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하원군, 푸른 안개 옷을 걸친 女神(여신)  _  2009.6.16
마조가 이슬람 항해술과 관련 있는 항해의 수호여신이란 얘기를 했다. 내친 김에 또 한 분의 재미나고 신성한 여신인 벽하원군에 대한 얘기를 하겠다.

벽하원군, 푸를 碧(벽)에 안개 霞(하), 으뜸 元(원), 군자 君(군)이다. 남성이 아니라 여성 신이다.

중국의 다섯 명산 중에 동쪽 산인 泰山(태산)에 원 사당이 있다. 각종 소원은 물론 특히 아들 낳는데 염험한 여신으로 널리 알려진 신이다.

아침 일찍 태산 정상에서 해를 맞으면 산 아래 자락으로부터 투명하고 연푸른 안개가 오르기 시작한다. 1994 년 초여름, 중국을 처음 여행하던 나는 태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보았다, 그 푸르고 여린 투명한 연무를.

나중에 생각해보니 벽하원군은 바로 그 푸르고 여리며 투명에 가까운 연무였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벽하원군을 親見(친견)한 셈이니, 실로 복이 많은 삶이라 여긴다.

중국인들은 태산의 신을 東嶽大帝(동악대제)라고 하여 모시지만, 인기는 태산의 푸른 안개 여신인 ‘벽하원군’이 훨씬 높다. 어딜 가도 그렇지만 여신이 남신보다 인기가 좋다.

예수님 하면 아무래도 좀 빡빡하지만 마리아하면 역시 어머니 같아서 좀 투정을 부려도 되고, 억지를 좀 써도 받아주실 것 같은 것이다. 특히 늘 죄를 짓고 사는 우리는 아무래도 떳떳할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불교 역시 부처님보다도 관세음보살이 인기가 훨씬 좋다. 자애로움은 여성이 남성보다 역시 한수 위인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엄청나게 큰 산에 거하는 동악대제보다 벽하원군이 한층 친근하게 다가온다.  

말로는 벽하원군은 동악대제의 딸인 ‘옥녀대선’이라고 한다. 산을 끼고 도는 연무는 陰(음)이고 산은 陽(양)이기에 동악대제와 벽하원군은 사실 음양을 대변하는 태산의 신인 것이다.

또 전하는 설로는 송나라 황제인 ‘진종’이 태산에서 봉선의 의식을 거행할 때 산 정상 연못에서 손을 씻으니 그 연못에서 여신의 석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이 연못 옆에 사당을 짓고 ‘벽하궁’이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 전설상의 중국 시조인 黃帝(황제)가 보낸 일곱 선녀 중에 하나가 태산에 머물게 되어 벽하원군이 되었다고 한다.

다 맞는 말이다. 태산 정상에서 해뜰 무렵 산허리를 끼고도는 푸르고 여린  연무가 벽하원군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베이징 사람들 사이에서 벽하원군의 인기는 특히 아들 낳고자 하는 부인들 사이에서 엄청 높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태산까지는 역시 먼 거리라 불편하던 차,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베이징에서 대략 50 킬로미터 떨어진 ‘묘봉산’에 벽하원군의 사당이 들어섰다.

그러자 베이징 아주머니들은 대거 그 묘봉산 벽하원군의 사당으로 발걸음을 시작했다. 매년 음력 4월 1일부터 보름간 사당이 개방될 때면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고 지금도 그렇다.

왜 이 때 개방하느냐 하면 내 생각에 이때는 산행하기도 좋고 특히 이른 아침에 참배를 해도 감기 걸릴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 본다.

염험한 기도 도량이 생기면 커다란 산업이 생겨난다. 휴게소와 여관, 식당, 부적 파는 곳, 산으로 오르는 수레와 인력거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 덕택으로 먹고 살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그렇다. 강화도 보문사에는 관세음보살이 계시니 수많은 사람을 부양하고 있고 동해안 낙산사 해수관음과 홍련암의 관세음보살 등 여러 관세음보살께서 주변의 사람들을 돌보듯이, 벽하원군은 태산 주변과 베이징 주변 묘봉산 인근의 백성들을 먹여  살리고 있음이다.

그런데 왜 벽하원군을 특별히 소개하는가? 그 이름 때문이다.

아침 해 뜰 무렵 산허리를 감아 돌며 올라와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과 가슴을 부드럽게 매만져주는 그 유연하고도 투명하며 푸르스름한 연무의 여신이 벽하원군이라 그렇다.

벽하원군이 다른 특별한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른 아침 나절의 연무라 하니 신비감이 가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神聖(신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신성이란 돌을 깎아 부처를 만들고 나서 높은 스님이 부처로 모시는 순간부터 그 돌부처상에 어리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깎은 것도 아니고 신령스런 태산 자락을 감아 도는 천연의 기운을 벽하원군이라 함이니 그 신성과 신령함에 조금의 훼손도 없는 것이다.  

碧(벽)이란 색은 맑고 투명한 옥색을 말한다. 녹차를 마실 때 차탕에 어린 연한 녹색 김을 碧霞(벽하)라 부른다. 그리고 발효한 차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붉은 빛이 나니 紫霞(자하)라 부른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당신은 벽하어린 차를 마시고픈가,  아니면 자하어린 차를 마시고픈가? 아무튼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시기를.

이전페이지로    목록보기            이 글 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