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의 反抗(반항)  _  2009.6.19
나는 카드(card)와 자동차(car), 그리고 핸드폰(Cellular phone)을 쓰지 않는다. 이름 하여 세 개의 ‘C’를 멀리 하는 '3無C' 정책이다.

은행원 출신인 나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은행의 무차별적 대출상환 압박에 넌더리가 났고 그리고 결심했다. 죽는 날까지 금융회사는 물론 어떤 이로부터도 금전적 빚을 지지 않겠다고. 그리고 諸神(제신)들에게 기원하길, 부자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빚지는 일만은 막아 주십사 하고.

다행히도 오늘날까지 12 년간 빚이 없으니 가호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사색하기 좋아하고 궁리하길 즐기는 나는 손에 든 핸드폰이 엄청 귀챦고 성가셨다. 그러던 중 빌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저명한 경영 자문가인 피터 드러커가 쓴 책이었다.  

드러커가 기업 경영자들은 때로 몇 시간씩 연락을 끊고 업무를 떠나 공원에 가서 조용히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더니 상대 경영자는 그러면 긴박한 일이 생겼을 때 현장에 없거나 연락을 받지 못해서 긴급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하고 반문을 했다.

이에 드러커는 물론 긴박한 상황은 미리 비상조치요령을 세워 당신이 없어도 담당자가 조처를 취하면 될 일이고, 기업경영에 있어 30 분 안에 결정을 내릴 사항은 결코 없습니다 라고 답했다.

용기를 얻은 나는 핸드폰을 3층 아파트에서 정원 쪽으로 힘차게 던져버렸다. 물론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다소나마 과격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굳은 결심을 더욱 강하게 다지려는 오버 내지는 ‘퍼포먼스’였다.

자동차는 참으로 애매한 물건이었다. 총소유비용이란 개념이 있다. 영어로 하면 Total Cost of Ownership 이다. 자동차에 적용하면 차를 사는데 드는 초기 자본투자와 할부일 경우 분할납부액과 금리, 그리고 기름을 넣고 보험료와 세금을 내는 등의 운영비용, 아울러 부속을 갈고 정비를 하는 유지비용을 모두 합쳐 자동차를 소유하고 유지하는 총비용을 말한다.

흔한 2000 CC 기준으로 이 전체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 비용이면 움직일 때마다 택시를 타도 그것이 훨씬 저렴하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 나들이를 할 때 또는 제법 먼 거리를 가려면 아무래도 자가용 차가 있어야 편하다.

그래서 타협했다. 일단 쓰던 차는 아내가 쓰기로 하고, 나는 차를 사지 않기로. 그리고 아침에 사무실에 나올 때는 아내가 태워다주고 그 이후에는 택시를 부담 없이 타고 다닌다. 물론 차가 막힌다 싶으면 지하철을 타고.

엄밀히 따지면 이런 타협이 아예 차가 없는 것에 비해 경제적으로 유리한 것 같지는 않지만, 편한 점도 있고 좋은 핑계거리도 있다. 적어도 차는 아내 의 것이고 내 차는 없지 않느냐, 한 집에 차 두 대 있는 경우는 허다하지 않느냐 하는 스스로의 변명이다.

이렇게 말하니 무척이나 경제에 밝은 사람인 것 같지만, 실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계산은 어느 누구보다도 빠르지만, 돈에 대해 나는 꽤나 경계하는 편이다. 돈은 妖物(요물)일 수도 있기에 무심한 척 하며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낸다.

3無C 정책을 택한 이유도 금전적 타산이 아니다.

실은 남들이 다 가는 길로 가기 싫다는 것이 근본적 원인이다. 공연히 잘난 체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지혜의 빛으로 비추어보니 아등바등의 길이고 아수라의 길로만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런 길이라면 언제나 비켜서줄 용의가 있다.  

제법 전에 이런 일을 겪었다.

신호 대기선에 차들이 서있었다. 문을 열고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옆에 있는 차도 문을 열고 열심히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떠들고 있었다. 40 대 정도의 여자 분이었다.

“야, 사는 게 왜 이 모양이니, 맨 날 청구서에 고지서, 별별 할부금, 정말 미치겠어. 남편이 벌어봤자 쥐꼬리이고, 이것저것 떼면 남는 것 진짜 없다, 너. 너 그거 알지. 정말 미치겠어, 얘.”

차도 새로 뽑은 차였고 옷도 ‘실키’했다. 머리도 제법 돈을 바른 ‘헤어’였다. 핸드폰에 차에 비싼 옷에 저러니 여유가 없지 하는 생각에 픽 하고 웃었다. 결혼 한 번 한 죄로 저 여자의 남편은 죽어나는구나, 쯧쯧. 아예 쥑여라 쥑여.  

그러니 아줌마, 그 길로 가시고 나는 이 길로 갈게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돈을 일부러 딱지로 여긴다. ‘딱지心法(심법)’이란 말도 붙였다.

버스 탈 때 천원 딱지 하나주면 통과, 담배 살 때 종이딱지 두 장과 약간 큰 쇠붙이 하나, 식당에 가면 음식을 먹고 초록색 딱지 한 장 주면 다시 다른 딱지 몇 장을 거슬러 주는 걸로 여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돈은 필요하다. 그래서 개발한 心法(심법)이 또 있으니 이른바 ‘숫자심법’이다.

나는 매달 내 계좌에 있는 돈이 아니라 숫자들을 아내의 계좌로 옮겨놓아야 한다. 그 숫자들을 옮기면 아내는 내게 더 이상 성가시게 하지 않으니 내게 돈이란 그저 바가지를 면할 수 있는 숫자들일 뿐이다.

최근에 지하철이 이상한 횡포를 부리는 바람에 급기야 교통카드를 하나 샀고 충전도 했다. 아는 이가 신용카드를 쓰면 되지 않느냐 하기에 대뜸 그러다보면 신용카드를 쓰게 되거든요! 하고 싫은 내색을 했다.

대충 이것이 나의 돈에 대한 생각들이다.

일용할 돈과 벌어 쓰는 돈은 딱지이고 실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재산이나 부와 관련하여 얼마 있느냐 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그 돈에 대해서 나는 관심이 없다, 쓰지도 않을 돈이고 숫자로서의 돈이니 그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상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돈에 집착할까? 생각해보니 딱지로서의 돈은 좋고 필요한 것이니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우린 자꾸 그런 딱지들을 더 많이 모아 놓으려는 충동을 가진다. 많이 모이거나 모으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지면 드디어 그 딱지들과 숫자들은 우리 마음 속에 또아리를 틀고 요물이 된다는 것이 나의 금전관이다.  

나이 여든에 수십억 정도의 돈을 프라이비트 뱅커에게 맡겨놓고 엄청 성가시게 하는 영감님들을 제법 목격한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참 계산머리가 없으신 분들이라는 생각은 든다. 물론 오래 사시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만, 합리적으로 얼마 사시지 못한다는 생각도 하실 터인데 무얼 그리 열심히 철저하게 돈을 관리하고 계시는지. 나이 드신 분이라 요물이 들어앉았다 하진 않겠다. 그저 독특한 취미생활 정도로 이해한다.

내게 있어 돈이란 곧 아내와 직결된다. 아드님께서야 어찌하여 제가 벌어먹을 것이고, 아내가 문제. 하지만 그 또한 만일 내가 어떻게 되어 세상에 없게 되면 알아서 먹고 살 궁리는 하겠지만 기왕지사 내가 그 원하는 숫자를 줄 수 있으니 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전에는 늘 공상에 빠지곤 했다.  

사주를 볼 줄 알고 그림도 그릴 줄 알고 영어도 제법 익숙하며 약간의 밑천만 있으면 증시에서 퍼다 쓰면 된다. 그러니 이를 바탕으로 나라 안 여기저기를 유랑하는 꿈이었다.

그런데 이 또한 나이가 제법 들어 갱년기 장애를 느끼자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생각에 유랑의 꿈도 시들해졌다.

그러나 의욕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실은 더 여물어졌다고 해야겠다.

돈으로 해서 고생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 가, 부지기수이다. 돈을 쌓는 기술에 대해선 별 감흥이 없지만 벌어먹는데 애로가 있는 분들에 대해서는 무지 관심이 많다. 겨울이 오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열심히 잔소리와 충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 잔소리가 나름 충분히 유효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왜냐, 돈에 대한 집착이 없다보니 돈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저 양반은 이제 세상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거리감을 느끼거나 편하게 살고 있네 하고 고까워하신다면 이 글은 ‘완존’ 의도가 어긋난 셈이다.

내 말은 삶에는 본 마디가 있고 군더더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내겐 어떤 군더더기가 있는지 하고 생각해 보시면 좋겠다.


이전페이지로    목록보기            이 글 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