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窓(산창)에서의 가을밤  _  2011.10.1
산창에서 묵는 길고 긴 가을밤 견디기가 어려우니
먼 마을에서 들리는 다듬이 소릴 헤아리고 앉았네,

조선 말기 다산 정약용과 좋은 우정을 나누었던 文山(문산) 李載毅(이재의)가 남긴 시의 일부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山窓未耐今宵永 (산창미내금소영)  坐數遙村到耳砧 (좌수요촌도이침)

연휴 첫날 느즈막이 작업실에 나와 창밖으로 구름 없이 높은 가을하늘을 바라보고 앉았노라니 문득 이 구절이 생각났다.

예전에 암송했었는데 세월 많이 지나 마지막 구절만 기억에 남아있다.

내 나이 30 대 시절의 일이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강원도 평창의 봉평 근처에서 민박을 했던 적이 있다. 글을 좀 써보려고 한적한 곳을 찾아갔다가 겨울이라 눈길로 해서 뜻밖에 이틀 더 묵게 되었다. (직장에 전화해서 본의 아니게 휴가를 내었고 상사로부터 야단도 맞았다.)

겨울밤이 어쩌면 그렇게 길고 또 긴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잠은 오지 않고 말동무도 없으니 정말 힘들었다. 가지고 간 원고지는 고스란히 백지 상태였고.

(아울러 동짓달 긴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내어 좋은 임이 오시면 아낌없이 펼쳐 놀아보리라고 노래했던 황진이 누님의 간절한 마음도 그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놀면 겨울밤도 짧으리라!)

앞에 인용한 이재의의 시와 만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지만, 봉평에서의 겨울밤을 연상시키는 바람에 한때 외우기도 했다.  

이재의의 시 역시 그런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산중에서 묵어가는 이 밤이 영원하다 싶을 정도로 길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하고, 이어서 잠에 쉽게 들지 못하니 아예 일어나 앉아서 먼 마을로부터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를 헤아리고 있다 한다.

참고로 宵(소)는 밤이란 뜻이다. 宵半(소반)이라 하면 한 밤중을 말한다. 그리고 砧(침)은 다듬잇돌을 말한다.

다산은 남인(南人) 출신이고 유배살이로 전전하던 신세였던 반면 이재의는 당시 주류였던 老論(노론)의 명문 출신이라 입장이나 생각이 많이 달랐다. 나이도 다산이 열 살이나 연장이었지만,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난 이래로 정말 좋은 친교를 맺었다.

찬밥 출신인 다산은 주자학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노론 출신의 주류인 이재의는 주자학의 정통을 계승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두 사람의 철학은 달랐다.

이에 두 사람은 孟子(맹자)의 문구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편지를 통해 나누고 또 논쟁을 펼쳤다. 두 사람은 끝내 의견 일치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年長(연장)의 장약용은 이재의를 진심으로 아꼈고 이재의 역시 정약용을 존경했다. (오늘날의 지저분한 이념논쟁과는 격이 다르다 하겠다.)

또 시로서 서로의 아끼는 마음을 교류했다.  

다산은 ‘山客(산객)이 거문고를 걸어두고 가버렸으나 바람이 불면 거문고는 절로 소리를 낸다’고 읊었고 이에 이재의는 ‘절개를 변치 않는 소나무여, 이 마음을 누구에게 전하리’ 라고 서로 시로서 화답했던 사이였다.

그러니 참으로 아름다운 親交(친교)였다 하겠다.

달력을 살펴보니 오늘이 음력으로 9월 5일이다. 그러니 오는 수요일은 음력 9월 9일, 즉 重陽節(중양절)이다.

중양절은 오늘에 이르러 우리는 명절로 지내지 않지만 옛적에는 상당한 명절이었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큰 명절이고.

옛사람들은 한해 중에 홀수가 두 번 겹치는 날을 吉日(길일)로 쳤다. 홀수는 陽(양)의 수인데 그 양이 두 번 겹치니 좋은 날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1월 1일이나 5월 5일(단오), 7월 7일(칠석) 등이 그것인데 특히 9월 9일은 陽數(양수) 중에서 가장 큰 수가 겹치는 날이라 重陽節(중양절)이라 했다.

중양절에는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고 문인들은 시를 읊으며 즐겼다. 집집마다 화채를 만들거나 국화전을 부쳐 먹었다. 중양절은 黃菊(황국)이 만개하는 계절인 것이다.

내친 김에 중양절을 소재로 하는 시 한 수 소개한다.

過了登高菊尙新 (과료등고국상신)
酒徒詩客斷知聞 (주도시객단지문)
恰如退士垂車後 (흡여퇴사수차후)
勢利交親不到門 (세리교친부도문)

중양절이 지났어도 국화는 여전히 새롭건만
술꾼과 詩客(시객)중에는 묻는 이가 끊어졌네,
이는 마치 은퇴한 관리 수레를 걸어놓고 나면
세리 따라 친교하던 이들 발걸음하지 않는 것과 같네.

登高(등고)란 표현은 중양절에 높은 산에 오르는 풍습으로 해서 붙여진 중양절의 별칭이다. 시인은 중양절이 지났지만 피어나는 국화는 여전히 가을 정취를 더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중양절을 핑계로 술 마시던 무리들과 시를 짓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표정이니 야속하다는 것이다.

이에 시인은 마치 그 모습이 은퇴한 관리가 이제 관아에 나갈 일이 없어 집문 앞에 수레를 걸어놓고 나면 권세와 이익을 얻고자 열심히 찾아오던 무리들이 발걸음을 끊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쟤는 이제 끝이야 하면서 말이다.

이 시는 중국 南宋(남송) 4대가의 한 사람인 范成大(범성대)가 남겼다.

가을에 피는 노란 국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국화는 계절의 정취 중에 으뜸이 아닐 수 없다.

며칠 뒤 중양절이 지나도 내 황색의 국화를 반기고 즐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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