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으로의 항해 ( Sailing to Byzantium) #3  _  2012.1.26
제2단락;

그럼 난 뭐야? 늙어빠진 나는 도대체 뭐냐고?
솔직히 말해 아무 것도 아니야, 그저 막대기 위에
낡고 헤어진 외투를 걸쳐놓았을 뿐이지,
혹 영혼에서 울려나와 박수를 치고 노래할 수 있다면 모를까?
언젠가 쓰레기 통으로 들어갈 이 낡은 외투의 조각조각들을 위해
더 높고 힘찬 영혼의 노래를 불러댈 수 있다면 혹 모를까
그냥 늙은이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
그런데 영혼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선
자신만의 장려한 기념비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하지만 그런 영혼의 노래를 가르쳐줄 노래교습소는 어디에도 없었기에  
난 먼 바다를 건너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을 찾아온 것이라네.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
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
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
To the holy city of Byzantium.

제2단락 해설;

나이든 사람이란 아주 하찮은 것, 존재할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어서 그저 나무 막대기 위에 걸쳐놓은 너덜대는 낡은 넝마 외투에 지나지 않는다고 시인은 말한다.

시인이 볼 때, 이제 生殖(생식)의 힘을 상실한 늙은이란 그저 숨만 붙어있을 뿐이지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인 존재라는 것이다.

나무 막대기 위에 걸친 낡은 외투란 대목에서 ‘나무 막대기’는 살아있는 것, 즉 잎사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즉 生産(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이니 늙은이란 시인의 관점에서 살았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저번 제1단락에서 세상은 온통 관능의 음악에 취해 돌아가는 곳이라는 말을 시인은 뱉어놓았었다. 세월 속에 변치 않는 知性(지성)의 기념비 같은 것은 모두들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 비록 늙은 사람에게 경륜과 지혜가 있다 한들 그게 사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을 했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외롭고 서러워진다고들 한다. 그래서 늙을수록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줄여 말하면 늙으면 疏外(소외)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된다는 것은 그 말이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기에 그럴 것이다.

소외란 단어를 생각하니 칼 맑스의 ‘인간소외론’이 생각난다. 내 생각에 칼 맑스가 남긴 ‘자본론’보다 이 글이 훨씬 뛰어나다.

글의 요지는 생산의 과정으로부터 소외되면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결국 생산의 한 도구로 전락되니 그 결과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본가가 설계해놓은 과정의 일부로서 노동자는 그저 생산의 한 톱니바퀴가 되면 그게 轉落(전락), 즉 망한 것이라는 말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로 하여금 궐기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게끔 만든 이론의 가장 핵심에 해당되는 글이 맑스의 ‘소외론’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에 있어 생산자는 생산의 전 과정을 스스로가 이끌고 주도했었다. 이는 바로 匠人(장인)을 뜻한다. 그렇기에 장인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물건에 자신의 心魂(심혼)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장인이 만든 모든 물건은 본질적으로 예술품, art piece 였던 것이다.

칼 맑스가 말한 공산주의에 대해 나는 명백하게 부정하지만, 그가 남긴 ‘소외론’에 대해서는 긍정한다. 다만 나는 다만 해법에 있어 맑스와 생각을 달리할 뿐이다.

이처럼 ‘생산한다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내 배로 낳은 자식만이 ‘내 새끼’가 아니라 내가 정성을 들여 만들어낸 모든 물건은 ‘내 새끼’인 것이다.

장인이 만든 물건 역시 장인의 새끼이며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호호당의 새끼인 것이다. 심혼을 다해 만들어낸 그리고 만들어진 모든 물건은 예술품이고 만든 이의 ‘새끼’라는 사실.  

사람은 이처럼 生産(생산)하면서 살아간다. 사람은 생산을 통해 기쁨을 누리는 것이지 消費(소비)를 통해서는 궁극적인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물질에 바탕을 둔 더 많은 소비를 가능케 했다. 물론 대단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니 생산보다 소비를 더 美德(미덕)인양 여기도록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에서 우리가 즐기는 모든 프로그램들의 뒷면에는 廣告(광고)가 있다. 그 모든 광고는 결국 소비를 조장하기 위함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광고를 통해 소비에 중독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생산이야말로 삶의 기쁨이라는 사실을.

이에 비해 소비는 순간적인 충족에 지나지 않아서 뒤에 더 많은 소비에 대한 갈증만을 자아낸다.

그런 면에서 소비는 목이 마른 자가 마시는 ‘진한 설탕물’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맑고 시원한 생수이건만 말이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생산이다.

자식을 낳는 가장 중요한 생산 외에도 모든 창조행위가 생산이다.

이 정도로 그치고 시인의 말로 돌아오자.

시인이 느낀 소외, 늙은이는 이제 그 생산의 힘을 잃었으니 더 이상 존재가치가 사라졌다고 自嘲(자조)하고 있다. 나무 막대기 위에 걸친 넝마 외투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탈출구는 무엇인가? 시인은 이어 그 탈출구를 제시한다.

‘영혼에서 울려나와 박수를 치고 노래할 수 있다면 모를까?
언젠가 쓰레기 통으로 들어갈 이 낡은 외투의 조각조각들을 위해
더 높고 힘찬 영혼의 노래를 불러댈 수 있다면 혹 모를까?’

이 대목이 시인이 말하는 탈출구이다.  

줄여 말하면 ‘영혼의 노래’를 신나게 부를 수 있다면 늙은이도 존재할 이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혼의 노래(a song of soul)을 부르는데 있어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노래교습소, singing school은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주 중요하다.

(동시에 이 대목에서 그간 우리말로 번역된 대부분이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다. 그 바람에 나는 근 30 년 이상을 궁금해 했고 의아해했다.)

흔히 사람들은 영혼이 메말랐다고 느낄 때 종교를 찾는다. 하느님의 말씀이나 부처님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지혜의 책을 찾아서 읽기도 한다.

그런데 시인은 그런 곳에서 영혼의 노래를 배울 수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Nor is there singing school’이란 말이 그것이다.

왜 그럴까?

시인의 주장은 ‘studying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이다.

‘당신만의 위대한 기념비를 알아내고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시인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시인이 남긴 다른 글들에 보면 영혼은 간단히 말해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혼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유일무이한 것이기에 그 영혼의 길 역시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혼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선 각자가 각자의 길을 가야한다는 주장을 시인은 하고 있음이다.

호호당 생각에 물론 노래를 잘 하기 위해선 먼저 노래교습소에 가서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일류가 되려면 다시 말해 정말 노래다운 노래를 하기 위해선 결국 자신만의 개성과 음색과 창법이 있어야 하듯이, 시인 역시 영혼의 노래는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길을 찾다보니 결국 ‘먼 바다를 건너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을 찾아온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제 늙어서 생식력을 상실했지만 그럼에도 더 살고자 한다. 그러니 이제야말로 자신만이 부를 수 있는 영혼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한다. 그러나 영혼의 노래는 저마다의 것이어서 따라부르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점을 느꼈다. 이에 시인은 먼 바다를 항해해서 聖都(성도) 비잔티움으로 航海(항해)를 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이 제2단락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비잔티움에는 과연 무엇이 있어서 시인은 먼 항해를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풀어보기로 한다.

(설 전날 존경하던 丈人(장인)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장인이 누워계신 곳은 제주도, 그러나 설 연휴 기간이라 오고 가는 비행기 표를 구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오가는 과정에서 공항에서 대기하느라 보낸 시간과 과정이 무척이나 힘겨웠다. 특히 중국 관광객들로 제주행 비행기와 공항 면세점은 시장통보다 더 복잡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역시 내게는 작지만 그 역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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