陶淵明(도연명)의 시, 이무기의 한 서린 情調(정조) 혹은 絶唱(절창)  _  2013.7.22
장마에 물 불어난 양재천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들렀더니 멀리 남쪽으로 청계산이 바라다 보였다. 머리에 희부연 구름을 덮어쓴 어두운 산을 마주하고 있다가 문득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이란 구절이 떠올랐다.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본다는’ 이 구절은 陶淵明(도연명)이 남긴 이래, 예로부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고 인용해왔으며, 그림의 제목으로도 빈번하게 올랐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저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제법 안다고 말하는 이도 잘못 이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약간 시간을 들여서라도 얘기해보고자 한다.  

도연명의 본명은 潛(잠), 물에 잠긴다는 뜻이다. 淵明(연명)은 그의 字(자)로서 ‘연못의 물이 밝다’는 뜻이다.  

이에 연결해보면 潛於淵而明(잠어연이명), 비록 연못에 깊이 잠겼어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 되니 참 아름답다.  

사람들은 흔히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이란 구절 자체가 명구인 줄 알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고 시 전체를 압축하는 상징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 시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호되고 상찬되고 있는 것일까? 지금부터 알아보자.

시는 도연명이 ‘飮酒(음주)’라는 제목으로 지은 20 수의 연작시 가운데 다섯 번째 시이다.  

먼저 원문을 옮기고 이어서 우리말로 옮겨본다.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欲辯已忘言(욕변이망언)

오두막을 지었는데 사람 사는 인근에 있다네
그런데 수레바퀴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지,
그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유를 아는가?
마음이 멀어지면 지척의 땅도 절로 외져진다네,
가끔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 한 송이를 꺾어들고
물끄러미 남녘 산을 바라보며 소일할 뿐이라네,  
날이 저물어가니 산색은 더욱 아름답게 물들고
날던 새들도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보게나,
이런 것 속에 참된 의미가 있음이 분명할 터인데
설명을 해주고 싶어도 마땅한 어휘를 잊었다네.

이제 시의 해설을 달아보자.

사람들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물끄러미 남녘 산을 바라본다는 말에서 사물을 관조한다, 즉 불교의 禪味(선미)를 일컫는 말로 이해를 하는 경향이 일부 있다. 조용히 앉아서 사물을 응시하는 靜觀(정관)으로 잘못 이해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도연명은 중국 동진 시대, AD 400 년대 초반의 사람으로서 당시 불교가 일부 유입되고는 있었으나 당시만 해도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당시의 주된 사조는 어디까지나 노장 사상에서 파생된 玄學(현학)이 주류였다. 그러니 선불교와 같이 고급의 정신세계는 시대적으로 한참 훗날의 일이다.

이 시만이 아니라 도연명의 시 전반을 이해하려면 그가 처했던 환경을 모르고선 불가능하다.

도연명의 증조부는 동진 정권 개국의 일등 공신으로서 많은 권세를 누렸으나 17 명의 아들을 두었기에 일부 자손을 제외하고 상당 수 자손들은 세월이 가면서 영락했다. (임금의 자손들도 그런 법이니 당연한 일이다.)

도연명의 부친은 영락한 집안 출신이었기에 명색만 귀족이었고 경제적 기반은 잘해야 소지주 계층이었다. 자연히 도연명 또한 평생을 하급 귀족에 머물면서 빈한하게 지내야 했다.  

당시 동진 정권은 상층 귀족들이 관직을 독점하는 시대였기에 재능이 있고 없고는 별 관건이 아니었다.

젊어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심히 공부를 했던 도연명이었지만, 결국 시골의 말단 관리에 임명된 것이 고작이었다.  

이에 도연명은 속이 많이 상했던 모양인지 쥐꼬리만한 봉급 때문에 굽실대기 싫다는 이유로 표표히 사표를 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짓고 살았다. 사실 뭐 젊은이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역시 오늘에서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돌아갈 고향이 있고 거기에 농사지을 땅이라도 있다는 점이다.  

도연명의 글재주는 실로 뛰어나서 세월이 가면서 약간의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좋은 일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文壇(문단) 역시도 상층교양 귀족들만의 놀이마당이었기에 그는 잘 해야 시를 약간 쓸 줄 아는 사람 정도로만 취급되었을 뿐이다. 쉽게 말해서 도연명은 당시 문단의 외곽 변두리의 비주류였다.

당시의 유행 사조는 老莊(노장)사상이었고 교양 귀족들의 詩作(시작)은 기본적으로 豪奢(호사)한 고급 놀이 문화였기에 뜻을 알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말들로 가득했으며-이를 玄言體(현언체)라 한다, 또는 세련되고 수려한 詩語(시어)를 만들어내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연명의 시는 기교를 부리지 않고 대단히 소박하고 평이했다. 어쩌면 도연명은 자기만의 시 쓰기를 통해 내용보다 기교에 치중하는 상층 귀족들을 비웃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도연명을 두고 세상에서 물러나 隱居(은거)하는 선비로서 전원과 자연을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남긴 시를 냉철하게 음미해보면 그 바닥에는 소수 名門(명문)귀족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계급사회의 모순에 대한 鬱憤(울분)으로 넘쳐난다.

즉 그가 隱逸(은일)의 삶을 살았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지, 孤高(고고)하고 優雅(우아)한 전원에서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착각한다, 때로 물든 세속의 삶보다 전원의 삶이 더 나은 생활양식일 수 있다고.

하지만 전원에서의 삶은 사실 결코 그렇지가 않다. 전원에서의 삶은 자연 바꾸어 말하면 野生(야생)과 좀 더 가까운 삶이기에 도시의 삶보다 훨씬 척박하고 강인한 정신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제 이쯤에서 시의 내용을 음미해보자.

오두막을 지었는데 어디에 지었는가 하면 시골이긴 하지만 홀로 외딴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동네 근처에 지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 즉 세속과의 거리이다. 도연명은 결코 외딴 숲속이나 높은 심산유곡의 인적 없는 곳에 거처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속세에 집을 지은 것이고 속세로부터 도피한 것은 아니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자기가 사는 오두막으로 수레바퀴 소리나 말 달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일은 전혀 없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지를 아는가? 하고 물어보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이에 대답하길 권력과 중앙에 대한 마음이 없으니 자연히 사람들과 왕래하고 교류할 일도 없다, 그러니 그다지 멀리 떨어진 외진 곳도 아니건만 마치 먼 산속과 같다는 답을 하고 있다.

즉 여기에 오두막을 지은 것은 특별히 자연 속에서 고고한 은일의 삶을 즐기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중앙에 머물면서 줄을 대고 길을 터서 출세해보려는 마음을 이젠 깨끗이 접은 까닭이고 그런 마당에 여기에 와서까지 중앙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혹시나 하며 기웃거리는 마음일랑 아예 없기에 사람 사는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왕래하는 기색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마음이 마냥 편안할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중앙에 진출해서 재능을 발휘하고 명성을 얻어 권세를 휘두르고픈 마음 결코 없지 않은 바, 이에 때로 하루에도 몇 번씩 속이 끓기도 한다는 말을 도연명은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동쪽 울타리에서 가을 국화 한 송이를 꺾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멀리 남산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국화를 꺾어든 것은 늦가을 서리에도 밝은 노랑으로 명랑함을 잃지 않는 국화에서 많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 멀리 남산을 바라보는 것은 긴 세월 속에 유유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는 산의 말없는 무게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주어진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것은 아니고, 치미는 울분이 있을 때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달래가며 살고 있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온당할 것이다.  

하지만 전원에 머물면서 생활하다보니 서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감도 없지 않아 있으니, 인생 솔직히 말해 뭐 있겠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가을 산이 해 저물 무렵이 되어 가일층 그 빛이 곱고, 이에 하루 종일 하늘을 날던 새들도 歸巢(귀소)할 때가 되어 자기 식구들을 부르고 찾아서 둥지로 오순도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실 산다는 것이 저런 것이지 달리 무엇이겠는가 하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래 이게 사는 것이고,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저것이 삶의 참된 모습이고 의미라고 여기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중앙에 진출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픈 마음을 아직 지우지 못하는 있는 자신이 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이에 때로는 수억 마디의 말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막상 말을 하자니 딱히 할 말이 없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도연명의 연작시는 제목이 飮酒(음주)이다. 술을 마신다는 뜻이다. 신세를 한탄하면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을 비웃으면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또 더러는 술 마시는 자신이 웃기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해서 또 술을 마신다. 아무리 마셔도 흐려지지 않는 멀쩡한 정신이 싫어서 폭주를 해보기도 하는 도연명이다.

음주 연작시 20 首(수)는 그런 다양한 정서와 생각의 편린들로 이루어져 있다.  

명문의 후예이지만 몰락해서 더 이상 立身揚名(입신양명)을 바랄 수 없는 자신을 첨예하게 바라보고 느끼면서 괴로워하는 문인 도연명이다.

그러나 전원과 자연은 은혜롭게도 많이 다치고 쓰라린 도연명의 마음을 서서히 치료해주고 있음도 그의 시에서 명확하게 감지된다.  

도연명의 시는 이런 두 가지 흐름이 절묘하게 맞물려서 탄생한 걸작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그의 본명은 潛(잠), 字(자)가 淵明(연명)이었다. 과연 받은 이름 그대로 시대 사정에 밀려 이름을 떨치지 못하고 연못 바닥까지 깊이 잠수를 타야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정신은 밝고 맑았다.  

승천하는 용이 되진 못하고 恨(한)을 품은 이무기로 일생을 보냈지만, 그의 사후 세월이 가면서 마침내 그의 시와 이름은 무지개 구름 위로 높이 솟구쳐 올라 동아시아 문학사상 불멸의 빛을 얻은 도연명이다.

천 수백 년 전의 시대를 살다간 도연명이지만, 오늘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능히 공감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도연명의 시를 조용히 감상하고 음미해보시기를. 또 기회가 된다면 그의 음주 연작시 20 수를 모두 감상해보시길 바란다.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欲辯已忘言(욕변이망언)

오두막을 지었는데 사람 사는 인근에 있다네
그런데 수레바퀴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지,
그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유를 아는가?
마음이 멀어지면 지척의 땅도 절로 외져진다네,
가끔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 한 송이를 꺾어들고
물끄러미 남녘 산을 바라보며 소일할 뿐이라네,  
날이 저물어가니 산색은 더욱 아름답게 물들고
날던 새들도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보게나,
이런 것 속에 참된 의미가 있음이 분명할 터인데
설명을 해주고 싶어도 마땅한 어휘를 잊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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