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에 대하여 방명록에 어떤 분이 질문을 했다.
양인 붉은 색이 위에 있고 음인 파랑색은 아래에 있어 조화를 깨고 있으니 태극기를 옆으로 돌려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질문이었다.
그냥 보지 않은 척하고 지나려니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한편으로 두루 알아두셔야 할 사항이다 싶어 간단하게 글을 쓴다.
1882 년 고종황제가 창안한 태극기는 그 속에 나라와 겨레의 이념을 담았다. 전 세계 국기 중에서 가장 철학적인 도안을 담고 있는 우리의 상징 태극기이다.
먼저 질문해 오신 내용부터 답하고자 한다.
주역의 괘는 모두 64 개다.
주역이 재미난 점은 그 64 개의 괘중에서 가장 조화로운 상태를 상징하는 水火旣濟(수화기제)는 마지막이 아니라 그 직전인 63 번째 괘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위에 있는 물이 아래로 내려오고 아래의 불이 위로 오르니 調和(조화)를 상징하는 이 괘는 당연히 마지막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렇지가 않은 것일까? 그래야 깔끔하게 정리가 될 것 같은데?
이어 마지막 괘는 분리와 부조화를 의미하는 火水未濟(화수미제) 괘가 차지하고 있다. 위에 불은 위로 오르고 밑의 물은 밑으로 가니 離反(이반)을 뜻하건만 말이다?
태극문양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널리 쓰이는 지금의 형태는 이 화수미제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니 질문을 하신 분의 취지는 태극 문양이 왜 수화미제로 되어있지 않고 화수미제로 되어있냐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 주역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 아울러 고종황제가 착안했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易(역)은 ‘변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주역은 이 세상의 변화와 발전이 끝나는 법이 없고, 오히려 무궁히 변화하는 그 모습이 바로 세상의 기본이치임을 설파하는 철학이다.
그러니 64 괘 중 마지막 괘를 변화의 기틀을 상징하는 ‘화수미제’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고종황제가 태극기를 도안하면서 착안한 점도 바로 이 점이었다. 1882 년 당시 나라는 비록 허약했지만 그럼에도 무궁히 변화 발전할 것이며 때가 되면 부강한 나라라 될 것이라는 간절한 바람을 ‘화수미제’로 표현했던 것이다.
거기에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건괘와 곤괘를 주변에 깔고 다시 물과 불을 의미하는 감괘와 리괘를 두르니 이는 천지와 음양, 우주의 모든 기본과 모든 動力(동력)을 화수미제라는 태극 문양의 주변에 배치한 것이다.
천지는 영원한 배경이고, 물과 불은 생명이 이어가는 필수 요소이니 우리 겨레가 당장은 고난을 겪을지라도 장차 정신만 바로 차리면 얼마든지 변화 발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새긴 것이 바로 태극기이다.
아울러 변화의 단초인 ‘화수미제’ 태극 문양을 중앙에 배치하여 부단히 깨어있고 부단히 발전하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 우리 태극기이다.
질문을 받고 개탄스러웠지만 뭐 오늘의 세상이 다 그렇지 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그러기가 힘겨워 답을 하고 있다.
먼저는 오늘날 학교 교사들이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의 의미와 철학 정도도 가르칠 기본소양이 없다보니 그 결과 국민 중에 아는 자가 드물다는 사실이 그렇다.
초등학교면 초등학생에 맞게 가르치고, 중 고등학교면 그에 맞게끔 가르쳐서 우리 태극기가 무슨 의미인지 정도는 능히 알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 중에 기본이건만, 늘 이 점을 생각할 때마다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상징이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그저 무늬에 불과하고 잘 해야 알록달록한 디자인에 불과하다.
국가와 겨레의 기본 이념도 모르고 사는 백성을 어찌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질문하신 분에 대해 야단을 좀 쳐야 하겠다. 물론 질문하신 분에 한하는 것이 아니다.
궁금한 것이 있어 스스로 알아보고 연구해보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치를 깨닫는 기본이 된다는 점이다.
태극기는 나라의 국기이고 신성한 상징이다. 그러니 의문이 들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라리 태극기를 옆으로 돌려서 사용을 하던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라고 신성한 국기 앞에서 입에 담아선 안 될 말을 하고 있으니 어찌 오늘의 세월을 개탄하지 않으리오!
물어본 분에게 실로 미안한 마음이지만, 야단을 쳐서라도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아무래도 나는 ‘잔소리 꼰대’ 소리를 면치 못할 것만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