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버트  _  2009.6.8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앞에 선 아가씨가 책을 읽고 있었다. 슬쩍 보니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란다. 야, 저 제목 정말 죽이는구나, 제목부터가 가벼우니 정말 가벼운 읽을거리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부담 없음을 암시함도 아니고 제목부터가 가볍다고 하니 정말 부담 없겠다 싶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책 제목을.

“1 그람(g)”, 이렇게 하면 가볍지 않을까, 어때? 책의 내용은? 그건 나도 모르지, 일단 제목이 중요하니까, 제목을 정하면 맞춰서 책을 쓰는 거지 뭐.

아니지 연애소설을 하나 쓴 다음 제목을 “부담 없는 남자가 나는 좋더라”로 할까?

아니야, 아예 역발상이 나을 수도 있어. “깃털 모아 태산”, 어때?

혼자 키득 키득거리는데 맞은 편 아주머니의 눈이 묘하게 변했다. 웃음을 멈추기 위해 생각을 멈추어야 했다.

역에 도착했고 나는 얼른 내렸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이 이상해졌다. 1화용 표를 사는데 기이하게도 500 원을 보증금조로 더 넣어야만 표가 나오고 그 돈은 내린 역에서 다시 찾아가도록 되어있다. 예전처럼 받을 돈만 받으면 될 것을 왜 보증금을 내어야 하고 다시 찾아야 하는 걸까? 왜 사람에게 한 번 더 일을 시키지?

내친 김에 하도 이상해서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아예 대답도 하지 않는다. 한국말인데 왜 씹지? 타는 역도 그랬고 내린 역도 그랬다. 까닭을 묻는 질문에 절대 답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린 것이 틀림없다. 요상한 일이다.

새로운 서비스는 뭔가 더 좋아져야 하는 거 아닌 감!

내린 곳은 강남 신사역. 차가 잘 빠지는 저녁 같아 택시를 탔다. 여기서도 이상한 일과 조우하게 된다.  

타서 출발하고 보니 담배 냄새가 제법 강했다. 그래서 기사 아저씨, 담배 냄새가 짙으니 환기 좀 하시지요 라고 딴에는 친절하게 얘기했더니 웬걸 “손님께서는 담배에 지나치게 민감하신데요, 환기 여러 번 했습니다.”하고 다소 불쾌한 어투의 대답이 왔다.

그래서 “아저씨, 저도 골초거든요, 그런데 골초가 싫어할 정도면 그런 거 아닌가요?” 라고 다시 말하니 대뜸 “얼마나 피우십니까?” 하고 도전적으로 물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약하게 나갈 수는 없고 해서 좀 올려서 “두 갑은 적은 날이지요”라 답했다. 그러자 “저는 세 갑입니다, 선생님”하고 단호한 어조로 되받아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환기를 좀 하라는 것이었는데 택시기사는 교묘하게도 누가 더 골초인가를 확인해보자는 쪽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었다.

속으로 아, 세 갑 정도 피울 정도라면 몸 자체에서 나는 냄새구나 싶어 이해는 했지만, 참 희한한 문답을 주고받은 셈이었다.

내리면서 동전 거스름을 받지 않았다. 그저 “담배 사시는 데 보태--” 하고 꼬리를 흐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냄새 난다는데 정작 본인은 손님하고 담배 누가 많이 피우나 경쟁을 하고 있으니 나 원 참!

그러고 보니 개인택시였다. 본인이 사장이다 보니 타는 손님은 마치 잠시 세를 사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실례했습니다, 사장님!

참 이상한 저녁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늙은 앨버트가 된 것 같은 묘한 기분. 서울의 초여름 밤공기 속에 미량의 알코홀을 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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