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蓮說(애련설)  _  2011.2.24
애련설, 연꽃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이 글은 중국 송대 성리학의 길을 연 주돈이 선생이 남긴 글이다.

젊어서 이 글을 대하면서 참 고리타분한 유학자의 글이다 싶었지만, 세월이 갈수록 마음에 스미더니 이제는 정말로 이렇게 살아야 그게 제대로 사는 것이라 여길 정도로 愛好(애호)하는 글이 되었다.

먼저 글부터 보기로 하자.

뭍과 물에서 피는 초목의 꽃 중에서 사랑할 만한 것이 실로 많으니,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수륙초목지화 가애자심번)

진대의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사랑하였고,
晉陶淵明 獨愛菊(진도연명 독애국)

당나라 때부터는 세인들이 모란을 몹시 아끼게 되었으나,
自李唐來 世人甚愛牧丹(자이당래 세인심애모란)

나는 유독 연을 사랑하니, 진흙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아니하고,
予獨愛蓮之出淤泥而不染(여독애련지출어니이불염)

맑은 물결에 씻기면서도 요망하지 아니하고 속은 통하되 겉은 바르며
濯淸漣而不妖 中通外直(탁청련이불요 중통외직)

넝쿨을 치지도 않고 가지를 뻗지도 않으면서 향기는 멀수록 더 맑아지고
不蔓不枝 香遠益淸(불만부지 향원익청)

우뚝 맑게 선 모습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때 묻히기는 어려운 까닭이라,
亭亭淸植 可遠觀而不褻玩焉(정정청식 가원관이불설완언)

나는 말한다, 국화는 은일하는 사람의 꽃이고,
予謂菊花之隱逸者也(여위국화지은일자야)

모란은 부귀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꽃이지만,
牧丹花之富貴者也(목단화지부귀자야)

연꽃은 군자의 꽃이라,
蓮花之君子者也(연화지군자자야)

아, 국화를 사랑한다는 얘기는 도연명 이후 들어본 적 드물고
噫(희)! 菊之愛 陶後鮮有聞(국지애 도후선유문)

연을 사랑함에 있어 나와 같은 자가 얼마나 되리!
蓮之愛 同予者何人(연지애 동여자하인)

그저 모란을 사랑하는 이가 많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牧丹之愛 宜乎衆矣(목단지애 의호중의)


주돈이 선생은 호가 濂溪(염계)여서 주염계 선생이라고들 부른다.

그는 두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太極圖說(태극도설)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通書(통서)라 한다.

특히 통서는 송명 理學(이학)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책으로서 사실상 이 책으로부터 성리학의 滔滔(도도)한 물결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오늘에 와서 性理學(성리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주자학은 후진 것, 양명학은 나름 말이 되는 소리 정도로 알고 있다.

특히 식견이 낮은 左派(좌파) 성향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고, 또 뭐 右派(우파) 성향의 지식인들 역시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학 또는 성리학이 뭐죠 하고 내게 묻는다면 골치 아픈 얘기나 어려운 소리 할 것도 없이 그저 ‘애련설’을 권하고 싶다.

애련설 속에 주돈이의 사상과 삶을 바라보는 식견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성리학이 무엇인지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련설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보자.

진흙에서 나왔으나 塵世(진세)에 물들지 아니한 것이 연꽃이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佛敎(불교)적인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원래 연꽃은 불교의 꽃이고 묘법연화경이 그 상징이다.

그러나 주염계의 생각은 불교적인 발상이 아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이 그대로 진흙탕이라 말하는 것이다. 먹고 살겠다고 악다구니 하는 세상이 현실 세상이고 우리는 그 속에 몸을 담고 산다.

주염계는 비록 그 진흙밭에 살고는 있는 인간이지만 그를 넘어설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맑은 물결에 몸을 씻어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 잘난 척 고고한 척 하며 妖妄(요망)떠는 것도 아닌 연꽃이라 한다. 어디까지나 현실에 몸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은 비어서 무엇이든 통하니 왜곡이나 구김이 없지만 겉 행동은 어디까지나 똑바른 것이 연꽃이고 우리 또한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이리저리 먹고 살겠다고 또 권세를 늘리겠다고 넝쿨을 치거나 가지를 걸쳐놓지도 않고 그저 담백하게 처신하면서, 가까이 있을 때는 오히려 평범하지만 멀어질수록 그 향기를 더하는 것이 연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또한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또 보자, 연꽃이 어떠한지 그리고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 지.

어떤 환경에서도 몸을 맑고 곧게 세워서 그저 바라볼 순 있어도 함부로 만지면서 손때를 묻힐 물건은 아니라고 한다.

어렵건 부유하건 처지에 상관없이 맑은 자세를 지키니 사람간의 사귐에 있어서도 淡淡(담담)할 뿐 공연히 호형호제하고 또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좋을 때는 좋다가 나중에 헌 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물건처럼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염계는 마지막으로 정리한다.

혼탁한 세상 隱逸(은일)하며 사는 것도 좋고, 또 부귀를 잡겠다고 열심히 사는 것도 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그 中道(중도)를 취하겠다는 말로 맺음을 하고 있다.

이 中道(중도), 은일도 아니요 욕망의 세계도 아닌 그 중간 길을 가겠다는 것이야말로 中庸(중용)의 자세인 것이다. 성리학은 다름 아닌 현세에 살면서 초월할 수 있고 그렇다고 저 편 세상만을 바라보는 것도 아닌 균형 잡힌 삶을 위한 배움의 학이라는 점을 주염계 선생은 이 애련설을 통해 얘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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