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굴무늬 -- 역사 이야기 시리즈 제7회  _  2009.7.5
이 글은 덩굴무늬의 유래와 역사에 관한 글이다.

덩굴풀은 스스로 서지 못하고 나무를 감고 오르거나 땅위를 기어가는 풀이다. 이런 풀의 모습을 문양으로 한 것이 덩굴무늬 또는 唐草紋(당초문)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덩굴풀을 蔓草(만초)라 해서 만초문이라 하는데, 과거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에 ‘唐’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기에 당초문이라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덩굴무늬라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된다.

어릴 적 학교에서 그리스의 기둥건축 양식에 대해 잠깐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코린트식, 뭐 이런 어휘들 말이다.

그 중에서 코린트 양식은 후기 양식으로서 기둥머리에 덩굴 풀인 '아칸더스(acanthus)' 잎 무늬로 장식되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장식성이 뛰어나 그리스인은 물론 로마인들도 대부분 이 양식대로 사원을 짓고 기념관을 지었다.

아칸더스는 그리스 아칸더스 지방에 흔했던 덩굴풀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사람들이 아칸더스 문양을 창조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원조는 따로 있으니 고대 이집트였다. 이집트 장식이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정복으로 하여 그리스에 전파되었고 더러는 기마민족인 스키타이 민족에까지 넘어가 중앙아시아를 돌아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까지 전해졌다.

따라서 이집트의 장식 문양은 전 세계 장식 문양의 원조라 하겠다.

그러나 이 양식을 가장 아름답게 발전시킨 것은 이슬람 문명이었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즉 무슬림들은 제국의 건너 편에 위치한 비잔티움 제국(흔히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이 아칸더스 무늬를 배운 다음 가장 추상적이고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개량했으니 이것이 바로 덩굴무늬이다.

덩굴무늬는 갖가지 형태를 무한히 짜 맞추는 방식으로서, 줄기에 중점을 두거나 잎을 강조하기도 한다. 기복을 이루는 곡선 혹은 나선으로 감기는 문양을 나타내기도 했다.

덩굴무늬의 장점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 간에 그 기본형이 항상 되풀이된다는 그 단순성에 있다. 도자기나 항아리에 새기든, 책 가장자리에 넣든, 또  1 미터 길이의 벽에 넣든 몇 백 미터에 걸치든 상관없이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이 문양을 새길 수 있는 것이다.

이슬람 문명의 예술 장식에서 실은 덩굴무늬와 함께 문자도안 또한 고도로  발달했으나 유럽과 중국 등 다른 문명권으로 전파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린 것은 역시 덩굴무늬였다.

덩굴무늬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뚜렷하게 인지하지 않아서 그렇지 생활 주변에서 대단히 자주 대하고 있다. 과자나 비스킷의 테두리를 둘러 새겨진 무늬, 테이블 보나 테이블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는 풀잎무늬가 바로 덩굴무늬이다.

앞서 잠깐 얘기했지만 이슬람 덩굴무늬 말고도 동아시아 쪽에서는 북 아시아를 통해 전해진 무늬가 있고 중국에서는 구름무늬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구름무늬를 雲紋(운문)이라 부른다.

그리고 조선 청화백자 등에 보이는 포도당초문, 모란당초문, 연화당초문 같은 양식이 자리 잡는 데에는 역시 가장 발달되고 추상화된 아름다움을 지닌 이슬람의 덩굴무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슬람 사람들이 이토록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아도 여전히 현대적인 덩굴무늬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일까?

세상에 우연이란 없듯이 여기에도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일반적인 설명은 이렇다.

이슬람의 양식을 보면 다른 문명권에 비해 무척이나 추상적이라는 점이 특색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아랍사람들이 수학과 천문학에 있어 기하학적 추상성을 선호했다는 것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또 하나, 이슬람은 우상숭배를 금지했기에 인간이나 동물의 모습을 그릴 수 없어서 그렇다는 주장도 유력하다. 무하마드가 남긴 코란에도 구체적인 모습을 지닌 그림을 부정적으로 언급한 대목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 예술가들은 장식의장 분야에 힘을 쏟았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최고의 단순하고 아름다운 덩굴무늬가 발전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보충적인 이유로서 아라비아 유목민족인 아랍인들은 이동생활을 하기에 家具(가구)보다는 장식 자체를 더 선호했다는 것도 있다.

이런 생활 전통은 유목 생활을 그만 둔 다음에도 이어져, 이슬람 사람들의 집에는 가구는 거의 없고 모자이크로 장식된 바닥에 아름답게 짜여진 융단 위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베개에 기대는 생활양식을 유지했다.

다 맞는 얘기이고 일리가 있는 얘기라 본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추가한다. 어쩌면 더 근원적인 설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건조하고 뜨거운 지방 사람들은 서늘함과 축축한 습기를 좋아한다. 이는 음양오행상 水氣(수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수기는 바로 추상성을 뜻한다. 불의 기운이 의미하는 바가 구체적인 모습, 즉 具象性(구상성)이라면 형태가 잡히지 않는 추상은 물의 기운이다.

이슬람 사람들이 추상성을 좋아하고 수학과 기하학을 좋아한 것은 근본적으로 燥熱(조열)한 환경에서 얻고자 하는 바로서 바로 오행상 水氣(수기)라는 점이다.

덩굴무늬가 고도로 추상화된 단순함으로 오늘날까지 장식문양의 최고봉으로 인정받는 것도 결국 이슬람의 水氣(수기)에 대한 추구가 원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유목민, 베두윈의 아내가 남긴 그들의 정취를 담은 시 한편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장중한 홀 보다는
미풍에 나부끼는 천막이,
아름다운 베일보다는
사막의 옷이 나는 좋다네,
천막 그늘에서 먹기에는 빵 껍질이 좋지
부푼 빵은 필요가 없다네,
지켜주는 것은 짖어대는 개
웃는 고양이여서는 안 된다네,
잠을 잘 때는 바람의 선율을 듣고 싶다네
템버린 소린 따위는 싫어,
남편의 농간보다는 젊은이의 맹렬한 칼이,
뚱뚱한 사내보다는 거칠고 호리호리한
사막 부족의 사내가 나는 좋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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