려 고전적인 가치를 지니게 하였다고 역자는 밝히고 있다. 평소 구운몽을 좋아하여 여러 본을 읽어 보았지만, 이 책만큼 우리 운문의 멋을 살리고 정확한 주해를 하고 있는 책은 없는 것 같다.

구운몽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조선시대 문학의 최절정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토록 뛰어난 것인지 오늘에 와서 모르고 있으니 그를 안타까이 여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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