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德(도덕)과 돈, 권력, 이 삼자간의 오랜 갈등에 대하여, 제 1회  _  2009.5.1
사마천의 사기열전 끝부분에 貨殖列傳(화식열전)이란 제명의 글이 있다. 무려 2천년도 더 된 중국의 역사서이지만 소개하고픈 글 단락이 있다.  

‘농부는 먹을 것을 공급하고, 나뭇꾼은 자재를 공급하고, 기술자는 이것을 물건으로 만들고, 장사치는 이것을 유통시킨다. 이런 활동은 위로부터의 正敎(정교)에 의한 지도나 징발 또는 사역에 의해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그 힘을 다해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물건의 값이 싼 것은 장차 높아질 징조이며, 비싼 물건은 싸질 징조라 하여 적당히 팔고 사며, 각자가 그 직업에 힘쓰고 일을 즐기는 상태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아 밤낮을 쉬지 않는다. 물건은 부르지 않아도 절로 모여들고 강제로 구하지 않아도 백성이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참으로 道(도)와 부합된다 하겠으니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호호당은 이 글을 대할 때면,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가 말한 바, 신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을 다만 道(도)라고 해서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1776 년에 나온 국부론과 기원 전 사람인 사마천과 생각은 실로 유사하다.

사마천은 당시 유행하던 학문 사조, 그러니까 공자나 노자, 묵자 등의 학설에 대해 무척 밝은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 역사가로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화식열전을 지어 사기열전을 마무리하고 있다.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리는 것은 거기에 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며 분분히 떠나가는 것 역시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天下熙熙 천하희희 皆爲利來 개위리래 天下壤壤 천하양양 皆爲利往 개위리왕)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 중의 하나로서 ‘이익’을 말하고 있다. 이익 동기를 다시 나누면 금전과 권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익’만이 사람이 움직이고 행동하는 동기의 전부는 아니다.

다른 동기들을 살펴보자. 남녀의 애정을 비롯하여 애정이라는 동기도 존재한다. 그런가하면 도덕 내지는 규범, 가치관이란 것도 있다.

이익이나 애정이 삶의 현실이라면 도덕이나 규범, 가치관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當爲(당위)의 문제라 하겠다.

禮記(예기)라는 고전 속에 사람의 살아가는 현실을 공자님은 飮食男女(음식남녀)라고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먹고 마시고 남녀 간에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통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적 삶의 욕구를 잘 누리기 위해 禮節(예절)로 대표되는 규범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바로 예기인 것이다.  

결국 사람은 ‘이렇게 산다는 것’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자는 현실이고 후자는 권유인 셈이다. 法(법)이란 그런 권유사항 중에 이것만은 강제로라도 지켜야하겠다는 것이니, 현대사회는 이 법의 제정과 개폐에 관해 헌법이란 큰 테두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法治(법치)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과 권유는 사람이 살아온 이래 부단히 충돌하고 갈등하고 있다.

권유사항들을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仁義禮智信(인의예지신)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다섯 가지 덕목은 현실적 욕구들과 부단히 갈등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한 논의를 다음의 말로서 시작하고자 한다.

‘곳간이 차야 禮節(예절)을 알고 衣食(의식)이 넉넉해야 榮辱(영욕)을 안다.’

지금으로부터 이천 수백년 전,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을 지낸 관중이 남긴 책, 管子(관자)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이다. (곳간은 한자어로 倉廩(창름)인데 어려우니 바꾼 것이다.)

호호당은 현실적 삶과 규범적 삶의 관계에 대해 이 이상 더 정확하게 표현한 글을 평생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정반대 입장에서 말을 한 사람도 있다.

중국을 사회주의로 철저하게 개조하고자 시작한 문화대혁명 당시 그 지도자 모택동은 이런 말을 했다.

‘가난해질수록 혁명적이다.’ (越窮越革命 월궁월혁명)
‘가난하면 혁명적이고 부유하면 수정주의가 된다.’ (窮則革命 궁즉혁명, 富則修 부즉수)

모택동이 원했던 것은 사회주의 개조를 통해 중국을 규범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道德國家(도덕국가)를 건립하고자 했다.

수천만명이 혁명의 광기 아래 죽어나가고 희생되었지만, 모택동은 理想社會(이상사회)를 건설하려면 그 정도의 희생은 감내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스탈린의 혁명 역시 과정에서 당시 소련 인구의 1/3 에 달하는 사람이 희생되었다. ‘킬링 필드’로 악명을 날린 캄보디아의 폴포트 역시 전 인구의 1/4인 200 만명을 사회주의 개조를 위해 죽였는데, 그는 원래 인기가 많은 역사 선생님이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도 파리의 드넓은 광장에는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람이 단두대의 칼날 아래 목이 날아갔고, 청소부는 그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피를 씻어내느라 바빴다.

이렇듯 사회혁명이란 狂氣(광기)를 밥으로 피를 마실 것으로 하는 그 무엇인 것이다. 도덕이나 규범은 필요한 것이지만 거기에 너무 기울면 그렇게 되는 것이니 우리는 극단적인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개조하겠다는 생각, 실로 터무니없는 것이니 그것이 학자나 공상가의 머릿속에 머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만 현실에서 사회개조는 즉각 지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가난하면 더 혁명적이라는 모택동의 말, 깊이 생각해보면 그 말속에도 나름 一理(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非道德的(비도덕적)으로 되는 것은 결국 개인의 드센 욕망에 원인이 있는 것이니, 그 욕망을 최대한 억누르는 방법 또는 결과는 가난과 궁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一理(일리)가 있다고 해서 그리고 권력을 장악했다고 해서 현실화시키면 세상은 지옥이 된다.

모택동의 광기에 찬 신념을 보면서 한 때 동지였던 등소평은 저 영감이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모택동의 사후 아내 ‘강청’을 위시한 4인방이 득세하자 기회를 잡아 번개와 같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중국을 이끈 것이다.

개혁개방이란 결국 곳간을 차게 만들고 의식을 넉넉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지금의 번영하는 중국이 세계무대 위에 등장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대단히 老獪(노회)하다. 응큼하기가 짝이 없을 정도다, 그들을 가난으로 이끈 모택동을 결코 틀렸다고 부정하지 않고, 인자했던 할아버지, 인민을 사랑했던 지도자의 이미지로 여전히 존경하도록 만들고 있다.

등소평은 자신의 아들이 문화대혁명 당시 광기의 희생자가 되어 불구가 되었지만 모택동에 대한 나쁜 감정을 입 밖으로 뻥긋도 하지 않았다. 너구리 중에 진짜 너구리.  

그리하여 오늘날 모택동 목걸이는 중국인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을 정도.

호호당은 이런 중국인들의 균형감각이야말로 역사에서 배운 지혜라고 여긴다.

이 글이 몇 번에 걸쳐 마무리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써 나가면서 스스로도 많은 성찰을 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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