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지켜보면서 (1)  _  2009.8.13
중국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알게 되고 왕래가 잦으면 그렇기 마련.

중국어도 제법 할 줄 알고, 한 때 그곳에서 지낸 적도 있으며 그 후로도 많이 다녀왔다. 다양한 사람들과 얘기도 나누었고 지금도 교류하는 친구가 여럿 있다. 그리고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밝은 편이니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그렇다고 중국 전문가이니 親中派(친중파)니 하는 말은 적극 사양한다.

중국인들을 두고 우리는 ‘쏼라 쏼라’, ‘짱께’ 이런 말들을 한다.

說來(설래), ‘수어라이’라고 발음하는데 그 의미는 ‘말하자면’ 이런 뜻이다. 또 짱께는 掌櫃(장궤), 돈 박스를 지키는 사람이란 의미이니 가게의 매니저나 주인을 말한다. 장차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라 여긴다.    

이 얘기는 그저 중국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변해가고 있는 지, 큰 맥락에선 나름 느끼고 있는 것들의 일부이다.  

오늘날 중국의 급속한 발전은 아시다 시피 중국의 동쪽과 남쪽 바다를 따라 이루어졌다.

그 대표로 동쪽의 상하이와 남쪽 홍콩과 가까운 광쩌우를 들 수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사람은 고인이 된 등소평으로서 그는 중국이 넓고 인구는 많으며 가진 것은 없으니 일단 누군가 먼저 부자가 되어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 先富論(선부론)을 펼치고 그 대상으로 수출에 유리한 바닷가 쪽에 힘을 실었다.

만나본 중국학자과 관료들 말로는 박정희의 수출 드라이브 전략을 중국 식으로 본뜬 것이라 했다. 중국이 우리의 발전 전략을 다방면에서 인용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과 대성공이었고, 상하이와 광쩌우는 대단히 발전했다. 그러나 등소평의  대권을 1993 년에 이어받은 강택민은 이른바 상해방 인사들을 중용했고 그로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등소평은 1997 년 사망했고 그의 유언대로 바다에 뿌려졌다. 우리로 치면 동해 바다에 신라 문무왕을 장례지낸 것과 유사하니 전 세계로 뻗어가겠다는 의미라 하겠다.)  

그러나 강택민에 이어 다시 2004 년에 대권을 받은 호금도 역시 등소평이 죽기 직전에 미리 안배해 놓았던 인물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등소평의 뜻이었던 것이다.

호금도는 이제 바닷가 지역이 많이 발전했고 그로 인해 내륙과 해안의 소득 격차가 심하니 내륙 쪽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는 정책을 폈다. 특히 빈부 격차와 지역 간 격차는 공산당의 통치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당당한 명분 앞에서 결국 강택민의 무리인 상해방 인사들은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물러가게 되었다.

후진타오-나는 호금도라 하지만-의 한문 이름은 胡錦濤이다.

재미난 것은 모택동부터 지도자들의 이름으로 나름의 점을 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 친구들에게도 얘기해주었더니 대단히 신기해했던 기억이 다시 새롭다.

모택동, 털 毛, 연못 澤, 동녘 東이니, 미세하나마 동쪽 나라 즉 중국에게 은택을 베푼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가 있다.

등소평은 鄧小平, 나라이름 鄧이지만 오른다는 의미로 볼 수 있고, 작으나마(小) 그런대로 무난한(平) 경제 기반으로 올려놓았다고 풀이할 수 있다.

등소평이 말한 바, 小康 경제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강택민, 江澤民이니 은택이 양자강을 따라 흘러 백성들에게 미친다는 의미가 되니 그 역시 그럴 듯 하다.

그리고 호금도, 胡錦濤에서 胡는 서쪽 오랑캐를 뜻하니 중국 서쪽 깊은 곳까지 錦濤, 즉 비단의 물결을 이룬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호금도는 바닷가 쪽이 아니라 서부 내륙 깊은 곳까지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편리한 대로 가져다 붙인 것이지만 제법 그럴 법 하지 않은가!

그러나 내륙 쪽 사람들은 여전히 불만이 크다. 특히 전통 중국의 중심이었던 곳, 낙양과 개봉, 정주가 있고 소림사가 있는 하남성 사람들은 엄청 불만이다.

그 중에 정주 시에서 사업하는 한 양반은 술자리에서 내게 말하길, 원래 하남성은 중국의 중심, 中原(중원)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저 바닷가 놈들, 옛날에는 吳越(오월)의 오랑캐, 홍콩이나 광저우의 남쪽은 南蠻(남만) 오랑캐 상것들이 득세를 하고 위세를 떨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당신 말이 옳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桑田碧海(상전벽해)라는 말도 있지 않냐고 너무 열 받지 말라고, 결국 나중에 다시 하남성이 중심이 될지 누가 아냐고 얘기해주었다.

그는 ‘그 때까지 언제 기다리냐고요!’ 하면서 분통을 터뜨렸고 나는 쓴 웃음을 지어야 했다. 이런 한탄은 내가 운명 상담을 하면서 무수히 너무나도 많이 들어야 했던 것이기도 하다. 딱지가 앉아 있다.

돌이켜보면 나라마다 시대에 따라 중심이 되는 곳이 있고 또 그 중심은 변해간다.

우리나라를 보면 근대화 과정에서 부산과 서울, 평양과 신의주를 잇는 선이 軸線(축선)이 되었다. 그러나 예전 조선시대에는 오히려 곡창지대인 호남이 더 경제의 중심이었다.

통일이 된다 해도 서울에서 함경도로 가는 선보다는 중국 때문에 신의주 선이 여전히 중요할 것이라 본다.

그렇듯이 중국도 수출로 일단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상하이와 광쩌우를 축으로 삼았던 것인데, 사실 중국 수 천 년 역사에 있어 상하이, 특히 광쩌우가 중심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국이 대륙 국가에서 해양 국가로 변신을 한 것이니 천지가 개변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북경 쪽 사람들도 여간 입이 부은 것이 아니었다. 명색이 수도인데 아니 저 바닷가 놈들이 돈을 좀 벌었다고 행세를 하니 도무지 그 꼴을 볼 수 없다는 얘기였다.

북경 사람들은 경제보다도 정치에 관심이 더 많고, 실리보다 명분에 집착한다. 정치의 중심이었기에 그런 것이라 한다.

정치에 관심이 많으면 일단 말을 엄청 잘 하게 된다. 갑론을박의 명인들이라 하겠다. 반면 상하이나 광쩌우의 사람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아예 말이 없다 해도 좋다. 물론 돈이 된다 싶으면 당장 간도 빼고 쓸개도 내어온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라는 점 주의하셔야 한다.)

특히 광쩌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재미 있다.

上有政策(상유정책)이면 下有對策(하유대책)이라는 말이 있다.

위에서 정책을 쓸 것 같으면 우리 밑바닥에선 당연히 그 대책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부정부패 근절을 위해 어떤 정책이 나오면 광쩌우 사람들은 솔직히 비웃어 버린다. ‘그래봐야 니들도 먹고자 하는 것이고 우리 역시 먹고자 하는 것이니 어림도 없다, 다 길이 있기 마련이다’ 식이다.

특히 과거 개방 이전 당에서 대약진 운동이나 북한의 천리마 운동과 같이 무리한 작업 지시가 내려오면 중앙과 먼 곳이라 지역 전체가 보고서만 그렇게 했다고 올릴 뿐이지 결국 알아서 적당히 일을 하던 경험이 누적된 결과, 광쩌우 사람들은 중앙의 허울에 치우친 지도력을 불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은 역대로 정치가 우선이었고 권력이 우선이었지 상업은 등한시 하던 나라였다. 그러니 정치권력의 중심인 북경 사람들에 대한 상업 중심의 상하이나 광쩌우 사람들의 반발심은 대단히 크다.

특히 광쩌우 사람들은 북경 사람을 두고 ‘허풍쟁이, 뻥쟁이’라 한다. 반대로 북경 사람들은 광쩌우 사람에 대해 ‘돈밖에 모르는 상것들’이라 한다.

북경 사람들도 신흥 바닷가 사람들도 중국의 권력적 부패가 심각하다는 점에 대해 모두 공감한다. 아니 누구나 공감한다. 배웠든 못 배웠든 간에 그냥 그렇다.

그런데 아주 인상적인 대화가 기억이 난다. 친하게 지낸 상당한 고위 관료의 말이다.  

업체 간에 큰 이권이 걸린 사업권을 놓고 경쟁을 하는데, 관료인 입장에서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느 업체를 선정해도 일정 부분 그 이익을 나누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좀 웃기는 말을 하면 그게 더 사회주의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어. 그리고 이건 사실 너희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아가서 선진국이라 자랑하는 서구나 미국도 결국 시늉 나름이지 마찬가지 아니겠어?

그의 말에 세상은 ‘程度(정도)의 문제’라는 애매한 답을 하면서 ‘하지만 너희는 좀 심하다’고 했더니 ‘국가 주도하에서 경제를 이끌고 있으니 그런 것이지 중국인이라서 특별히 부패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을 해왔다. 그 정도에서 우리의 그 주제에 대한 얘기는 종결되었다.

그랬다, 국가 주도의 경제가 지닌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그 양반의 권한 범위 밖이었기에. 언젠가 읽은 로마법에 관한 책에서 ‘권한 밖의 일에는 책임도 없다’는 그 비슷한 말이 문득 생각이 났었다.

중국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는 점에서 동질한 면도 느끼고 우리가 좀 더 먼저 발전했다는 면에서 느끼는 점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정치적 대처와 기술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 사람들답게 우리보다 한수 위라 느끼는 점도 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점에 대해 좀 더 얘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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