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살다보면 좋은 시절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또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시드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좋은 한철이 있었으면 서글픈 한철도 있으니 그로서 세상 이치는 公平(공평)하고 無私(무사)함을 알 수 있다.
세상이치가 공평무사하고 정확하기가 한 치의 틀림도 없다는 이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팔자를 통해 그 현장을 무수히 지켜보면서 그 이치가 너무나도 당연함을 뼈에 새기고 골수에 새긴 체험의 말이다.
그러나 왜 그런 가를 설명하기란 실로 쉽지가 않다. 평생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붉은 색을 설명한다는 것이 끝내 불가능하듯이, 사람은 자신의 경험 범위를 벗어나는 일에 대해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간접 경험이란 것이 있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어 ‘그런가 보다’ 또는 ‘그럴 수 있겠다’ 정도이지 ‘그렇다’ 하긴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그런가 보다’와 ‘그렇다’는 엄청 차이가 진다.
음양오행과 명리학 강좌를 하면서 늘 듣는 얘기가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이다. 그러면 나는 일천 사람 정도의 사주를 일단 봐주고 나서 내게 물어보라고 답한다.
우리가 學習(학습)이라 할 때, 이론을 배우는 것은 學(학)의 단계, 경험은 習(습)의 단계, 그리고 이론의 토대와 경험의 누적 속에서 알게 되는 것을 나는 지식이라 여긴다.
내 경험으로 일천 사람의 팔자를 보자 아 여기에 묘한 것이 있구나 하게 되었고, 일만을 보자 눈을 떴고 삼만을 넘어서자 그만 두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이 사람은 누구나 호시절 있기 마련이고 서러운 시절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운명을 보지 않아도 절로 그러하니 공연히 내가 남의 운명을 봐주면서 이런저런 잔소리 할 이유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운명의 이치에 대해 전인미답의 경계를 밟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곤 한 숨 크게 내쉬었다. 내가 경험한 이 오묘한 이치를 글로 남긴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말로 한들 저 사람이 무언가를 보았나 보다 정도이지 진심으로 공감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황당해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싶은 생각이었다.
사주를 보다보면 주로 답답한 나머지 찾아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가끔은 자기 삶의 절정에 올라있는 사람과도 만나게 된다.
내 추산에 그런 사람을 대략 몇십명 정도는 만나본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반드시 물어보았다. 지금의 삶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하고.
그런 내 질문에 반드시 공통되는 두 가지 대답이 있었다.
하나는 아직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말,
또 하나는 그래도 이 정도면 고맙고 감사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렇다, 그것이 절정에 올라있는 사람의 말인 것이다.
내가 말하는 절정이란 등산에 비기면 8 부 능선을 올라선 경우이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존재인 인간으로서 아직 절정에 오르진 않았기에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게 되니 그 역시 정답이며, 그래도 이미 8 부 능선을 넘었으니 많은 고비와 역경을 넘어선 사람으로서의 ‘여유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것’ 역시 정답이다.
산의 정상은 꼭대기일 뿐 실은 절정이 아니다. 그 곳에 오르면 더 넓고 무연한 시야가 기다리고 있어 그 광경을 잠시 즐길 뿐이지 시간의 화살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윽고 하산 길을 재촉한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정상에서 머물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덧 하산 길을 완연히 느끼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자세와 그 사람의 품격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겨우 꼴랑 그것이 전부였어, 그게 절정이었단 말이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 그러고 보니 그것이 전부였어, 그래도 나는 만족할 수 있어 하는 사람도 있다.
출세도 성공이고 명예도 성공이지만 내가 말하는 진정한 성공은 죽음에 임박했을 때 지나온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삶을 肯定(긍정)하거나 自足(자족)하는 것이라 본다.
아쉬움을 토로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음을 알기에 그런 말은 그저 述懷(술회)일 뿐이다. (‘술회’라는 어휘를 모르는 분도 있을 것이니 술회란 ‘마음 속 생각을 털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두려운 것은 하산 길을 느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사람의 앞에 놓인 운명이다. 그것은 내림 길에서 자꾸만 오름 길을 찾는 사람과 같아서 저 작은 언덕만 넘으면 다시 오름이 시작될 거야 하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곱게 늙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이기도 하고 모습이기도 하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만은 미련과 집착을 털어버리고, 편히 떠날 수만 있다면 그 또한 성공일 수 있는 것이니 성공의 기회는 끝까지 우리 곁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운명은 무서운 것도 아니고 심술스런 것도 아니다, 이토록 친절하고 자상한 손길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너무 호시절만 기다리며 살지 말라는 것이 진심어린 나의 조언이다. 8 부 능선도 산 정상도 모두 실은 별 것이 없다, 내림 길도 내림 길일 뿐이니 모두 한 순간의 일로서 그저 그 때의 흥취이고 감상일 뿐이다.
나아가서 오름이든 내림이든 숨이 가쁠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며 길가에 피어난 들꽃과 대화도 하고 능선 위로 불어가는 보이지 않는 청량한 바람의 흔적을 따라가 보는 것이 결국 남는 장사 아니겠냐는 것이다.
호시절은 호시절일 뿐, 역경의 시절 또한 그럴 뿐, 삶에서의 성공은 이런 저런 모든 시절을 겪은 사람의 내면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마음이 찾아들 때 느끼게 되는 환한 빛줄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말복 지나 여름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온도는 높지만 하늘이 높고 푸르고 또 맑으니 내 마땅히 기억해야 할 風光(풍광)이다.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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