淮南子(회남자) 전언훈에 이르길  _  2010.4.30
천지간에 모두 통하여 같은 하나로서 구별도 없고 꾸밈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있으니 이를 일러 太一(태일), 큰 하나라고 한다.

사물은 모두 그 하나로부터 나오지만, 이루어진 바는 서로 다르니, 거기에는 새도 있고 물고기도 있으며 짐승도 있더라. 이를 일러 分物(분물), 사물의 나뉨이라 한다. 그 나뉨의 사물들을 크게 그 특징으로서 구분하고 성질로서 무리를 나누니 그 모든 것의 性(성)과 命(명)은 같지 아니하더라.

모두 有(유), 즉 존재의 기반에 바탕하여 모습을 갖추었지만, 거리가 있어 서로 통하지 아니 하고 마침내 나뉘어져 萬物(만물)을 이루었으니 거꾸로 그 나온 곳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한다.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生(생)이라 하고, 죽은 것을 보고 窮(궁), 막혔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모두 사물을 이룬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事物(사물)을 事物(사물)이게끔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니, 物(물)을 物(물)이게끔 하는 그 무엇은 세상만물 중에는 빠져있다고 하겠다.

먼 태초를 되돌아 생각해보면, 사람은 無(무)로부터 생겨났고 有(유)로서 形(형)을 얻었으니 형이 있는 모든 것은 물질적 기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그 생겨난 바의 바탕으로 되돌아가 형태 없음을 취할 수 있다면 그를 일러 眞人(진인)이라 하겠다. 眞人(진인)이란 처음의 큰 하나인 太一(태일)로부터 나누이기 이전의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眞人(진인)이 되긴 이처럼 어려우니 그렇다면 聖人(성인)은 되어보자꾸나!

聖人(성인)은 名聲(명성)의 主(주)가 되지 않으며, 책모를 내는 府(부)가 되지 않으며, 일을 맡은 자가 되지 않으며, 지략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움직여도 아무런 흔적이 없고, 兆朕(조짐)도 없이 노닌다. 福(복)짓는 일에 앞서지도 않지만, 禍(화)가 될 일도 손대지 않는다. 그저 텅 비고 없는 상태를 지켜나가고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할 때만 움직인다.

복을 바라다가 화를 입기도 하며 이익을 취하려다 해를 입기도 하는 것이니, 꼭 움직일 이유가 없으면 평안하게 잘 지낼 수 있는 자가 그 잘 있을 수 있는 근거를 잃어버리면 위험해지는 법이고,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면 일을 꾸미지 않는 자가 공연히 일을 꾸미다보면 어지러운 난리를 겪는 법이다.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은 그 빛남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게 되며, 의로움은 그 덕으로 인하여 드러나게 되니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움직이면 궤적이 남고, 사람들이 주시하는 것은 움직이면 흔적이 남는다. 움직여서 궤적이 남으면 비난이 따르기 마련이고, 행하여서 흔적이 생기면 결국 옳고 그름에 대한 시비가 따르게 된다.

이에 聖人(성인)은 그 밝음을 감추고 無爲(무위)로서 흔적을 덮는다.

저 옛날 용맹을 자랑하던 왕자 慶忌(경기)는 결국 칼에 맞아 죽었고, 활로 전설이 된 羿(예)는 배신한 부하의 몽둥이에 맞아 죽었으며, 공자의 용맹한 제자 子路(자로)는 위나라에서 죽어 소금 절임을 당했고 변설로 명성을 날린 蘇秦(소진)은 결국 입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이들은 바로 그들의 장점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리라.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자 없으며, 부족한 점은 모두 賤視(천시)하는 법이다. 귀하게 여기는 바에 탐닉하고 천하게 여기는 것을 극도로 멀리하는 까닭에 귀하게 여기는 것은 절로 모습이 드러나고 천하게 여기는 것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앞서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 호랑이와 표범은 그 강맹함으로 인해 화살을 받게 되고, 원숭이는 민첩함 때문에 우리에 갇히게 되는 것이니, 사람이 천한 것을 오히려 귀하게 여기고 귀한 것을 천하게 여길 수 있다면 그야말로 그자와 더불어 지극한 理致(이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끝)



이 글은 淮南子(회남자) 詮言訓(전언훈)의 시작부분이다. ‘전언’이란 모든 지혜의 말이란 뜻이다. 등장 인물에 대해 약간의 해설을 달고자 한다.  

慶忌(경기)는 오나라의 왕자로서 무예에 능했다. 오나라는 당시 왕위 쟁탈로 내분 중이었는데, 손자병법을 저술한 孫武(손무)는 자신을 천거한 충신 伍子胥(오자서)와 함께 왕자 경기를 자객을 보내어 죽이고 새로운 왕을 추대했다. 그가 바로 闔閭(합려)로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부국강병책을 통해 패권을 장악하니 이른바 ‘춘추오패’ 중의 한 사람이다.

활의 명인 羿(예)는 하늘에 해가 열 개나 있어 천지가 모두 타고 말라 죽으려 할 때 활을 쏘아 아홉 개의 해를 떨어뜨리니 하늘에서 아홉 마리의 까마귀가 떨어졌고 하나의 해만 남아 세상은 정상이 되었다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공자의 제자 子路(자로)는 무예에 능하고 강직한 사람으로서 공자와 함께 위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공자가 고국으로 귀국한 뒤에 위나라 정사에 관여한 것이 화근이 되어 죽임을 당하고 소금에 절여 사람들에게 전시되는 재앙을 당했다.

蘇秦(소진)은 중국 전국 말기, 강대해지는 秦(진)에 대항하기 위해 나머지 여섯 나라의 연합책, 이른바 合從(합종)책을 펼쳤던 외교의 달인이었지만 마침내 배신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소진 장의’라 하면 흔히 언변의 달인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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