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이 모두 우리말에서 날을 표현하는 어휘들이다.
오랫동안 나는 이 말들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를 궁리해왔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쓴다. 알았으니 쓰는 것은 당연한 것.
위의 단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흘’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중복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무엇이고 또 이틀은 왜 그 ‘흘’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또 닷새나 엿새는 왜 ‘흘’이 빠져있는가?
이 지점이 생각의 출발점이다.
해답은 ‘하루’라는 말 속에 있다. 먼저 알려드릴 것은 우리말에서 모음은 일단 흔히들 ‘아래 아’라고 부르는 원모음 형태인 ‘할’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하루는 ‘할’로 바꿀 수가 있다. 이것은 ‘흘’로 변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하루는 그냥 ‘흘’이고 이틀은 ‘잇흘’로 사흘은 셋을 뜻하는 ‘사’에 ‘흘’을 붙이면 되고 나흘도 그렇다.
이레는 ‘일곱흘’이 발음의 편의상 변형되어 ‘이레’로 바뀌고 ‘여드레’도 ‘여덟’에 ‘흘’을 붙인 것이 변하여 ‘여드레’-이 역시 가만히 살펴보면 ‘드’자는 ‘여덟’에서 디귿이 남았고 흘에서 히흫이 날아가고 받침 소리 리을만 남아 여드레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로 변했으며 아흐레 역시 마찬가지이고 열흘은 그냥 열에 흘을 붙인 것이니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닷새와 엿새가 된다. 그러나 소리 편의상 ‘다섯흘’이나 ‘여섯흘’에서 ‘다서흘’과 ‘여서흘’로 변하고 거기에서 또 변하여 ‘닷새’와 ‘엿새’로 변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시옷 소리가 자음 중에서 강한 소리인지라 그런 셈이다.
이제 정리되었다.
그렇다면 흘, 원형이었던 ‘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할은 ‘날’이란 것을 추정해볼 수 있다. ‘할’에서 ‘날’로 변한 것이다. 아마도 우리말의 중심이 북방계에서 남방계로 전이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긴 변형이라 본다.
할이 날이란 것을 알고 나니 이어 보너스로 또 한 가지가 덩달아 풀리게 되었다.
우리말에 그제, 어제, 오늘, 내일, 모레, 글피, 이런 순으로 날에 관한 말이 있는데 이상한 것은 모두 순수 우리말인데 내일만큼은 한자어로 來日이라는 점이다.
아니, 우리 조상들이 내일이란 개념을 몰랐을 리가 없는데 어찌하여 내일만큼은 한자어를 차용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그런데 할을 알고 또 그것이 이레나 여드레 속에 할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모레라는 말의 뜻을 알 수 있게 된다.
모레는 '마할'에서 온 것이다. 우리말에서 마는 ‘바야흐로, 이제 막’이란 의미를 지녔다.
그러니 모레는 ‘바야흐로 오는 날’이란 의미이고 이는 내일을 의미한다.
내일이란 한자어가 들어오면서 모레는 내일의 다음 날로 밀려버린 것이다. 오늘 다음에 모레였는데 오늘과 모레 사이에 내일이란 한자어가 들어간 것이다.
(알림: '아래 아'가 워드에서 쳐서 옮기니 이 창에서는 표시가 되지 않아 수정해서 그냥 모음 '아'로 했다. 원형 아래 아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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