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꽃이 그려진 부채  _  2010.2.18
이제 슬슬 봄바람이 부나 보다, 햇빛이 밝으니 바람이 찬지 아닌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책상 위의 책이 바뀌고 있다. 그저께 교보문고에 가서 눈에 쏙 드는 책을 한 권 샀다. 제목은 桃花扇(도화선), 복숭아꽃 그림이 그려진 부채, 華奢(화사)한 느낌이 든다. 살펴보니 을유문화사 2008 년 9월 초판이었다.

반가웠다, 아주 오래 전 베이징의 가을날 나는 이 중국 연극을 관람한 적이  있었던 까닭이다.

어떤 책이냐고? 우선 극중에 나오는 詩句(시구)들을 잠깐 소개하겠다.

주인 없는 봄은 어지러워라,
비바람에 배꽃은 새벽 단장한 가지를 껶였도다.

시절이 춥다고 술마저 차가우면 안 되지,
꽃이 좋아야 사람들 많이 끄는 법이라네.

모란꽃 비록 좋다지만,
이 봄 지나가면 어이 견디리?

돌맹이는 墨花(묵화)에 깨어지고
이끼 몇 점이 섬돌에 박히네.

이런 글들이 전편에 가득하다.

말이 나온 김에 중국 연극에 대해 잠깐 소개한다.

지방에 따라 다양한 연극 스타일이 있으나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京劇(경극)이 있고 쑤저우를 중심으로 하는 崑劇(곤극), 상해 중심의 越劇(월극), 사천 중심의 川劇(천극)이 주류를 이룬다.

崑劇(곤극)은 중국 청나라 당시 소주와 항주, 곤산을 중심으로 주로 문인과 지식인들이 즐기던 연극으로 문학적 대사가 아름답다.

京劇(경극)은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패왕별희’를 예로 들 수 있다. 진행이 빠르고 경쾌한 맛이 있으며 남자배우만이 출연한다. 반면 越劇(월극)은 여자배우만이 출연한다. 그리고 川劇(천극)은 액션이 뛰어나고 순간적으로 얼굴단장을 바꾸는 變瞼(변검) 등의 볼거리가 풍부하다.

중국 연극은 시작할 때 등장인물이 나와서 시 한 수를 음악에 맞추어 읊조린 뒤에 대사를 한다. 앞에 소개한 시들은 그런 것들이다.

중국 唐詩(당시)를 즐기는 나는 중국 여행을 할 때 여러 편의 崑劇(곤극)을 즐긴 바가 있다. 연극 대본을 보면서 배우들의 교태어린 몸동작과 함께 그 묘한 발성을 듣노라면 그만 혼줄을 놓곤 했다.

우리 판소리 대단히 좋은 것이고, 일본의 전통 연극도 잘은 모르지만 가끔 텔레비전으로 대할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곤 한다.

나는 서양 오페라나 최근의 뮤지컬보다 한일중의 전통 연극을 훨씬 좋아한다. 다만 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도화선의 카버 디자인도 古雅(고아)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다. 본격 봄날이 오면 내 작업실 창문을 열고 방안을 오가면서 큰 소리로 책속의 대사를 낭독하면서 그 정취에 흠뻑 빠져들어야지 하는 생각이다.

연극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서 보는 것보다도 책을 들고 자신의 목소리로 크게 낭독하면서 상상의 세계로 빠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년 여름 장마철, 파우스트를 들고 아주 큰 소리로 읽어가며 흠씬 즐겼다.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가 방음막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금년 여름에는 아마도 이 桃花扇(도화선)이 인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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