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_  2021.4.10
새 블로그 주소는 hohodang.tistory.com)   티스토리 블로그엔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한 더 많은 그림과 동영상 강좌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알려드린다.


武陵桃源(무릉도원)이란 말은 동아시아 세계에서 별천지 이상향을 상징한다. 저 유명한 歸去來辭(귀거래사)를 남긴 중국 도연명의 글 “도화원기”속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대략 이런 내용이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느 한 어부가 어쩌다보니 물길을 잘못 들어 계곡의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더니 아름다운 복숭아꽃이 만발한 숲을 만났다. 참 신기한 곳이 다 있구나 싶어 계속 더 올라갔더니 계곡이 거의 맞닿는 곳에 작은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동굴 안을 들여다보니 희미하게 빛이 비쳐오는 터라 어부는 배를 두고 뭍으로 올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들어갈수록 점점 좁아지더니 나중엔 몸 하나 간신히 통과할 정도였다. 이러다가 돌아 나올 수 없는 게 아닐까 싶어 겁도 났지만 어부는 용기를 내어 더 들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시야가 툭 트이더니 뜻밖에도 그 안에 너른 땅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곳엔 잘 정돈된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고 뽕밭과 대밭도 있었다. 길도 잘 닦여 있었고 커다란 집들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뜰 안에선 개나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마을 사람을 만났다.

어부를 만난 마을 사람은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술과 닭 요리를 대접해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그 곳 마을 사람들은 몇 백년 전에 난리를 피해 동굴 안의 별천지로 피난을 왔다는 것이었다.

며칠 극진한 대접을 받은 어부는 계속 머물 수도 없고 해서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마을을 떠날 때 마을 사람 하나가 말하길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마시오.” 하는 것이었다.

어부는 되돌아 나오면서 그 동굴이 있던 장소를 잘 기억한 다음 나중에 다시 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끝내 다시는 찾아갈 수 없었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하면서 어부는 그곳이야말로 근심 걱정 없는 별천지가 아니었나 여겼다.

이처럼 도화원기 속의 이야기인 武陵桃源(무릉도원)은 동아시아 세계에 있어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일종의 理想鄕(이상향)을 상징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대목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계곡 사이의 두려운 좁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는 점. 둘째, 그 안에는 별천지가 있었다는 점, 셋째, 다시는 그곳을 찾아갈 수 없었다는 점이다.

도연명이 남긴 글은 전해져오는 이야기를 각색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중요한 점은 그게 아니다. 무릉도원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 궁극적인 奧秘(오비), 심오한 비밀을 담고 있다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왜 그런 가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반도의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유명한 절이 있으니 여수 돌산의 向日庵(향일암)이다. 동해 낙산사의 홍련암과 서해 강화도의 보문사, 그리고 남쪽 바다의 금산 보리암과 함께 바닷가에 위치한 우리 불교의 4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이다.

向日庵(향일암)은 그 뜻이 ‘해를 향해 있는 암자’이다. 그냥 평범한 이름 같지만 실은 거기에 심오한 뜻이 담겨있다.

향일암 입구에서 산 위쪽에 위치한 법당에 들려면 먼저 바위 틈새로 난 길 또는 동굴을 지나가야 하는데 이 石門(석문)의 이름은 “해탈문”이다. 그런데 왜 무슨 이유로 解脫(해탈)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이 대목에서부터 향일암의 비밀이 시작된다.

먼저 얘기할 것은 앞서의 무릉도원으로 들어서기 위해선 좁은 동굴을 지나야 했다는 말을 했는데 그 좁은 동굴과 향일암의 해탈문은 구조가 같다는 점이다.

무릉도원의 동굴이나 향일암의 해탈문이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죽음 또는 죽음에 가까운 그 무엇이고 거기를 통과해야만 별천지로 들어가거나 향일암에선 법당으로 올라설 수 있다. 해탈이란 죽거나 죽을 고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그 무엇인 까닭이기에 그건 결국 통과의례를 뜻한다.

이에 석문을 지나 향일암의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자. 그곳에서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정성스레 三拜(삼배)를 올리고 돌아 나온다, 그 순간 당신의 눈앞에는 가없이 너른 바다가 펼쳐져있고 그 수면 위로 반사되는 눈부신 햇빛이 당신의 눈 안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그 눈부신 빛은 해탈을 얻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무한 悅樂(열락) 즉 해탈의 기쁨이다. 그러니 향일암은 그냥 일반의 해를 향해 앉아있는 암자가 아니라 해탈의 빛을 향해 앉아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재미난 점은 여수 향일암의 돌로 된 해탈문을 무심코 지나친 사람은 법당 안에 들어가 아무리 절을 하고 소원을 빌어도 그냥 그런 것이고, 해탈문을 지나갈 때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는 법당 앞마당에서 해탈과 열락의 눈부신 빛을 누릴 것이란 점이다.

(참고로 얘기하면 구례 사성암 역시 마애약사여래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곳 역시 옛날에 도선 대선사께서 수도하신 곳이라 해서 이름이 붙여진 ‘도선굴’이 있는데 바로 이 때문에 사성암을 나름 특별한 성지로 만들어주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비밀이다. 진정한 신비와 비밀은 멀리 특별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아주 흔하고 가깝게 존재한다. 같은 공간일지라도 누군가에겐 聖(성)의 영역이 되고 누군가에겐 세속의 관광지가 된다.

聖(성)과 俗(속)은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이게 바로 세상과 삶의 숨겨진 비밀이다.

유럽의 연금술에서 유래된 ‘현자의 돌’이란 게 있다. Philosopher's stone. 달리 ‘엘릭시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돌과 관련해서 유명한 말이 있으니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향일암의 석문인 해탈문을 제대로 느끼면서 통과한 이는 해탈의 法悅(법열)을 얻을 것이고 그냥 유명 관광지로 알고 지나치면 그냥 관광으로 끝난다. 같은 말이다.

神秘(신비)는 奧秘(오비)는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 어디에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면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더욱 신비하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얘기와 연관을 지어 나 호호당이 세운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해 얘기해보자. 실은 전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먼저 한 해의 순환에 대해 알아보자.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한다. 여름이 되면 만물이 활개를 치고 서로 싸우고 또 짝을 지어 번식한다. 가을이 되면 결실을 얻게 되고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이 시들어 사라진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의 어김없는 순환이다.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은 저 자연의 순환을 사람의 삶에 고스란히 옮겨와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60년을 주기로 하는 순환이 사람의 삶과 운명에 있어 가장 중요하기에 그를 중점으로 해석하고 해설한다. 변화해가기에 그를 運(운)이라 할 뿐이다. (그 사이에 작은 순환 주기도 존재하고 또 개개인의 삶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360년의 순환, 그 위에 더 큰 2,160년의 순환도 작용한다.)

헌 해의 종말점이자 한 해의 새로운 시작점은 立春(입춘), 양력 2월 4일 경이다. 그 순간이 바로 앞에서 말한 바의 동굴이나 석문처럼 당신의 삶, 정확히 말하면 운명의 삶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때이자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에 동굴이나 석문이 끝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니 이는 양력 4월 5일경의 淸明(청명), 맑고 환한 때, 한 해가 비로소 밝아지는 때와 같다. 이로서 새로운 별천지, 새로운 삶이 본격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6월 22일 경의 夏至(하지), 해가 가장 긴 때가 되면 바로 그 순간이 향일암 법당 앞의 뜨락에 서서 눈부신 햇빛으로 가득한 망망대해를 보는 때라고 이해하셔도 되겠다.

돌아가서 얘기하면 입춘은 죽음의 순간이고 또 다른 삶, 즉 새로운 생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무릉도원의 동굴에서 가장 좁고 험난한 곳이자 해탈문의 가장 비좁은 장소이기도 하다.

삶의 순환은 마치 호리병과도 같다. 넓어졌다가 좁아지고 그러다가 다시 넓어지는 병 말이다. 호리병의 허리가 바로 입춘의 때이자 해탈의 장소이며 동시에 죽음의 장소인 셈이다.

가령 어떤 이가 태어나길 운명 순환에 있어 여름 무렵에 태어났다면 아직 60년 순환에 있어 존재하는 입춘, 즉 죽음을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아마도 서른 살 즈음에 그곳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각성한 자로서 입춘을 겪어본 자만이 또 다시 너른 별천지를 볼 것이요 열락의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사실 입춘 이전에 겪었던 빛과 전혀 물리적으로 다를 바가 없겠지만 그 빛은 다른 빛이란 얘기이다.

나 호호당은 1955년생이고 1997년에 입춘 즉 죽음의 문을 통과했다. 42세의 나이였다. 그리고 2007년이 되자 강렬한 빛을 느겼고 이에 2014년 그간에 연구해온 운명 순환에 관해 정립한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것이 세상에 등장했다고 글에 썼다.

나날의 일상은 그냥 나날의 일상이다. 하지만 저마다 그 일상은 전혀 다른 형태와 느낌으로 존재한다. 삶과 운명의 지극한 奧秘(오비)이다. 우리 모두 태어난 이상 죽는다, 나 호호당은 이를 細胞(세포)적 삶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 삶이 끝나는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무릉도원 안의 별천지처럼 전혀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문일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이 궁금증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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