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德(도덕)과 돈, 권력, 이 三者(삼자)간의 오랜 갈등에 대하여, 제 2회  _  2009.5.2
앞의 글에서 돈과 권력으로 대변되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의 행동양식이 있고 이를 조화롭게 하려는 규범 간에 있는 부단한 충돌이 인류 역사의 한축이라 했다.  

다시 말해서 飮食男女(음식남녀)는 삶의 현실적 욕구라는 것이고, 규범, 즉 도덕이나 가치관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권유 사항이라고 말했다. 물론 강제성을 지니는 법이 있지만, 그렇기에 법은 신중하고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권력이란 또 하나의 요소가 개입을 하게 된다. 사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권력이란 그 사회의 유지와 존립을 위해 역시 없어서는 안 될 성질의 것이다.  

권력은 규범에 속하는 도덕이나 가치관, 나아가서 법과도 성질이 다르다.

우리는 권력 그 자체를 통해 사회를 다스리면 人治(인치)라고 한다. 그러나 그 권력이 법과 제도에 근거할 경우 法治(법치)라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표면상으로 법치이지만 정도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가령 북한의 경우 김정일을 지도자로 하는 사실상 ‘인치’의 나라라고 하겠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같은 이른바 선진국들은 법과 제도를 통해 권력 행사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야당에서는 현 정권에 대해 유신독재보다 더 하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선진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정도의 법치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를 개인적으로 만나서 또 더 나아가서 술자리라도 해보면 유신독재라는 본인의 말에 대해 스스로도 웃음을 지을 것이다. ‘정치란 것이 다 그런 거죠’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법과 제도를 통한다고 해도 권력자의 힘 자체는 실로 막대하고 막강하다. 특히 최고통치자인 대통령의 권력은 엄청난 것이다. 대통령 개인 자체가 살아있는 정권인 것이다. 물론 5년 시한부이지만.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을 두고 대통령의 검은 돈 거래에 대해 법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한편으로 최고통치자로서 법과 제도에 규정되지 않은 비용의 필요성이 분명히 있을 터인데, 그냥 검은 돈에 얽힌 문제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한 지적이 왜 그리도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일까?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관들은 일하는 동안 엄청난 유혹을 견뎌내어야 한다. 가령 국가적으로 필요한 사업이 있을 것이고 그 사업은 민간 기업에 의해 영위된다고 할 때, 경쟁기업들 중에 공정하게 적격자를 찾아내어 선정하는 일이 과연 그리 만만할 까?

모두 열심히 최선을 다해 국리민복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할 터이니,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한다는 것이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일까?

결국 누군가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 것이니 그 과정에서 어찌 유혹이 없을까? 그에 따라 수천억 심지어는 수조원에 달하는 이익이 좌우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뿌리치기 힘든 유혹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인내하면서 대통령 임기 동안 국정을 잘 보좌했다고 하자. 임기 만료와 함께 비서관 개인은 바로 실업자가 된다. 정권이 교체될 경우 특히 그럴 것이다.

이에 대해 예전부터 대통령들은 전별금 형식으로 비공식적 사례를 통해 그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했을 것이다. 비서관으로서 법률에 책정된 급여를 받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면 물론 훌륭하지만 시쳇말로 누가 알아주어야지 신이라도 날 것이 아니겠는가.

그냥 있을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었을 뿐이지만, 대통령에게는 나름 적지 않은 고충이 있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인간인 이상 퇴임 후에도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따르던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도 유지하고 품위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 왜 들지 않겠는가.

사기 화식열전에도 이런 말이 있다. ‘못은 깊어야 고기가 있고 산은 깊어야 짐승이 살 듯이, 사람은 부유해야만 仁義(인의)가 따른다. 부유한 사람이 세력을 얻으면 더욱 세상에 드러나게 되고, 세력을 읽으면 손들도 줄어들어 따르지 않게 된다. 이런 것은 오랑캐의 나라에서 더욱 심하다.’

이 말은 나라마다 문화 수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 사회 본연의 모습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문제 역시 법과 제도적 보완만으로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호호당은 권력자가 철저하게 깨끗한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관적인 태도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이라 본다.

인간의 본성을 인위적으로 개조하려는 것이 광기어린 사회혁명으로 가듯이 권력자 역시 인간인 이상 그것을 법과 제도로 악습을 근절하겠다는 것 역시 어려운 얘기가 아니겠는가.

권력은 누구나 바라는 바의 것이다. 옛말에 이런 것이 있다.

‘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권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이 있으면 반드시 돈을 가지게 된다.’ (有錢不一定有權, 유전불일정유권 有權必然有錢 유권필연유전)

우리 사회 역시 ‘有錢無罪 유전무죄 無錢有罪 무전유죄’란 말이 한 때 크게 유행했었다.

그런가 하면 ‘해먹는 것이 장땡’이란 말도 있다. 그리고 ‘해먹으려면’ 역시 권력이 우선인 법이다.

그렇다면 서구 선진국이나 일본은 그렇지 않을까? 또 도덕국가를 지향하는 북한은 또 그럴까? 그저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 본다. 어쩌면 더 은밀하고 응큼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권력이란 사회를 유지하고 이어가며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만인이 인정하는 것이다. 권력은 결국 없어서도 없앨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고대에는 권력집단이란 것이 하나의 신분이고 계급으로 존재했기에 자신들의 이익이 통치대상의 이익보다 우선시되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주권이 전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 언명되고 선포된 이래 통치자와 그 집단은 어디까지나 선거와 공무원법에 의한 규제를 받는다는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 민감한 것도 사실이고 또 현실이다.  

심지어는 국리민복을 위한 국영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일종의 유사 통치집단으로서의 혜택을 누리게 되며 또 누리고자 한다.

몇 년 사이 ‘신이 내린 직장’이란 말이 유행하는데, 그것은 신이 내린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질투나 시샘일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진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가령 내가 신이 내린 직장에 다닌다면 열심히 否認(부인)할 일인 것이고 얼마 전에 다니던 일반 직장에서 그만 둔 사람이라면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열심히 떠들고 다닐 일인 것이다.

그러면 다음 글에서부터 글의 본지로 들어가겠다.  

주제는 다시 말하지만 도덕과 돈, 그리고 권력 이 삼자간의 갈등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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