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강물도 마침내 바다로 흘러가나니  _  2009.8.16
아트 가펑클이 부른 노래, 하지만 곡과 가사는 폴 사이먼이 지은 유명한 노래 'Brige Over Troubled Water'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대 지치고(when you're weary), 초라하게 느껴져서(feeling small)...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으레 떠올리는 시가 하나 있다. 언젠가 명리학 칼럼에서 소개한 적도 있다.

오늘 가펑클의 노래를 듣자 다시 떠올리게 되었으니 한 번 더 소개한다.

From too much of living,
From hope and fear set free,
We thank, with brief thanksgiving,
Whatever Gods may be,
That no life lives for ever,
That dead man rise up never,
That even the weariest river
Winds somewhere safe to sea.

너무 많은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니
그 신들이 어떤 신이든 간에
짤막한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어떠한 삶도 영원히는 살지 못하고
죽은 자 다시 일어서지 못하지만
가장 여린 냇물일지라도
구비 흘러 마침내 편안한 어떤 바다로 가게 되나니.

사실 두운이나 각운이 그리 잘 짜여진 시는 아니다.  

가펑클의 노래 첫 구절이 when you're weary 로 시작되고, 이 시의 뒤에서 두 번째 구절에 ‘weariest river’가 들어있기에 연결이 되는 것이다.

이 시에는 다소의 우울한 정서, 멜랑콜리한 맛이 담겨져 있다. ‘가장 여린 냇물’과 같은 문구, 또 그것이 흘러서 ‘어딘지는 몰라도 편안한 바다’로 간다는 대목 등이 그렇다.

아울러 ‘너무 많은 삶에 대한 애착’이란 말에서처럼 삶과 욕망에 대해 약간 벗어나있는 관조의 자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는다는 대목은 특유의 정서를 불러온다. 불만족하지만 그럼에도 만족은 내가 해줄 수 있다 또는 내가 해준다는 식의 기묘한 느낌. 어찌되었든 감사는 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기독교의 신이 아니라 여러 신중에서 어떤 신이 되어도 좋다는 대목은 서구 기독교 입장에선 다소간 이교도적인 면모, 그러니 범신론적인 취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서구 사회의 통념적 가치관과 배치되고 있다.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은 자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구절은 기독교적 永生(영생)의 소망과 나아가서 윤회전생을 말하는 힌두 또는 불교적 생각과도 다르다는 점, 모든 것이 한 번으로서 끝이 난다는 대단히 현실적인 생각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린 냇물이라도 끝내 흘러서 어떤 바다이든 그 편안한 품에 안긴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종교적 기원을 담고 있으니 이 또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시를 앙드레 모로아의 소설 ‘사랑의 풍토’에서 주인공의 연인이 읊조리곤 한다. 그러면 주인공은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그리고 당신은 생명 그것이란말이요 하고 반발한다.

그러면 연인은 비꼬 듯이 서럽게 입을 삐죽 내밀면서 그렇지만 ‘저는 아주 여린 냇물이라’고 반발한다.

툭탁거리고 씨우다가 끝에는 ‘실은 말야, 오딜르, 당신의 모든 결점과 더불어 당신을 사랑한단 말요’하고 주인공이 말한다.

그러면 ‘저도 역시 마찬가지예요.’하고 연인 오딜르도 답한다.

서로가 워낙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던 까닭에 사랑은 실패로 끝이 나지만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사랑은 진실했으니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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