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일대에 살던 사람들은 주로 서쪽에는 유목, 동쪽의 연해주 쪽에는 수렵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러다가 중국을 통해 기장이나 보리 등의 재배 기술이 전래되면서 서서히 유목이나 수렵에서 반농반목이나 반농반렵의 생활로 변모해갔을 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부여에서 고구려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다고 본다.
부여의 기록을 보면 왕 밑에 馬加(마가) 牛加(우가) 豬加(저가) 狗加(구가) 등의 관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가가 가장 먼저 나온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가란 말을 관장하는 벼슬이니 부여에서 가장 중요한 동물은 말이었다는 것이고 이는 부여가 유목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을 말해준다고 여긴다.
한편 우가나 저가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어느 정도 농경적 요소도 지니고 있었음도 알 수 있으니 반농반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목으로 생활을 하는 한, 결코 많은 인구를 부양하지 못한다. 유목은 목초지를 찾아다니는 생활이어서 일견 땅은 넓어보여도 인구는 그리 많지 않다. 결국 농경만이 인구를 늘려줄 수 있었다.
고구려 역시 처음에는 활을 잘 쏘는 주몽이 말을 잘 키운 것으로 봐서 유목과 수렵의 성격이 강했지만 국내성으로 내려오고 훗날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농업 생산량에 기초하여 인구가 늘고 강국이 되는 과정을 밟았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신화에 나온 대로 고구려의 왕자인 ‘온조’가 남쪽으로 일부 무리를 끌고 진출해 한강 유역에 와서 백제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는 삼한의 부족연맹과 교류하면서 북방 기마민의 전투술을 활용하여 빠른 시일 내에 강국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전투도 능하고 벼농사를 통한 인구부양력도 크니 삼국 중에서 백제가 가장 먼저 강국으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신라의 경우 원래 남방계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다가 나중에 일부 기마민들이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기도 하고 일부는 다시 바다 쪽을 통해 이주해온 세력이 섞이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왕조 체제로 변해갔다고 본다.
신라 임금의 명칭이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을 거쳐 왕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장기에 걸친 지배세력의 교체와 정착 과정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기마민들의 전쟁기술은 당연히 남쪽의 벼농사 정착민들보다 월등했을 것이기에 주로 그들의 정복 과정이 신화나 역사 기록에 등장한다. 어쨌든 정복민들은 일면 타협과 일면 전쟁을 통해 한반도 남부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쌀의 인구부양력이 높은 만큼 인구 면에서는 삼한 쪽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구의 숫자라는 측면에서 한민족의 주류를 매긴다면 기마민족이 아니라, 한강과 금강 유역에 일찍부터 정착한 남방에서 들어온 정착민이어야 할 것이다.
남쪽의 선주민들은 배를 타고 왔기에 북방 기마민보다 항해에 능했을 것인데 특히 그런 경향을 보이는 나라가 여러 부족국가의 연맹체인 가야였을 것이다. 가야는 김해평야의 농경에 바탕하고 제철 기술을 통해 철을 만들어 바다 건너 일본에 수출함으로써 부를 누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우리 민족은 이처럼 당연히 단일 혈통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남방 농경민과 북방 기마민들이 혼합되는 과정에서, 즉 음과 양이 조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남방 문화와 북방 문화가 골고루 혼합되었다는 징표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샤먼의 경우를 들자. 여무는 남방 문화이고 박수인 남무는 북방 전승이다. 세계적으로 남무와 여무가 함께 있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일본의 경우 여무의 전승이다. 그리고 북방 몽골의 경우 남무만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있다. 골고루 섞인 것이다.
간장도 그렇다. 콩장은 북방 식문화이고 젓갈은 남방식 간장이다. 젓갈은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니 우리는 콩장과 젓갈장 모두 있다.
다시 돌아와서, 삼국 초기에는 평야 농경 곡창지대에 자리하여 북방 기마민과 선주민들로 구성된 백제가 강성했을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식량이 풍부하니 인구도 많고 따라서 병력도 많았을 것이고 기마민의 전쟁기술이 있어 강했을 것이다.
신라는 사실 농경지가 작고 인구도 적었지만 산으로 에워싸여 방어가 유리한 바람에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고구려는 전투는 능하지만 인구가 적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력 균형을 깨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바로 벼농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쌀이 대동강 유역까지 북상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한반도 기후의 온난화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서 고구려의 인구는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전투력도 강해지면서 북으로 유목민들과 반농반렵의 여타 부족들을 복속시키고 남쪽으로 벼농사가 가능한 한강 유역까지 차지하면서 일약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고 본다. 광개토대왕이 바로 그런 일을 한 사람이었다.
이어서 장수왕이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것 역시 벼농사의 인구부양력을 절감한 나머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본다.
만주와 한반도를 놓고 볼 때 우리 역사의 발전 축은 어디까지나 남쪽의 벼농사 지역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신라가 통일한 것은 가야를 병합한 것이 큰 배경이었다, 그를 통해 벼농사로 인구가 늘고 국력이 강해졌고 이에 더하여 불교를 활용하여 국민적 구심점을 만들었기에 힘을 합쳐 전략요충인 한강 유역을 차지했고 또 그를 발판으로 당과의 외교를 통해 백제를 파하고 고구려를 멸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당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바, 결국 당제국이 한반도를 끝내 지배할 수 없다 여기고 물러간 배경에는 중국과의 거리적 문제도 있으며, 한반도가 이미 벼농사를 통해 만만치 않은 인구와 국력이 있었기에 마침내 포기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통일 신라와 외교를 맺은 뒤 우호하는 형식으로 지냈던 것이다.
신라를 이어받은 고려는 고구려를 표방했지만 북방으로 나아갈 생각이 아예 없었는데 실은 당연한 얘기이다.
넓은 만주 평야는 방어는 어렵고 쌀농사가 되지 않아 인구부양력도 없는 사실상 영양가 없는 땅이었기에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했지만 북쪽 만주 땅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땅을 차지한다고 해도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며 비용도 엄청 들 것이니 관심이 없었던 것이지 고려의 기백이 약했던 것은 아니라 하겠다.
고려 시대에 들어 사실상 청천강을 북방 방어선으로 한 것 역시 그런 이유였다. 그 뒤를 이은 조선 역시 동북의 여진을 견제하기 위해 함경도를 차지하면서 서북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한 것 역시 벼농사의 북상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따져보면 우리 선조들은 쌀농사가 되는 한반도에서 척박한 북방 만주로 북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빈 공간에는 우리의 사촌 격인 말갈-훗날의 여진-을 중심으로 하는 반목반렵의 발해가 들어서게 되었지만 시간의 경과와 함께 서서히 멀어져간 것이다.
멀어진 것은 다시 말해 벼농사에 기초한 농경문화와 유목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 간의 이질감이었다고 볼 수 있다. j
결국 우리 민족은 신라의 통일 이후 벼농사에 기초하는 인구부양력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민족이라 하겠다.
중국 부근에서 독립된 문명을 만들고 끝내 그것을 지킨 나라는 우리와 베트남밖에 없다. 베트남은 역사를 통해 절반의 기간은 중국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았지만 우리는 조공을 하고 속국일망정 자치를 잃은 적은 없었다.
중국과 먼 거리에 있다는 점, 쌀농사를 통한 인구증가와 문명의 발전, 그로 인한 민족적 자각으로 선진 중국 문명을 소화해가면서 형성된 나라와 민족이 우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의 행적을 지도상으로 보면 광활한 만주를 앗기고 한반도 쪽으로 쪼그라든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가장 영양가 있는 땅, 바로 청천강을 경계로 하는 한반도를 꼭 붙들고 놓지 않았던 것이다.
정리하면 우리 겨레의 역사는 겁약하거나 힘이 없는 역사가 아니었다.
누르하치가 만주의 모든 여진을 통일하고 몽골의 일부 부족까지 다 통합한 뒤 그 자손들이 중국에 들어가 청 제국을 세울 당시에도 전체 인구는 백만이 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가 병자호란에서 패배할 무렵 조선의 인구는 적게 잡아도 6백만은 되었다.
이는 만주 저 넓은 땅이 인구부양력 면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논과 밭으로 개간된 한반도는 비좁기는 하지만 대단한 영양가의 땅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중국 역시 양자강 이남의 벼농사 지대가 크게 개간되면서 인구가 數億(수억)으로 늘어난 것이지 북쪽의 밭농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지금 남한의 인구만도 오천만에 달한다. 북한은 식량이 여의치 않아 이천 오백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적은 인구는 아니다.
그 결과 한반도의 인구밀도는 대단히 높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는 그 힘이 약하지 않다.
한국어는 세계에서 14 위에 해당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지구 상에 수백의 국가가 있지만 그 정도면 대단히 큰 언어인 것이니 이는 우리 겨레가 그만큼 많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사람의 성공을 재는 척도로 낳은 자손이 얼마나 되느냐가 있듯이 우리 조상들은 역사를 통해 실패한 것이 아닌 것이다.
한민족은 동북아시아의 반도에 자리하여 쌀농사를 통해 인구를 부양하고 독립을 지켜왔으며 문화를 창달시켜 왔다. 정체성을 지켜낸 것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 역사가 성공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땅을 많이 차지했다거나 전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대국이고 성공한 역사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많은 자손을 낳고 이어가는 민족 또는 나라가 성공인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었으니 우리 조상들은 성공했던 것이다.
다음에는 오늘의 번영하는 우리를 있게 한 쌀농사, 간단히 말해 쌀과 그와 관련한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우리 농업은 무역 개방으로 경쟁력을 상실하여 쇠락하거나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환과 창조를 통해 다시 크게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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