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풀기 위한 약간의 철학 강의  _  2009.8.12
스토아 철학의 금욕주의와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가 정반대에 있건만 거기에 견유학파까지 섞어가며 어떻게 동일선 상에 있느냐고 ‘이게 무슨 잡소리냐’고 방명록에 비난인지 욕인지 모를 글이 올라왔기에 지워버렸다.

허, 무식하면 저토록 용맹하구나 싶다.  

그러나 오해는 풀어주어야 하겠구나 싶어 재미없어 하는 철학에 관한 글을 잠깐 쓰고자 한다.

스토아 철학의 대강은 이렇다.

인간에게는 감정이나 정념과 같은 욕구들이 있으니 이는 자연에 대한 통찰에서 얻어지는 지혜를 통해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가 있으니 그것을 행하는 것을 덕이라 한다. 삶의 최고 목표는 통찰에서 얻어진 지혜에 바탕하여 덕을 실천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에피쿠로스의 쾌락론을 줄이면 이렇다.

사람은 감각적인 쾌락을 멀리 하고 간결한 생활을 통해 영혼의 평화를 찾는 것이 삶의 쾌락이고 행복이라는 것이다.

견유학파의 대강은 이렇다.

행복이란 외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덕을 행하는 생활 속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찰을 통한 깨달음으로 욕망을 다스리고 소유로부터 벗어난 삶의 방식을 실천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 학파는 강조하는 점에 있어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상호간에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주장을 어디선가 많이 대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理(리)와 같고 스토아의 덕도 유교의 仁(인) 그리고 德(덕)과 유사하다. 스토아 철학이 중세 교부철학의 뿌리가 된 것과 동아시아 세계에서 공자의 가르침이 성리학이라는 신유학으로 발전하면서 자리한 것과 거의 같다. 따라서 스토아 철학의 위치는 동양에서 유교에 해당된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어떤 면에서 노장의 사상과 같고, 견유학파의 주장은 불교와 대단히 유사한 면이 있다.  

다시 말해 엄밀히 같지는 않지만 동양의 儒佛道(유불도)와 서양의 철학간에는 상당히 유사한 흐름이 있다. 다만 역사적인 배경에 있어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기에 동일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大義(대의)는 거의 같다고 하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공맹의 말씀도 새기고 부처님의 말씀도 새기고 때로는 노장의 경계를 벗어난 주장에도 귀를 기울인다. 또 나아가서 성경 말씀도 듣는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두고 모순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 견유학파의 주장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 것이니 이는 유불도의 대의를 따른다는 것과도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부자로서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말콤 포브스’에 관해 얘기하는 글 속에 재미난 상상속의 대화를 넣었던 것이다. 부자도 좋지만 이런 것도 좋다는 얘기였다.

스토아 철학하면 단답식으로 금욕주의이고 에피쿠로스하면 쾌락, 견유학파하면 ‘거지 생활’만 떠올렸나 보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이런 내용들을 하나하나 모두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다소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그냥 넘어가다보면 언젠가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중용을 얘기하던 사람이...이게 무슨 잡소리냐’와 같은 실수는 삼갔으면 한다. 젊은 혈기의 탓으로 여길 뿐이다.

오해를 풀기 위해 성가심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철학 강의를 조금 했다. 아무쪼록 양해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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