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행복하지 못한 당신에게 (상)  _  2009.6.10
좀 건방진 얘기 하나 드립니다.

당신의 삶이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더러는 실패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의 삶을 존중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까닭입니다.

아니라구요? 난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니 그런 말씀 실례 아닌가요 하고 반문하실 수 있겠지만 과연 당신이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불행하거나 실패라고 여길 리 만무하니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릴 적에 무엇을 이루거나 되어야만 또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배웁니다. 그런 가르침이 일방적으로 틀린 것은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과 자녀에게 성취욕을 불어 넣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 어리기에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성장하고 어른이 되었다면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루어도 좋고 이루지 않아도 좋은 것이며, 되어도 좋고 되지 않아도 좋은 것이며 가져도 좋지만 가지지 못했어도 전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에 방편설이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입장에 맞게 가르침을 준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에는 앞으로의 세월이 많으니 좀 의욕을 불러일으킴도 좋지만, 이미 성장한 당신, 또 자녀를 둔 당신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법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다가는 것이 목표이니 말입니다.

이루지 못하고 무엇이 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해서 불행하다 여긴다면 그 불행은 다시 恨(한)으로 서리고 맺혀서 다시 당신의 자녀에게 이어질 것이니 불행을 대물림하게 될 것입니다.

많이 벌어서 그를 자녀에게 넘겨주고 물려주고자 함은 인지상정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부를 물려준다고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 또한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怨恨(원한)을 대물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 우리 선배들은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국가가 부강해져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하여 지긋지긋한 가난에 대한 원한을 씻어낼 수 있고 자녀에게 그 원한을 물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일했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 우리들은 어느 정도 눈치를 차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선배들은 집요할 정도로 좀 더 나은 품질, 좀 더 저렴한 가격의 물건을 만들어 해외시장에 내다 팔고 해외로부터의 고가 소비재는 외화벌이에 역효과이니 모두들 경원시하면서 건실하게 살아왔습니다.

가난한 우리였기에 남의 나라 시장에 물건을 파는 것은 미덕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로 하여 경쟁에 도태된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갔다는 사실은 알아도 모른척하며 열심히 대한민국을 일구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이 엄청난 물량을 세계 시장에 내놓으면서 우리도 서서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2009 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환경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첫째, 경제적으로 발전했지만 그것이 기대했던 만큼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  

둘째, 전체적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사실과 장차 나와 내 가족이 그 어려운 쪽에 속할 수 있다는 불안감.

셋째, 비록 잘 살고 있어도 장차 다가올 세월이 갈수록 더 불안정하고 불투명하게만 느껴진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중국과 같은 후발국들이 세계 시장에서 우리의 몫을 다 가져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러니 이 세상은 경쟁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우리 시장을 꽁꽁 막아놓을 수도 없으며, 전체의 발전이 개개인의 윤택한 삶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며, 현재의 윤택한 삶이 영원히 보장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개인의 삶으로 돌아와 아무리 성취하고 가지고 이루어도 행복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많이 배우고 학벌을 쌓아 경쟁력을 높여도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제 우리는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성취하지 못해서 불행하다, 그러나 성취해도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이제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 때가 된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을 존중하는 법에 관한 것입니다. 자신을 존중하는 법의 입문 단계는 이른바 ‘물질’로부터의 탈피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니 물질이나 금전에 연연하지 말라는 그 흔해빠진 스토리를 늘어놓을 것 같으시죠? 아닙니다. 미리 넘겨짚지 마십시오.

제가 말하는 물질로부터의 탈피는 물질을 멀리 하라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물질적 향유는 좋은 것이니 그것을 어찌 멀리 하라고만 하겠습니까?

멀리하려고 애쓴다면 그것은 물질을 무서워 하는 것이지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호랑이나 천연두가 아닌 이상에 말입니다.

물질로부터 탈피한다, 벗어난다는 것은 좀 다른 얘기입니다. 물질과 상관 없이 당신의 삶이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 물질보다 당신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발전이 가져온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음을 알았다면 물질에 관계없이 즐거울 수 있는 그 무엇을 자신의 내면에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무엇이 당신의 속에 자리하면 물질이 풍요하면 풍요한대로 빈궁하면 빈궁한 대로 행복할 수 있게 되겠지요. 물질과 상관없는 행복이니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내면에 가져야만 행복할까요? 바로 당신과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삶의 여러 일들을 소중히 하고 즐기는 자세일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스스로 얻는다 해서 自得(자득)이라 옛 사람은 말했습니다. 물질의 풍요는 즐겁지만 빈궁은 즐겁지 않다구요?

천만의 말씀, 가령 당신이 화초 가꾸기를 큰 취미로 하고 있고 그것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이 물질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나름 의욕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물질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아무리 중노동에 시달린다고 해도 늦은 밤 홀로 하모니카를 구석방에서 조용히 불어대며 예술을 즐긴다면 그것이 물질과 무슨 상관인지요.

사실 재미와 행복은 물질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습니다. 이 점을 아셔야 합니다. 재미와 행복은 물질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덜컥 믿어버린 당신의 선입견이 당신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물질적 풍요가 가능해져도 그것에 그다지 마음을 앗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또 물질적 즐거움을 실컷 누리다가도 아니면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취미나 예술-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그냥 생활 속의 예술이 좋은 이유는 그것들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 않고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이 들어가 있기에 즐거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얻는다 함은 꼭 취미나 예술만을 일컫는 것 또한 아닙니다. 제가 무슨 얘기 하는지는 아시겠지요?

얘기가 좀 길어졌으니 다음번에서 이어갑니다. 건방진 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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