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란 결국 비용-편익(cost-benefit)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자세.  _  2020.8.13
새 블로그 주소는 hohodang.tistory.com)   티스토리 블로그엔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한 더 많은 그림과 동영상 강좌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알려드린다.

“히든 피겨스”란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미국에서 흑인들은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었는데 당시를 배경으로 미 항공우주국 즉 나사(NASA)에서 근무하면서 큰 업적을 남긴 세 명의 천재 흑인여성들의 활약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재미있게 보았다.

세 명의 흑인 영웅들 중에서 특히 캐서린 존슨의 활약이 가장 흥미로웠고, 이에 실존인물인지라 당연히 생년월일을 검색해보았다.

캐서린 존슨(Katherine Johnson), 1918년 8월 26일에 태어났으니 戊午(무오)년 庚申(경신)월 乙巳(을사)일이다. 입추의 운이 언제였는지를 알려면 출생의 시각까지 알아야 하지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경력으로 추산해보면 1955년 乙未(을미)년이 입추였다.

어떤 이유에서 그 해를 입추의 운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입추의 운으로 상정되는 때로부터 7.5년이 경과할 무렵이면 인생 전체에 걸쳐 크건 작건 나름 두각을 나타내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나사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했던 시기가 바로 1962년이었고 그런 까닭으로 1955 을미년을 입추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냉전 시절 미소 양국은 우주 공간을 무대로 엄청난 레이스를 펼쳤는데 그 경쟁에서 먼저 기선을 잡은 것은 소련이었다. 1961년 4월 소련이 먼저 유인 우주비행을 성공시켰고 미국은 따라잡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이듬해인 1962년 미국 역시 유인우주선 비행에 성공했다.  

(당시의 우주선 경쟁은 결국 로켓의 우수성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경쟁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하면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캐서린 존슨은 당시 나사의 수학자로서 첫 번째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가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그로서 미국의 숨겨진 영웅이 되었다. 그녀는 그 이후 달 탐사 우주비행인 아폴로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스페이스 셔틀이나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나사의 최고 수학자로서 활동했다.

그녀는 35년간 나사(NASA)에서 일하다가 70의 나이인 1988년에 은퇴했으며 그 이후 어린 아동들을 대상으로 기술 과학 분야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있어 많은 활동을 했다. 독실한 장로교 신자였던 그녀는 2020년 무려 101세의 나이로 편안하게 세상을 떴다.

천재 수학자로서 국가 유공자였으며 나라나 단체에서 수여하는 상이나 훈장도 대단히 많은 받았을 뿐 아니라 그녀의 이름을 따서 붙인 국가 연구시설도 건립되었다. 더불어 건강하게 장수했으니 실로 대단히 훌륭한 인생을 누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 역시 살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18년생인 그녀는 1939년 21세에 결혼을 하고 자녀를 셋이나 낳았는데 그만 남편이 1956년에 병으로 사망하는 아픔도 겪었다.

더 중요한 점은 그녀의 운세 상으로 1955년이 입춘의 운이란 사실이다. 입추 다음 해에 남편이 애들 셋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으니 엄청난 비극이었는데 그런 일이 그녀 운세가 한창일 때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사람의 일생은 운이 좋을 때에도 예기치 않은 좌절이나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운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만사가 원만하고 잘 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나 호호당은 운명학에 대해 어린 시절, 정확히 말하면 17세 때부터 호기심으로 인해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후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고 공부를 해왔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포기할 생각도 무사히 했으나 다행히도  2000년대 중반, 나로선 마흔 중반의 나이에 인간과 사물에는 60년에 걸친 순환이란 것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다시 집중적인 연구와 분석을 통해 2014년에 이르러 큰 틀에서 체계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그 이후로도 꾸준히 실제 상담과 사례 연구를 통해 더더욱 깊은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실제 상담이나 사례 연구가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운명의 흐름이란 것에 대해 더 눈이 넓어졌다는 것, 아울러 운이 좋다고 모든 것이 다 좋게만 흘러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일러 드리기 위함이다.

운이 한창 좋을 적에도 어처구니없는 실패나 좌절도 능히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까닭에 나 호호당은 글을 통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다 누리고 가지는 자는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능히 다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큰 부자는 아니어도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한 채는 있어야 하겠고, 용모는 적어도 중상급 이상의 배우자를 만나야 하겠고, 수명은 적어도 87세 이상은 되어야 하겠고, 자녀는 서울 인 대학에 들어갔으면 좋겠고 등등 이런 식의 바람을 그저 소박한 꿈 혹은 목표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 정도의 목표 혹은 소망이라고 해도 그 모두를 달성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는데 말이다, 엄친아란 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소망이나 희망, 그리고 욕망이나 욕심이나 다 같은 말이다. 소망이라거나 희망이란 하면 좋은 것이고 욕망이나 욕심이라 하면 부정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같은 말일 뿐이다. 그러니 욕망이라 해두자.

그런데 이 욕망이란 것, 이게 실로 묘한 놈이다. 욕망은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원인이기도 한 까닭이다.

우리는 욕망이 있고 바람이 있기에 시간과 세월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오늘 힘들어도 훗날 좋아질 거야 하는 생각 말이다. 동시에 바람이 있고 욕망이 있는 까닭에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 하고 또 눈앞의 시간이란 그저 빨리 흘려보내야 하는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게도 된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그런 시간들의 연속일 뿐인데 말이다.

나 호호당은 지난 달 7월 25일자로 만 65세를 채웠다. 기초연금도 신청했고, 그다지 쓸 일은 없지만 지하철 교통카드도 나왔다. 다른 게 아니라 세상을 제법 오랜 세월 살아왔다는 얘기이다.

제법 긴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 중에 하나로서 사람이란 결국 자신의 눈 앞 1 미터 전방에 욕망이란 이름의 열매를 매달고 있기에 그 놈을 먹어보려고 앞으로 내달리지만 결국 달리는 만큼 욕망이란 열매 역시 앞으로 달려 나간다는 점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욕망이 없다면 현실의 시간이 부여하는 저 엄청난 무게를 우리 모두 견뎌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욕망이란 열매는 내가 달리는 만큼 저절로 앞으로 달려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내심으론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목표로 앞으로 나아가고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나이가 들다보니 남성 호르몬이란 놈, 테스토스테론이란 물질의 분비가 줄어들면서 현실의 시간이 주는 중압감도 줄어들고 동시에 욕망에 대한 집착 또한 조금씩 줄어간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욕망이란 놈의 정체, 그건 우리 얼굴 전방 1 미터 앞에 매달린 유혹의 열매란 사실을 알게 된 것 역시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뻔히 결말이 내다보이건만 우리 스스로 속아주면서 만들어가는 게임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아울러 운이 상승한다는 것 반대로 운이 내려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젠 알게 되었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이 점은 나 호호당이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그간의 연구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욕망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그 욕망의 충족을 위해 비용을 감내할 마음이 있는 자라면 운이 상승하는 자라 보면 된다. 그리고 욕망이 있지만 그것을 위해 비용을 감수할 마음이 별로 없다면 그건 운이 하강하는 자라 봐도 된다.

즉 편익과 비용의 문제인 것이다. 비용에 비해 바라는 편익이 너무 크다면 운이 하강하는 경우이고 편익만큼의 비용을 지불해도 된다고 여긴다면 운이 상승하는 경우라 하겠다.

예컨대 ‘요행수’라 말이 있는데 이게 바로 비용 대비 이익이 지나치게 큰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요행수를 바라는 자,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개이득’을 바라는 자라면 그 자의 운세는 하락 중에 있다고 봐도 결코 틀림이 없다. (혹시나 개이득을 봤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개피도 보기 마련이다.)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한 마음이 간절한 자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사람이기에 운세가 상승하는 사람이고, 그 반대는 비용을 비싸게 지불할 마음까진 없다는 것이니 운세가 하강하는 사람이다.  

나 호호당, 이제 65세가 넘어서 국가에서 기초연금이란 것까지 챙겨주는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욕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욕망이란 것이 결국 죽는 날까지 아등바등 살게 만드는 미끼란 사실을 이젠 알았기에 아니면 아닌 대로 언제든지 다 털어버리고 놓아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며칠 전 강남역 근처 길거리에서 젊은이들이 대화중에 “이건 정말 개이득이야!” 하면서 키득대는 모습을 슬쩍 곁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런 말을 쓰는  젊은이들도 내 눈에 그저 귀여웠고 ‘개이득’이란 말도 정말 재미가 있었기에 오늘 글에서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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