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방하고 거침없는 사랑의 노래들  _  2009.6.12
고려비단의 허리끈을 풀고서 함께 밤을 지샜건만 그런데도 어찌하여 당신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견딜 수 없어라. (만엽집 제14 권, 3465)

(시골 아낙이 남긴 짧은 시. 당신이 오는 날 밤 치장했던 한반도에서 수입된 비싼 허리끈을 풀고 진한 사랑을 나누었건만 여전히 당신이 그립기만 하니 이 마음을 견딜 수가 없다고 노래하고 있다.)

갈대 무성한 벌판의 초라한 오두막에서 사초멍석을 살랑살랑 소리나게 깔고서 사랑하는 내님과 하룻밤을 보냈었지. (고사기 중권 神武朝)

(진무천황의 황후가 그 이전에 연인과 보낸 하룻밤의 일을 추억하고 있는 시다. 놀랍지 않은가, 황후가 혼인 이전의 사랑에 대해 고백하고 있는 것이. 옛날 일본은 이런 일을 그다지 문제 삼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운 性(성)을 즐겼다.)

옷소매 스치는 차가운 바람, 오늘밤 안 오신다면 나홀로 자리.(만엽집 제13권, 3282)

(추운 밤길 사랑을 나누기 위해 오셔야 하니 혹여 너무 춥고 힘들어 오지 않는다 해도 원망치 않고 이해하겠다는 사랑의 고백이다.)  

이렇게까지 그대가 그리운 것이라면 높은 산의 바위를 베개삼아 죽어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니. (만엽집 제2권, 86)

(한창 열을 올리던 연인의 마음이 이미 다른 곳으로 간 것 같으니 차라리 이젠 죽어버리겠다고 성질을 부리고 있다.)


(호호당의 생각:

일본인들의 고대 시가를 담은 책으로 대표적인 것이 萬葉集(만엽집)이다. 만요수라 발음한다. 천황에서 귀족, 평민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노래를 모은 책이다.

萬(만)개의 노래를 마치 잎사귀(葉)처럼 모았다(集)는 의미로 해석해도 된다. 무려 4500 여수의 시와 노래를 모아놓았으니 일본 고대 문학의 정수라 하겠다. 국내에도 발췌 번역본이 있다.

‘만엽집’에 실린 시들을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유교적 엄격성이 들어가기 이전 자유스러웠던 일본인들의 사랑과 섹스를 엿보게 한다는 점, 우리도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일본인들은 저토록 기록을 다 남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모조리 없애버렸지 하는 생각, 기록을 중시하는 일본과 기록을 남기지 않는 우리의 차이점 등등 많은 생각이 들곤 한다.

왜 우리 삼국시대의 보물들은 모조리 일본에 저토록 잘 보존되어 있으며 우리는 어찌하여 모조리 망실했지 하는 의문점을 만엽집을 보면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찌되었든 귀족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사랑의 노래로 가득한 만엽집과 여타 일본 고문서들이 부럽기만 하다.

참고로 유교질서가 들어가기 이전의 일본은 여성이 남성에게 결코 예속되어 있지 않았고 경제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여성이 우위에 있었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이 시들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여기 나온 시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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