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아삭, 나물뿌리를 씹는 소리!  _  2009.9.29
春日(춘일)은 氣象(기상)이 繁華(번화)하여 사람의 心神(심신)을 駘蕩(태탕)케 하나 秋日(추일)에 미치지 못하니,

秋日(추일)은 雲白風淸(운백풍청)하고 蘭芳桂馥(난방계복)하며, 水天(수천)이 一色(일색)인데다 上下(상하)가 空明(공명)하여 사람의 정신과 뼈를 모두 맑게 하는 까닭이다.

(좀 더 풀어보자.)

봄날은 날씨 온화하고 만물이 피어나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느긋하고도 호탕하게 만드니 실로 좋은 계절이지만 역시 가을날에 미치지는 못하니,

가을날은 흰 구름에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난초는 어여쁘고 계수나무 향기 가득하다, 더하여 물과 하늘이 한 가지 색으로 푸르고 하늘과 땅 사이는 투명하고 밝아서 사람의 정신은 물론 뼛속까지도 맑게 씻어내는 까닭이니라.

글 중에 水天(수천)이 一色(일색)이란 말이 매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짬을 내어 ‘팔당호’에 나가보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것이다. 푸르고 맑고 투명한 물위로 드리우는 나뭇가지와 그 그림자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제 강원도 상남 내린천 지류인 미산계곡을 다녀오면서 이 문구가 기억이 났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 번 떠올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다 기억해 내진 못했다. 집에 돌아와 얼른 책을 펼치고 찾았다.

책은 菜根談(채근담), ‘나물뿌리와 같은 이야기들’이라는 뜻이다.

나물뿌리라고 하면 가장 보잘 것 없는 먹을 것이다. 그래서 거친 음식, 즉 粗食(조식)의 대명사로도 쓰인다. ‘누군 나물뿌리 먹고’ 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채근담이란 일견 나물뿌리와 같이 별 볼일 없는 이야기들을 모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러나 계속 씹어보면 그 속에 삶의 참맛이 담겨있다는 뜻이다.

중국 명나라 말 ‘홍자성’이 엮은 책으로 ‘사람이 늘 나물뿌리만 씹고 살 마음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小學(소학)의 글귀에서 따왔다고 한다.

내 생각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딱 한권의 책만 허락된다면 이 채근담을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다시 한 권의 책이 더 허용된다면 法句經(법구경)을 권하고 싶다.

다음으로 다시 한 권 더 허락된다면 이백과 두보 등의 시를 모은 ‘唐詩集’을 권하고 싶다.

다시 한 권? 사마천의 史記列傳(사기열전)을 권하고 싶다.

세상에 좋은 책 실로 많지만, 이 네 권이면 한 세상 살아감에 있어 우둔하고 모자라다는 평을 듣는 일 없을 것이고 한편 풍류가 있다는 말 또 사람됨이 크다는 말까지 들을 것이라 본다.  

가을이 봄보다 더 좋다는 이유를 들고 있는 채근담의 원문을 여기에 옮긴다. 생각에 마음을 닦으려면 가을이, 浩然(호연)한 마음을 기르려면 봄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여름과 겨울 또한 그 나름 좋기만 하다.  

春日氣象繁華 令人心神駘蕩
춘일기상번화 영인심신태탕

不若秋日 雲白風淸 蘭芳桂馥
불약추일 운백풍청 난방계복

水天一色 上下空明 使人神骨俱淸也
수천일색 상하공명 사인신골구청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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