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 그 간절한 사랑의 노래  _  2009.6.5
발표 당시의 원본 가사를 옮긴다.

沙工의 뱃노래 감을거리며
三鶴島 파도깊히 숨어드는데
埠頭의  새악시 아롱저진 옷자락
離別의 눈물이냐 木浦의 설음

三栢淵願安風은 露積峰 밋헤
任 자최 宛然하다 애달픈 情調
儒達山 바람도 榮山江을 안으니
任 그려 우는 마음 木浦의 노래

깁흔 밤 쪼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짓타 옛 傷處가 새로워지나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는 절개 목포의 사랑

千古의 絶唱(절창) 이난영이 부른 노래이다.

이 노래는 우리 대중 가요사 전체를 털어 손에 꼽는 名曲(명곡)이요 名詞(명사)라 하겠다.

제2절 가사 머리에 ‘三栢淵願安風(삼백연원안풍)은’이란 특이한 한문글귀가 있다. 이는 ‘삼백년 원한 품은’이란 가사를 당시 일제 치하라서 이런 식으로나 발표할 수 있었음이니 시대의 아픔이 서렸음이다.  

그랬음에도 이 노래는 당시 일제 사상계 경찰로부터 꽤나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사공이 무슨 의미이냐, 삼학도 파도깊이 숨어든다는 말이 일본제국의 심장부로 침투하고자 하는 불온한 의미가 아니냐는 식으로 문초를 당했다고 한다. 어디에도 어느 때에도 ‘오버’하는 충성분자는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 노래가 나오게 된 연원도 대단히 흥미롭다.  

1934 년 무렵, 조선일보사는 ‘오케레코드’사와 함께 공동기획으로 신민요 노랫말을 공모했다.

이에 와세대 대학 출신의 20 대 무명시인 문일석은 ‘목포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가사를 지어 1등으로 당선되었다. 그러자 당시 흥행의 귀재로 불리던 오케레코드 사장은 바로 얼마 전에 ‘타향살이’를 빅 히트시킨 신예 손목인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손목인 씨 역시 20 대 초반이었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우리 가요사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다. 아빠의 청춘, 슈사인보이, 바다의 교향시 등을 남겼다.

이어 오케레코드 사장은 노래 제목을 ‘목포의 눈물’로 바꾸었다. ‘9월의 마지막 밤’이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변하면서 가수 이용을 만들었듯 이름을 변경한 것은 대성공의 발판이었다.

그러나 이 노래가 한 때의 대박으로 그치지 않고 불후의 명곡으로 남게 된 것은 역시 이난영, 그 분 때문이다.

당시 10 대 후반이던 목포 토박이 이난영.

이난영은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무슨 한이 그리도 서렸는지 풀어놓다가도 주저하며 흘러가다가도 다시 망설인다. 애달픈 사연들이 간절한 가슴에서 우러나와 특유의 비음에 실려 높고 또 낮게 너울을 그리면서 물결을 만들어낸다. 강하게 출렁이고 다시 여리게 잦아들지만 마침내 속 굳은 마음을 소리에 실어 마무리를 짓는다.  

그 기막힌 情調(정조)는 식민지배하에 힘겨워하던 우리 민족의 눈물샘을 터뜨렸고 서린 한을 어루만졌던 것이다.

그러니 어찌 천고의 절창이 아니라 하겠는가!

가사말도 기가 막히다.

사공의 노래가 너울처럼 넘실대면서 삼학도 파도 속 깊은 곳까지 숨어든다고 한다. 무엇을 숨김일까? 다름 아닌 임을 향한 간절한 애정일 터이다.

또 悲願(비원)이 서린 노적봉 밑에는 임과 함께 하던 자취가 예와 같이 선연하고 완연하니 애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고 노래하고 있다. 유달산 바람이 영산강을 안으니 님의 품에 안겼던 그 포근함과 서늘함이 다시 오늘에 새롭다고 노래한다.    

깊은 밤 조각달이 다정했던 지난 날 님의 눈매를 떠올려 아픔 상처를 다시 후벼내니 님 떠날 때 이 마음도 함께 보냈어야 하는가를 되물어 보지만, 그렇지 않다, 한 번 맺은 절개는 숨 다하는 날까지 변하지 않겠다고 새삼 다짐하면서 사연을 마무리한다. (이 대목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는다면 그런 당신을 구제할 길은 없으리라.)  

노래를 듣다보면 가슴을 흔들어놓고 울렁이게 하여 마침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것은 애달픈 곡조인지 노랫말의 뜻인지 아니면 이난영의 소리인지 도저히 구분이 되지 않지만 그저 이난영의 목소리만 파도 넘실대듯 기억에 새겨질 뿐이다.

항구는 이별의 장소이고 아울러 盟約(맹약)의 공간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약속이 헛될까봐서 굳은 약속을 꺼리지만, 옛 사람들은 붉은 마음 정했으면 부질없다 해도 오히려 그를 행복으로 간직했으니 세월이 이토록 다르다.

울고 싶을 때가 누구나 있다. 그러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들어보라, 노래는 울고픈 그대 마음을 열어놓을 것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면서 실컷 울다 보면 어느덧 그 마음도 편안해 질 것이니.

이난영은 황진이를 이었던 절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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