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의 세계는 우리에게 두 가지로 다가온다.
하나는 역사 속에 실재했던 무협의 세계, 또 하나는 중국 무협지와 홍콩 무협영화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만들어진 가공의 무협 세계가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왜 이런 글을 쓰는가 하고 묻는다면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그저 어려서부터 무협소설을 수천권 이상 읽었고 무협영화도 수백편을 봤기에 느낀 바가 많아서 쓴다고 해야겠다. 물론 무협의 세계를 장식하는 다양한 동양적 사상과 설화들도 흥미가 만만치 않기에 그런 얘기들도 곁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 시리즈는 무협의 세계를 통해 삶과 세상을 통찰하려는 분들을 위한 글이다.
무협인사들의 세계를 武林(무림)이라 한다. 무술인사들의 숲이란 말이다. 한편 무협인사들이 주로 산야에 산다는 것을 슬쩍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협인사들이 만나서 은원을 맺고 이권을 놓고 자주 다투니 武市(무시)라는 새로운 표현도 가능할 것이다. 武市武市(무시무시)한 얘기들을 다룰 것이니 재미있지 않겠는가!
무협 시리즈가 무시무시한 얘기들, 그리고 짜릿한 얘기들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먼저 劍(검)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날이 한 쪽에만 있고 베는 것을 주로 하는 칼을 刀(도)라 하고 양날이지만 베는 것보다 찌르기를 주로 하는 직선으로 생긴 칼을 검이라 한다.
물론 동서양을 보면 실로 다양한 검과 도가 있었다.
다양한 도검의 세계를 알고자 한다면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刀(도) 갤러리”에 들러 견학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협지를 보면 주인공은 주로 이 검, 즉 찌르기 전문의 칼을 주병기로 사용한다.
그런데 사실 검은 실전에서 가장 위력이 없는 무기이다.
우리의 사극 드라마를 보면 고구려 기마돌격대가 돌진을 하면서 엉뚱하게도 검을 빼어들고 말을 달린다. 참 가소로운 얘기.
갑주를 걸친 적군을 상대로 찌르기 전문의 검, 설령 양날의 刀(도)라고 해도 그렇다. 그런 무기는 전쟁에서 최후의 호신용 무기에 불과하다.
여기서 잠시 기마병에 대한 상식부터 얘기해야 하겠다.
기마병에는 첫째 궁기병이 있다. 궁기병은 적과 거리를 두고 끊임없이 화살을 날려 적을 살상하는 병종이다. 적이 쫓아오면 후퇴하는 마상에서 몸을 돌려 살을 날린다. 이런 식의 뒤로 쏘는 사법을 서양에서는 파르티안 사법이라 한다. 옛날 로마 군이 파르티아 궁기병에게 크게 당했기에 이런 명칭이 전해온다.
이런 식의 마상 사법은 파르티아가 원조가 아니라 사실 몽골이나 옛날 고구려가 원조였다.
그리고 창기병이 있다. 이 부대가 바로 돌격기병이다. 적진을 향해 창이나 창날 옆에 다른 날이 다른 무기, 이를 ‘극’이나 ‘모’라고 하는데 이런 창 종류를 꼬나들고 돌진하면서 충격을 주니 순간에 적진은 와해되고 만다. 이성계는 돌격 시에 철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니 창기병이 보병 20 명의 위력을 지닌다고 史書(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다음으로 투창기병이 있다. 가벼운 투척용 창 세 자루 정도 들고 적진에 접근해서 10 여 미터 거리에서 창을 투척하는 방식인데 주로 동고트족이 유럽으로 쳐들어갔을 때 사용했던 병종이다. 궁기병보다 위력이 떨어진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경기병이 있는데 이는 정찰용 부대이거나 적진을 교란할 목적으로 접근했다가 적이 추격하면 즉각 도망치는 기마병으로 최대한 군장을 가볍게 해서 속도를 중시하는 병종이다.
워털루 전역에서 영국 경기병의 화려한 모습이 엿보인다. 경기병은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주페의 희가곡인 ‘경기병’의 서곡으로 많이 알려진 명칭이다.
그러면 이제 기병에 대해 기본은 알았으니 사극 드라마에서 결정타를 날리고자 쳐들어가는 고구려 기병대가 검을 빼들고 돌진한다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검으로 찔러봐야 상대방의 갑주에 튕겨 나올 뿐이니 그렇다고 상대의 목이나 눈을 골라 찌른다는 것이 실전에서 가당한 가 말이다.
그래서 검은 사실상 전쟁에서는 장식용 무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검은 아니지만 그나마 도를 실전용 무기로 써서 위력을 떨친 군대는 사실상 한 번 밖에 없었다. 바로 일본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그들의 일본도를 휘둘러 조선의 병사들을 마구 난자했고 육박전에서는 백전백승이었다.
이를 아는 이순신 장군은 해전에서 결코 일본 해군과 접근전을 한 적이 없다. 배를 맞대고 상대의 배위로 올라가서 펼치는 접근전 말이다. 그런데 원균은 그런 식의 전투를 벌렸고 그로서 조선 수군은 전멸하고 말았다.
조선의 무기는 어디까지나 화기와 화살이었다. 거리를 두고 적에게 타격을 주는 전법이고 기술이었던 것이다.
고려대 박물관이나 국방 박물관에 가면 사인검이라는 독특한 검이 전시되어 있다. 사인검은 네 개의 寅(인)이니 호랑이를 의미한다. 호랑이 해 호랑이 달 호랑이 날, 호랑이 시에 주조한 검을 뜻하니 辟邪(벽사)와 용맹의 상징인 것이다.
이 사인검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조선 특유의 양식인데 이 역시 실전용 검이 아니라 주로 임금이 소지했던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무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출정하는 장군에게 검을 하사하기도 하지만 역시 장군검도 실전무기가 아니었다.
비실전용인 검을 그런데 무협지나 무협 영화에서 주인공의 주 병기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서양의 경우 ‘브레이브 하트’처럼 무지막지한 검을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타격력이 강해서 실전용이다. 하지만 이른바 검날이 90 센티미터에 불과하고 호리낭청한 중국식 검은 사실 실전에서는 아무 용도가 없다 하겠다.
그런데 왜 검인가?
첫째, 검은 우아한 자태를 가졌기 때문이다.
주윤발이 나오는 리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의 검을 보라. 그런 검을 송문고검이라 한다. 松紋古劍이란 소나무 무늬가 새겨져있는 오래된 검을 말한다. 주로 도가의 문파이자 무술 본산인 武當派(무당파)도사들이 지니던 검이다.
검이 보여주는 선은 대단히 아름답다. 곧게 뻗어가다가 마지막에 가서 수렴하는 검의 몸체는 대단히 아름답다. 날에 북두칠성이나 솔을 銀(은)으로 새겨놓은 검은 대단히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거기에 사용된 철도 딱딱한 무쇠나 강철이 아니라 연철을 섞어 손가락으로 밀어도 휘어지는 연성을 지녔다. 물론 질기다.
이런 스타일의 검은 한 손으로 쓰는 무기, 따라서 실전용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한손 검을 휘두르니 적이 쓰려져가지만 그런 약한 위력에 죽어줄 병사나 무사는 사실 없다.
검은 실전용 무기가 아니라 일종의 수련과 수양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따라서 검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무협지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사상과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다.
글이 길어지니 다음에 잇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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