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었던 시, 그러나 지금은 또 다른 맛의 詩(시) 한편  _  2009.11.22
저 멀리 위로 늦가을 산에는 비스듬 돌계단이 보이고
흰 구름 이는 곳에는 사람 사는 마을이 있구나,
길가는 수레를 세운 것은 해질 녘 단풍 숲을 좋아하는 까닭이니
서리 맞은 단풍잎이 2월의 봄꽃보다 더 붉었구나.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座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
원상한산석경사 백운생처유인가 정차좌애풍림만 상엽홍어이월화

호호당의 생각: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적이 있는 杜牧(두목)의 山行(산행)이란 시다.

李商隱(이상은)과 함께 중국 唐(당) 나라 후기의 시인 중에서 雙璧(쌍벽)을 이루었던 사람이고, 잘 생긴 얼굴에 호방한 성격으로 기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風流才子(풍류재자)였다.

열 일곱 나이에 이 시를 배웠을 때는 무척이나 밋밋한 느낌이었다. 먼 가을 산에 돌계단이 있다? 그러니 뭐 어쨌다는 말? 또 구름 이는 곳에 山村(산촌)이 있다니 그래서 뭐? 하는 생각이었다.  

팔자 좋아서 수레를 타고 가다 해질 녘 단풍 숲이 좋아서 차를 세우고 구경한다. 그런데 붉은 단풍이 봄꽃보다 더 붉어? 뭐 그럴 수 있지, 표현이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네 하는 마음이었다.

세월 따라 나이 먹어가는 사이로 이 山行(산행)이란 시는 무수히 접했고 또 감상해왔다. 그러면서 서서히 알게 된 것이 있다.

詩(시)라는 것은 少年(소년)에 즐길 수 있는 물건은 절대 아니고 또 靑年(청년)에도 戀歌(연가)를 제외하면 제 맛을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시에 대한 나이 좀 먹은 사람의 감상은 어떤 것인지 얘기할 까 한다. 이 얘기는 어쩌면 55 세의 호호당이 38 년 전의 내게 들려주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멀리 위로 늦가을 산, 寒山(한산)이 보인다. 시인의 삶도 이제 늦가을로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그 산에는 비스듬하게 올라가는 한 가닥 돌계단이 보인다. 시인이 고단하게 밟아 올라야 했던 인생길이기도 하다. 시인은 혼잣말로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내 열심히 저 길을 올랐었구나’하고 읊조린다.

이런 생각이 ‘저 멀리 위로 늦가을 산에는 비스듬 돌계단이 보이고’ 라는 구절이다.

흰 구름이 이는 산골짝에는 사람 사는 마을이 있다, 내 한 때 입신출세 그리고 큰 포부를 펼치겠다는 마음 가득했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떠나 달리 무슨 길이 있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정리가 된다.  

이런 생각이 앞 구절에 이어 ‘흰 구름 이는 곳에는 사람 사는 마을이 있구나’로 연결된다.

그러고 나니 시인은 그간 애 졸이고 간장 태우던 쓸 데 없는 마음 그만 다 내려놓고 싶어졌고, 그러고 보니 눈앞에 해지는 무렵의 단풍 숲이 새삼스럽게 다가와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래 내 삶도 이제 해질 녘, 이 몸 역시 저 단풍잎처럼  삶을 마감하고 정리할 때가 되었구나 싶다.  

이런 생각이 ‘길가는 수레를 세운 것은 해질 녘 단풍 숲을 좋아하는 까닭이니’로 표현되고 있다.

유한한 삶인 것을 뒤늦게 깨우치고 나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찬 서리내린 듯 백발의 노쇠한 몸이지만 삶에 대한 열정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구나, 이 붉은 眞紅(진홍)의 마음빛깔은 2월에 피는 紅梅(홍매), 이제 삶을 시작하는 철모르는 少年(소년)의 순수한 마음보다 오히려 더 붉었구나!    

이런 생각이 ‘서리 맞은 단풍잎이 2월의 봄꽃보다 더 붉었구나’라 끝마치고 있다.

다시 시를 읽어보시길. 제법 그 맛이 느껴질 것이다.

저 멀리 위로 늦가을 산에는 비스듬 돌계단이 보이고
흰 구름 이는 곳에는 사람 사는 마을이 있구나,
길가는 수레를 세운 것은 해질 녘 단풍 숲을 좋아하는 까닭이니
서리 맞은 단풍잎이 2월의 봄꽃보다 더 붉었구나.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座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
원상한산석경사 백운생처유인가 정차좌애풍림만 상엽홍어이월화

엉뚱한 얘기지만, 나는 우리 음악을 서양음악보다 훨씬 좋아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편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음악은 악기에 따라 八音(팔음)으로 나눈다.

금부(金部)는 편종이나 종, 그리고 징고 같은 금속성이고, 석부(石部)는 편경과 같은 돌소리이고, 사부(絲部)는 거문고, 가야금, 아쟁, 비파, 해금와 같은 줄소리, 죽부(竹部)는 피리, 대금, 단소와 같은 대나무 소리이다. 그리고 포부(匏部)라고 해서 생황의 바가지 소리가 있고, 토부(土部)라 해서 훈과 같은 土器(토기)소리가 있으며 혁부(革部)라 해서 장구나 여러 종류의 북이 포함되는 가죽소리, 목부(木部)라 해서 박(拍)이나 축(祝)과 같은 나무소리가 있다.

쇳소리와 돌소리, 줄소리, 대나무 소리, 바가지와 토기, 가죽과 나무 소리가 있어 실로 다양한 音色(음색)의 악기가 있다.

역시 좋아하는 음색은 줄소리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귀에 혹하는 소리는 비파소리이고 다음으로 아쟁이며 그 다음이 가야금, 가장 마지막이 거문고이다. 해금은 좋기도 하고 때론 아닐 때도 있으니 신기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리저리 듣다보면 거문고 소리가 역시 가장 깊고 물리지 않는 고풍의 음색임을 알게 된다. 중국 악기에서는 琴(금)이 으뜸이고 다음으로 중앙아시아가 원산인 ‘얼후’라는 악기의 음색도 정말 좋다.

음악은 곡의 구성도 중요하지만, 역시 소리 자체가 좋고 끌려야만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러니 가장 좋은 소리는 음색이 한없이 다양한 사람의 소리라 하겠다.

시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음악을 말했다.

시를 읽다보면 젊은 시절에는 그림이 먼저 떠올랐지만 나이가 더 들다보니 음악이 그리고 소리가 먼저 들려오는 까닭에 음악을 얘기한 것이다. 詩(시)는 역시 노래인 것 같다.

글을 맺고자 하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서른 무렵의 늦여름 저녁, 남원의 어느 식당에서 들었던 ‘가락’, 약간 어두운 불빛 아래 남색 치마에 은빛 저고리로 단장한 채, 부채를 두 손으로 비틀어가며 속을 들어 올리고 또 짜내던 그 藝人(예인)의 표정이 먼 기억 저편에서도 여전히 오롯하다.


이전페이지로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