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이의 마지막 점프  _  2009.6.4
2001 년 초에 만난 초롱이가 어제 저녁에 숨을 거두었다. 처음 만날 때 두 달된 토끼였고, 택배 상자에 담겨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엽기토끼 ‘마시마로’가 한창이던 시절, 2만원주고 인터넷 주문한 토끼였다. 눈부시게 하얀 털에 눈빛이 너무도 영롱 초롱해서 아내는 초롱이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밤 11시쯤 집에 들어가니 집안이 술렁였고 나는 직감했다, 초롱이가 죽었음을. 실은 하루 종일 초롱이 걱정을 하던 차였다.

며칠 전부터 감기로 고생하면서 현저하게 쇠약해진 초롱이였다. 해열제를 아주 조금 갈아서 주었더니 금방 좋아졌지만, 눈빛이 영 초롱하지 않았다.  그 며칠 전부터 깔끔하던 녀석이 대소변을 흘리고 다니기에 속으로 올 여름 더위가 고비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8 시 무렵, 아내가 베란다를 내다보자 종이박스 안에서 쉬던 초롱이가 눈을 맞추었다고 한다. 아내가 베란다 문을 열자 상자 안에서 나와 이리저리 활기차게 뛰어다녔고, 아내는 ‘아이구, 우리 초롱이가 이제 살아났구나’ 했다고 한다.

아내는 산에서 민들레와 참나물, 토끼풀을 잔뜩 따와 먹였더니 건강이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다는 자랑을 하던 터였다. 그런데 초롱이는 아내 앞에서 최근에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던 힘찬 도약을 했고 무리였던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라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아내는 초롱이를 급히 손으로 부축해주었는데 약 10 여초 정도 숨을 내쉬더니, 끄르륵 하는 미약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내는 솟구치는 눈물을 꾹 참고 ‘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바’로 이어지는 ‘광명진언’을 연신 읊조리고 또 ‘초롱아 이제 좋은 데 가야지 암 그럴거야’ 라고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내가 집에 들어갔을 무렵 초롱이는 한지로 둘러져 베란다에 뉘어져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종이를 풀어 초롱이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뜬 눈이라 감겨주려 했지만 잘 감겨지지 않았다. 오열이 터져 나왔지만, 억누르고 큰 소리로 진언을 염송했다.

기도를 마친 다음 수묵화 종이로 머리를 감싸고 좀 더 큰 종이로 몸을 두른 다음, 알맞은 종이박스에 넣었다. 잘 먹던 요구르트와 비스킷, 산에서 따온 풀들도 함께 넣었다.

아침 5시 반, 뒷산으로 올랐다. 종이박스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아들에게 ‘이상한 데 한 쪽 면이 무척 열이 있어, 혹시 살아난 거 아닐까’ 했더니 아들은 부패하면서 나는 열이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 중턱 정자 앞 완만하게 경사진 곳을 찾아 삽을 꽂았다. 이틀 연이은 비로  땅은 제법 깊은 곳까지 삽을 받아들였다. 아들은 ‘아빠, 초롱이의 마지막 효도네’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스에서 꺼낸 다음 머리를 약간 위로 한 채, 초롱이를 살포시 놓았다. 들어있던 풀과 나머지 먹을 것들을 함께 넣어주었다. 흙을 덮고 고양이나 다른 짐승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돌도 하나 얹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잠시 기도했다. 아침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헤어보니 8 년하고도 넉 달을 살다갔다. 아내 앞에서 힘찬 도약을 한 것이 조금은 일찍 숨을 거둔 이유 같다. 하지만 자존심 강하고 깔끔하던 성격답게 마지막 점프를 보여 주었으니 우아한 죽음이었다.

극락왕생이란 말을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극락에 가서 태어나라는 말이기에, 다시는 태어나고 죽는 순환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기원이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또 초롱이를 만나게 되리라 믿는다.  

세월이 흘러 어느 길목에서 유난히 눈이 초롱한 아이를 만나게 될 것도 같다. 저녁별이 유난히 ‘초롱’한 날이면 초롱이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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