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化(풍화)되는 세월 속에서  _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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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을 모처럼 한 번 깔끔하게 청소하고 정리했다. 며칠이 지나고 달이 넘어가면 지저분하고 어질러져있다. 깔끔했던 공간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범인은 누구이고 원인은 무엇일까?

지저분해진 것은 공기 중의 먼지 때문일 것이고 어질러놓은 이는 청소를 했던 나 자신이다. 그러다가 생각해본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범인은 먼지와 나 자신이 아니라 바로 시간이란 사실, 이 얼마나 탁월한 발상이며 책임 회피인가!

시간이 작업실을 지저분하게 만들고 어질러놓았다. 물리학적 설명을 시도해보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작업실 안의 엔트로피가 높아진 탓이다.

성거시지만 다시 힘을 내어 작업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정돈을 한다. 끝난 뒤 피곤해진 몸을 쉬게 하면서 다시 생각해본다, 아, 나는 결국 “시간의 피해자!”란 탄사가 절로 나온다. 시간, 저 놈이...

시간이 오래 되면 그 사이에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겨나고 또 그 일들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복잡하게 뒤얽힌다, 그걸 우리는 歷史(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니 결국 나 호호당은 “역사의 피해자”가 된다.

나는 결코 작업실을 어지럽힐 의도가 없었다, 나 호호당은 양심이 있는 사람, 엄밀하게 따져보니 약간의 귀책사유가 나에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인정한다, 커피를 마신 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빈 잔을 싱크대로 가져가서 씻어놓지 않은 게 罪(죄)라면 죄이다, 극미한 경범죄, 그런데 달을 넘겨서 보면 작업실은 엄청나게 무질서해져있다. 시간과 역사가 범인임이 거의 확실하다. 내 잘못이 2 라면 시간과 역사의 잘못은 98 정도.

주기적으로 시간과 역사를 향해 투정을 하고 탓을 하면서 힘들게 몸을 쓴다. 누적된 폐단, 즉 적폐는 마땅히 청산되어야 한다고 세게 청소를 하고 깔끔하게 정돈을 한다. 마지막으로 기억 속에 저장해둔다, 시간과 역사, 저 놈들이야말로 악당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정확하게 정곡을 찌를 것 같으면 곤란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역사책을 쓸 이유가 원천적으로 사라지니 그렇다.

예컨대 나 호호당은 일찍이 에드워드 기번이 쓴 방대한 양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잘도 열심히 흥미롭게 읽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앞의 논리를 대입할 것 같으면 ‘로마제국이 망한 원인은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란 간단한 문장 하나로 정리가 된다. 거꾸로 그토록 오랜 시간 이어간 것이 더 신기하다.  

잘 나가던 기업이 왜 망했는가를 놓고 경영학자들은 꽤나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 하지만 그 기업이 망한 원인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일 뿐이다.

그렇고 보니 그렇다. 우리가 비판을 하더라도 너무 지나치게 핵심 또는 정곡을 찌르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다 보니 또 하나의 생각이 든다. 기록된 역사이든 기억된 역사이든 모든 역사는 결국 범인의 숨바꼭질 놀이란 생각.

먹은 놈은 다 튀고 마지막 찌꺼기를 좀 먹어보려다가 재수 없게 그만 걸린 놈이 최종적으로 범인이 되는 놀이가 바로 역사란 생각이 든다. 특히 기록된 역사의 범인은 대부분 그런 자들이 아닐까?

조금 전만 해도 작업실이 지저분해진 것에 대한 범인으로서 나 자신은 쏙 빠지고 전혀 다른 놈 즉 시간의 탓으로 돌려놓고 있지 않은가, 능숙한 솜씨로!

물론 지금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저지른 아주 미미하고 사소한 부주의와 태만이 쌓이고 모여서 작업실이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범인은 시간이었던 것으로 내 머리 속에 기억될 것이다. 그게 사실이고 팩트라고.

훗날 혹시라도 어질러놓은 당사자가 나였다는 생각이 잠깐이라도 스쳐 가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서 착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너무 지나친 自責(자책)이라고 생각을 금방 돌려버릴 것이다. 나는 전혀 잘못이 없었어, 시간이 범인이야! 하고 또 다시 나를 긍정하게 될 것이다.

이에 먼 훗날 누군가 내게 묻기를 그때 작업실이 왜 그토록 지저분하고 어질러져있었지? 한다면 이렇게 답할 수도 있겠다. “그땐 그랬어, 먹고 살기 바빠서 말이지, 당시의 사정을 지금에 와서 어떻게 누누이 되살릴 수 있겠어, 나 또한 시대의 희생자일 뿐이고 앞으로가 더 중요한 거야.”

모든 진실은 사건이 발생한 그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소멸되거나 혹은 風化(풍화)된다. 장대한 바위가 장구한 세월 속에서 비와 바람을 맞고 또 얼었다가 녹으면서 균열이 생기고 침식되고 깎여나가서 마침내 곱고 보드라운 찰흙이 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게 된다, 이 세상의 저 많은 역사서적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  

하지만 그 질문 또한 답하기가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시간과 역사 자체가 범인이라 하면 아예 쓸 것이 없어지니 기존의 史料(사료)라든가 아니면 새로 발굴되는 기록이나 여타 데이터를 근거로 해서 저자의 입맛과 취향, 유행 사조와 이념 등에 맞추어 소설 또는 픽션을 쓰면 된다. 이런 것을 최근엔 팩션(faction)이라 하기도 한다.  

따라서 역사란 학문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文學(문학)에 속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짜 이야기와 진실은 시간과 세월 속에서 이미 風化(풍화)되었으니 큰 부담도 없다. 그래서 역사서는 끊임없이 재창작된다. 계속해서 리메이크 버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흔히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을 한다. 제법 있어 보이는 말 같지만 실은 역사 자체에서 배울 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보다는 다양한 역사책들을 섭렵하다 보면 간단한 사건 하나를 놓고도 수많은 배경과 원인 그리고 우연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생각의 다양성과 폭을 넓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 호호당은 1955년생이니 올드 세대이다. 어려서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무렵 黨爭(당쟁) 즉 당파간의 싸움질로 나라가 망했다는 얘기를 선생님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그 바람에 그렇구나! 했다.

살면서 보니 당쟁은 인간 사회 보편의 갈등 양식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서 조선이 망한 것은 당파 싸움 때문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조선 왕조가 너무 오래, 무려 500년씩이나 이어진 게 더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정리한다. 나 호호당은 과거의 일들에 대해 많은 기억과 추억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무수히 수정되고 왜곡되었을 것이다. 다시 떠올릴 때마다 이런저런 기억의 파편들을 짜깁기하고 덧붙였으며 때론 전혀 없던 스토리까지 지어내면서 만들어진 현재 시점의 印象(인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다 좋다. 긴 인생 지내오면서 뇌리에 새겨져 결코 지워지지 않는 빛나는 몇몇 장면(scene)들, 그게 비록 끊어진 파편이나 부스러기와도 같을지언정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시간들만큼은 내 삶의 ‘영원한 현재’이자 온전한 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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