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팔베개 노래調(조)  _  2012.5.4
이러구러 제 돌이 왔구나. 지난 甲子(갑자)년 가을이러라. 내가 일찍이 일이 있어 영변읍에 갔을 때 내 성벽에 맞추어 성내 치고도 어떤 외따른 집을 찾아 묵고 있으려니 그곳에 한낱 친지도 없는지라, 할 수 없이 밤이면 秋夜長(추야장) 나그네방 찬자리에 갇히어 마주 보나니 잦는 듯한 등불이 그물러질까 겁나고, 하느니 생각은 근심되어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잠 못들어 할 제, 그 쓸쓸한 정경이 실로 견디어 지내기 어려웠을 레라. 다만 때때로 시멋없이 그늘진 뜰가를 혼자 두루 거닐고는 할 뿐이었노라.

그렇게 지나기를 며칠에 하루는 때도 짙어가는 초밤, 어둑한 네거리 잠자는 집들은 人氣(인기)가 끊였고 初生(초생)의 갈구리 달 재 넘어 걸렸으매 다만 이따금씩 지나는 한 두 사람의 발자취 소리가 고요한 골목길 시커먼 밤빛을 드둘출 뿐이러니 문득 隔墻(격장)에 가만히 부르는 노래 노래 淸怨悽絶(청원처절)하여 사뭇 오는 찬 서리 밤빛을 재촉하는 듯, 고요히 귀를 기울이매 그 歌詞(가사)됨이 새롭고도 질박함은 이른 봄의 지새는 새벽 적막한 床頭(상두)의 그늘진 화병에 芬芬(분분)하는 홍매꽃 한 가지일시 분명하고 律調(율조)의 高低(고저)와 斷續(단속)에 따르는 풍부한 풍정은 마치 泉石(천석)의 우멍구멍한 산길을 허방지방 오르내리는 듯한 감이 바이없지 않은지라, 꽤 사정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윽한 눈물에 옷깃 젖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였을레라.

이윽고 그 한 밤은 더더구나 빨리도 자취없이 잃어진 그 노래의 여운이 외로운 베갯머리 귀밑을 울리는 듯하여 본래부터 꿈 많은 선잠도 슬픔에 지치도록 밤이 밝아 먼동이 훤하게 눈터 올 때에야 비로소 고달픈 내 눈을 잠시 붙였었노라.

두어 열흘 동안에 그 노래 주인과 熟眠(숙면)을 이루니 금년으로 하면 스물 하나. 당년에 갓 수물, 몸은 기생이었을레라.

하루는 그 妓女(기녀) 저녁에 찾아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밤 보내던 끝에 말이 자기 신세에 미치매 잠깐 낯을 붉히고 하는 말이, 내 고향은 晋州(진주)요, 아버지는 정신 없는 사람 되어 간 곳을 모르고, 그러노라니 제 나이가 열 세 살에 어머니가 제 몸을 어떤 湖南行商(호남행상)에게 팔아 당신의 후살이 밑천을 삼으니 그로부터 뿌리 없는 한 몸이 靑樓(청루)에 零落(영락)하여 東漂西泊(동표서박)할 제 얼울 없는 종적이 남으로 門司(문사), 香港(향항)이며, 북으로 大連(대련), 天津(천진)에 花朝月夕(화조월석)의 눈물 궂은 생애가 예까지 구을러 온 지도 이미 반 년 가까이 되었노라 하며 하던 말끝을 미처 거듭지 못하고 걷잡지 못할 설움에 엎드러져 느껴가며 울었을러니. 이 마치 길이 자 한 치 날카로운 칼로 사나이 몸에 아홉 굽이 굵은 심장을 끊고 찌르는 애달픈 뜬 세상일의 한가지 본보기라고 할런가.

있다가 이윽고 밤이 깊어 돌아갈 즈음에 다시 이르되 妓名(기명)은 채란이라 하였더니라. 이 ‘팔베개 노래’調(조)는 채란이가 부르던 노래니 내가 영변을 떠날 臨時(임시)하여 빌어 그이 親手(친수)로서 기록하여 가지고 돌아왔음이라. 무슨 내가 이 노래를 가져 감히 諸大方家(제대방가)의 시적 안목을 욕되게 하고자 함도 아닐진댄 하물며 이맛 鄭聲魏音(정성위음)의 현란스러움으로써 예술의 神嚴(신엄)한 궁전에야 하마 그 문전에 첫 걸음을 건들어 놓아 보고자 하는 僭濫(참람)의 의사를 어찌 바늘끝만큼인들 염두에 둘 리 있으리오마는 역시 이 노래 야비한 세속의 浮輕(부경)의 일단을 稱道(칭도)함에 지나지 못한다는 비난에 마출지라도 나 또한 구태여 그에 대한 遁辭(둔사)도 하지 아니 하려니와, 그 이상 무엇이든지 사양없이 받으려 하나니, 다만 지금도 매양 내 잠 아니오는 긴 밤에와 나 홀로 거닐으는 감도는 들길에서 가만히 이 노래를 읊으면 스스로 금치 못할 가련한 느낌이 있음을 취하였을 뿐이라, 이에 그래도 내어 버리랴 버리지 못하고 이 노래를 세상에 전하노니 지금 이 자리에 그 옛날 일을 다시 한 번 끌어내어 생각하지 아니치 못하여 하노라.


이상의 글은 김소월의 것이다.

(읽어나가다 보면 잘 모를 수 있는 어휘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붙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멋없다: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멋이 없다. 隔墻(격장): 담 넘어, 淸怨悽絶(청원처절): 사무친 원망이 처절하다는 뜻, 斷續(단속): 끊어짐과 이어짐, 우멍구멍: 이리저리 터져있는 모습, 허방지방: 허겁지겁, 바이없다: 전혀 없다, 후살이: 여자가 再嫁(재가)해서 사는 것, 동표서박: 동으로 서로 떠돌아다님, 門司(문사): 중국의 샤먼, 香港(향항): 홍콩, 花朝月夕(화조월석): 아침에 피는 꽃과 저녁에 뜨는 달, 덧없는 기생의 삶을 일컬음, 諸大方家(제대방가): 각 방면의 여러 大家(대가), 鄭聲魏音(정성위음): 춘추 시대 정나라와 위나라의 음악이란 뜻으로서 지나치게 음란한 음악을 일컫는 말, 僭濫(참람): 격이나 분수에 맞지 않음, 浮輕(부경): 가볍고 경박함.)  

김소월이 남긴 시중에 ‘팔베개 노래’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이는 그가 지은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나 잠시 정을 맺었던 어느 기생의 노래가락이었음을 이 글은 밝히고 있다.

먼저 ‘팔베개 노래’라는 시부터 감상해보자.

첫날에 길 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 동무 되지요.

날 끓다 말아라
家長(가장)님만 임이랴
오다가다 만나도
정 붙이면 임이지.

花紋席(화문석) 돗자리
녹燭臺(촉대) 그늘엔
칠십 년 고락을
다짐 둔 팔베개.

드나는 곁방의
미닫이 소리라
우리는 하룻밤
빌어 얻은 팔베개.

조선의 강산아
네가 그리 좁더냐
삼천리 서도를
끝까지 왔노라.

삼천리 서도를
내가 여기 왜 왔나
南浦(남포)의 사공님
날 실어다 주었소.

집 뒷산 솔밭에
버섯 따던 동무야
어느 뉘집 가문에
시집가서 사느냐.

嶺南(영남)의 진주는
자라난 내 고향
부모 없는
고향이라우.

오늘은 하룻밤
단잠의 팔베개
내일은 想思(상사)의
거문고 베개라.

첫닭아 꼬꾸요
목 놓지 말아라
품 속에 있던 임
길 차비 차릴라.

두루두루 살펴도
金剛(금강) 斷髮嶺(단발령)
고갯길도 없는 몸
나는 어찌하라우.

영남 진주는
내 태어난 고향
돌아갈 고향은
우리 임의 팔베개.

(이 시 역시 약간의 어휘 설명이 필요하다.

끓다: 물이 끓고 식듯 변덕부림, 녹燭臺(촉대): 놋쇠로 만든 촛대, 斷髮嶺(단발령): 마의태자가 속세를 버리고 금강산으로 들어갈 당시 머리를 잘랐다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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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당의 감상:

정처 없이 이리저리, 중국의 홍콩에서부터 요동반도의 대련에까지 팔려 다니면서 오늘은 이 남자 내일은 저 남자 품에 안겨야 하고 그로서 잠시 정을 붙였다 떼었다 해야 하는 기생 채란의 서글픈 심경을 나타내고 있는 시.

그래도 비교적 마음에 맞는 남자를 만나면 잠시라도 정을 붙이고 싶은 心思(심사)가 보인다, 누구는 팔자가 좋아 칠십 년 고락을 팔베개 베고서 기약할 수 있건만 스스로는 사람 분주하게 드나드는 곁방에서 잠시 만난 남자와 하룻밤 팔베개를 한다는 처지.

조선의 삼천리 강산을 좁다 하고 떠도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남포의 뱃사공이 실어다 주었기 때문이라 변명해야 하는 심사가 참 그렇다.

마의태자야 금강산 경내에 들어서면서 세속의 미련을 떨치고자 머리를 잘랐다고 하지만, 그나마 나은 편, 스스로는 갈 곳이 정해져 있지도 않은 떠도는 몸이다.

어릴 적 같이 놀던 친구는 어느 집에 시집가서 잘 살고 있으려니 하는 마음, 그래도 스스로 역시 언젠가는 내 임을 만나서 팔베개 한 번 편히 베어보리라 하는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어린 기생의 마음이 이 팔베개 노래라 하겠다.

1902 년생인 김소월이 기생 채란을 만난 것이 1924 갑자년이니 그의 나이 만 스물 둘이었고 채란의 나이 만 열 아홉에 만났음을 알 수 있다.

만나게 된 경위에 대해 풀어나가는 소월의 문장은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가히 大家(대가)의 격조를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다. 중국 시문학의 情調(정조)를 충실이 이어받는 한편 우리 가락 고유의 정서 역시 지극히 잘 살려내고 있다.

흔히 김소월의 문학을 ‘恨(한)의 情調(정조)’라고 풀이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소월의 문학을 좁게 평가하는 결과에 그친다는 생각이다. 김소월의 시는 쉽고 단순해보여서 그렇지, 그가 보여준 시의 律格(율격)은 그 이후 만해 한용운이나 해방 이후 미당 서정주로 이어지는 우리 시문학에 있어 그들보다 한결 더 높은 경지를 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문학 중에서 20 세기를 통틀어서 이 ‘팔베개 노래調(조)’보다 더 아름답고 격조 높으며 심금을 울리는 산문을 나는 대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말의 고유한 리듬과 박자, 호흡의 斷續(단속)을 이처럼 구성지게 표현하고 있는 현대 산문을 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싶다.

김소월의 시는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되리라 확신한다.

이에 눈으로 읽기 보다는 조용하게라도 소리를 내어 읽어보시길 권하는 마음이다. 두 어번 낭독해보면 그 정서와 맛을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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