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의 마지막 관문  _  2009.6.14
처음에 스스로 얻음, 自得(자득)에 대해 말했고, 다음으로 스스로 중앙 높은 무대에 서는 것, 自貴(자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행복하기 위한 이런 방법들은 제 스스로 깨우친 것이 아닙니다.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배우고 세월 속에서 실로 그렇구나 하고 체득한 것입니다.

自得이나 自貴나 밖에서 나의 행복을 찾으려하는 것이 헛됨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완전한 행복에 이르지 못하고, 마지막 하나가 남았습니다. 지금부터 그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사랑과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 삶에 있어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랑과 죽음 이 두 가지는 무척이나 반대되는 것이어서 마치 兩極端(양극단)에 놓인 것 같지만 실은 하나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을 갈구합니다. 왜 그토록 사랑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죽음을 숙명으로 하는 모든 존재는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고, 사랑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唯一(유일)한 방법은 사랑 밖에 없습니다.

대를 이어간다는 것은 일종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위입니다. 암수가 있는 생명체의 생식, 즉 유성 생식하는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대를 잇는다는 것은 先代(선대)는 죽지만 그를 닮은 後代(후대)가 살아가니 그것으로서 일정 부분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유성생식이란 암수가 있어 짝을 짓는다는 것이니, 짝을 짓게 하는 바로 그 힘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지요.

그러니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성 생식체는 사랑을 합니다. 또 사랑을 하다보면 반드시 내 짝이나 내 자식에게만 머물지 않게 됩니다.

동병상린, 병을 앓아본 사람은 남이 자신과 같은 병에 걸렸을 때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되고 그리하여 관심 내지는 정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유성 생식체는 죽음을 시름하면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모든 유성 생식체는 모르는 남이라도 어느 정도 정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앓아야만 하는 병이 죽음이기에 말입니다.

따라서 사랑의 감정은 유성 생식을 하는 생명체라면 반드시 내 울타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가질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신의 가족만이 아니라 주변과 더 나아가서 지역과 나라, 그리고 국경이란 인위적인 테두리 역시 우리가 가진 사랑의 감정을 제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랑은 사람 사이에서 만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젖먹이 동물의 눈빛을 읽을 수 있기에 금방 사랑을 주고 또 받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의 감정은 모든 동물, 또 더 나아가면 모든 생명체,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산과 들에 깔린 돌과 강에 대해서도 열려있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이 열려있는 자는 세상만물을 사랑하게 됩니다.

밖으로 흘러나가는 사랑의 감정, 흔히들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랑의 외부로 향한 흘러넘침을 어디에서 끊어야 한다는 그 한계나 법도는 없습니다.

존재하는 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해서 살아있는 자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고, 또 사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의 강도가 연인이나 자녀에 대한 그것보다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정리하면 사랑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행위이고 힘인 것입니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나의 사랑이 미친다는 것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힘 또한 그만큼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나는 죽겠지만, 내가 사랑한 세상은 그대로 이어 간다면 결과 나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결론 또는 그런 마음의 경지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대로 존재한다면 대개의 경우 소외감 또는 서운함을 느끼는 것이 보통입니다.

어두워오는 겨울에 내가 죽은 뒤, 내년 봄에도 저 아름다운 벚꽃은 피어날 것이며 새들은 지저귀겠지 하면 섭섭하시죠?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가슴에 가득한 자는 내가 원래 출발했던 자리, 그것을 흙이라 해도 좋고, 無(무)라고 해도 좋고, 극락이라 해도 좋으며 천국이라 해도 좋지만, 그 자리로 돌아간다 해도 밝게 태양이 빛나고 바람이 불어오며 온갖 새들과 동물들, 또 사람들과 내 자식들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저 아름다운 세상을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이니 무얼 그리 섭한 마음이 남겠습니까?

바로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니 마치 내가 남기고 가는 遺産(유산)인양 남아서 아름답게 존재하는데 설사 그것들이 나를 기리지 않는다 해도 섭섭해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궤변이 아닙니다. 감히 말하지만 이것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힘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여러 성인들이 해주신 말씀입니다.

세상을 떠나실 때 이런 마음 하나 가지면 됩니다. 저 세상이 여전히 아름답게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사랑을 주었기 때문이고 내가 애써 가꾸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죽음까지도 넘어선 당신에게 이른바 세속적인 영화, 부귀와 공명의 놀이가 약간 가볍게 느껴져 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전체를 정리하지요.

행복을 외부에서 얻으려 하지 말 것, 조건절(if clause)이 성취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일랑 버릴 것. 그냥 스스로 얻고 스스로 중앙 높은 무대로 오르면 된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하는 사랑의 감정을 억지로 내 속에 잡아두려고 애쓰지 말 것, 이상입니다.

더 간략하게 정리해봅니다.

행복은 안에서 찾고 사랑은 밖으로 주세요. 마구 주고 마구 던지세요. 그러면 더 행복해집니다.

당신은 이러고도 행복할 자신이 없으십니까? (혹시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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