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으로 살펴보고 전망하는 김정일의 핵 데모  _  2009.6.7
2003 년 1월 10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壬午(임오)년 癸丑(계축) 癸未(계미)일이었다.

당시 미국 부시 정권은 자신의 힘만으로 세계를 호령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들떠있었고 북한은 악의 축에 속한다고 굴레를 씌워놓은 상태, 이에 2000 년 남북한 정상회담으로 먹고 살 길을 찾던 김정일은 비상수단을 내걸고 나왔던 것이다. 이미 핵개발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북한이었다.

김정일의 일간지는 庚子(경자)이고 불의 기운이 좋은 팔자이다. 2002 년 12월은 壬子(임자)월이니 지지의 子水(자수)가 壬午(임오)년의 지지 午火(오화)와 충돌하여 불은 꺼지고 차가운 마음만 남았으니 독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미국은 2002 년 초부터 이라크 전쟁으로 여념이 없던 차, 북한을 달래고 시간을 벌기 위해 육자회담을 구성했으니 회담은 2003 년 8월 27일에 개최되었다.

癸未(계미)년 庚申(경신)월 壬申(임신)일이었다.

여름이라 불의 기운이 강할 때이고 干支(간지)도 庚申(경신)이라 김정일의 운세가 나름 좋을 때였다. 미국과의 직접 담판을 통한 수교와 통상은 김정일의 모든 ‘꿈’이었기에 육자회담이긴 하지만 충분히 희망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임신일 이틀 전이 경오일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아마 이 날 김정일은 중국을 통해 미국 측의 제의를 수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짐작하고 있다. 이처럼 庚午(경오)라는 간지는 김정일에게 있어 좋은 의미가 있다.

한 가지 살펴보면 1990 년 庚午(경오)년에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되면서 사실상 부친의 후계자임을 대내외적으로 확인 받았다.

돌아와서 육자회담과 관련하여 중요한 대목은 회담 시작 후 만 5 년 그러니 60 개월, 즉 2008 년 8월 전까지 구체적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면 모든 것이 어려워지고, 다시 그로부터 12 개월인 2009 년 8월 전까지는 그래도 뭔가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 된다는 점이다.

이를 合(합)과 衝(충)의 원리라고 한다. 다시 말해 2003 계미년과 ‘합’이 되는 때는 2008 년 무자년이고, ‘충’이 되는 때는 2009 년인 것이다.

그리고 합과 충의 사이 기간인 2008 년 8월부터 2009 년 7월까지 1 년의 기간은  일이 성사될 수 있는 희망과 일이 틀어지는 갈등이 번갈아 생기는 기간이고, 2009 년 8월이 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지난 2006 년 10월 9일의 제1차 핵 실험 역시 육자회담의 성과를 재촉하기 위한 김정일의 핵 데모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병술년 무술월 신미일의 의미에 대해서는 경제칼럼 ‘북핵 실험과 증시’에서 밝힌 바 있다.

보충한다면 당시 우리 경제가 거품의 절정에 있었다는 점, 아울러 부동산 가격도 그 때가 정점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 보니 북핵 제1차 실험은 우리 국운이 꺾어지기 시작하는 길목에서 만났던 일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뒤로 증시는 계속 상승했지만 그것은 순수한 거품이었던 셈이다.

제1차 핵실험으로 보면 종말점은 금년 9월 21일 추분 근처라 했지만, 더 상위의 중차대한 일인 육자회담으로 보면 종말점은 금년 8월이 된다. 날자를 좀 더 구체적으로 뽑으면 2003년 8월 27일이 임신일이니 그것을 찾으면 7월 26일이 壬申(임신)일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는 희망적인 일이 시작한 때이고, 종말점이 아니다. 운세 종말점은 그로부터 다시 30 일이 지난 기운이 충돌하는 날을 보면 8월 25일 壬寅(임인)일이 나온다. 그러니 바로 그 날이 육자회담의 종말점이다.

여기서도 그 이틀 전을 보면 庚子(경자)일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날 김정일은 모종의 좋지 않은 결정을 내릴 공산이 크다. (혹여 걱정이 되어 하는 얘기이지만, 이 말이 남북한 간의 전쟁 같은 일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안심하시길.)

그러니 이번의 핵실험은 이런 의미, 시간이 없다, 기회가 더 희박해지고 있다는 초조와 절망감, 체제를 유지하면서 백성들도 먹여 살릴 수 있는 묘수가 어렵다는 사실에 단행된 것이 이번 5월 25 일 경오일의 제2차 핵실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절망과 초조감에서 비롯된 김정일의 마지막 으름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리하여 길고 길었던 김정일의 핵 시위도 이제 끝이 날 때가 거의 임박했다.

김정일이 바라는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북한 체제를 건들지 말라는 것, 미국과 수교하고 그를 통해 미국과 미국이 관장하는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진심으로 미국이 확인해준다면 비핵화를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경과를 통해 북한을 이제는 아예 불신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믿을 수 없다는 것, 그러니 이번 4 대원칙을 제시하고 북한이 그 조건을 수락하면 진지하게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문화적 정치적 배경에서 오는 적지 않은 오해가 개재되어 있다고 본다.

앵글로 색슨 문화의 미국은 협상문은 계약으로서 그대로 이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중시하는 나라인 바, 이런 면에서 북한은 아주 불량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상대라고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입장에서 미국과 대등한 담판 내지는 미국이 북한의 핵 자위력에 미국이 겁을 먹고 있다는 인상을 북한 내부 지지층과 국민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미국은 간과하고 있다고 본다. 북한은 가부장적 문화배경의 권위적 유교 국가인 것을 미국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북핵 문제가 꼬이게 된 데에는 미국의 오만도 있었고 김정일의 착각도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안타깝게도 이제 김정일에게 남은 비장의 카드는 거의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장거리 미사일 실험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지만, 긴장을 조성하는데 일조할 뿐 미국의 마음을 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겁주어서 미국과 통상하겠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잘못된 계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떤 행태로든 전면적 무력도발?

그것은 전혀 대안이 될 수 없다. 너 죽고 나 죽자는 결심이 설 때 가능한 얘기일 뿐인데 김정일은 적어도 한 국가를 소유하고 있는 ‘가진 사람’이다.

다만 우리에게 있어 대규모 무력충돌은 실로 두려운 바이지만, 김정일 입장에서도 이 생각은 진짜 한심해서 일고의 가치가 없다. 나라를 살려보겠다고 그리하여 자식에게 그 나라를 물려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지금 6월이 김정일에게 좋은 庚午(경오)월이다. 희망을 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하겠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도발적인 북한에 대해 보상하는 일은 없다고 분명히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니 이제 핵을 통한 시위는 끝낼 때가 되었다. 부디 냉철한 판단 아래 자신은 물론 북한 주민과 더 크게는 남북한 겨레 전체에 좋은 일이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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