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수묵화  _  2009.7.3
수묵화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작년 8월, 합죽선에 그림을 그려 나눠주려고 한 것이 계기였다. 그러다가 사온 부채는 다 그리지 못하고 수묵화의 세계에 풍덩 빠진 것이다.

원래 수채화나 드로잉을 즐기던 터, 형태를 만들고 구도를 잡는 법에 대한 기본이 있기에 수묵화도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기술이 늘었고 또 늘고 있다.

모든 것이 그랬지만, 누군가에게 배워서 하기 보다는 실습 자체를 공부로 삼는 나인지라 처음엔 무척이나 황당했다.

붓에 먹을 먹인 다음 내 딴에는 종이 위에 가느다란 선을 그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그 여린 선은 넓적한 면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당황스럽고 짜증이 났다. 종이가 그런 가, 붓이 후진 가, 투덜거리다가 책방에 가서 수묵화 실기에 관한 책을 한 권 샀다.

면밀히 읽어보았지만 해결 방법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번지지 않을까, 화선지는 조금만 물이 닿아도 마구 번지니 방법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인사동 화방에 가서 좀 안 번지는 화선지를 사왔다. 화선지보다는 ‘한지’가 덜 번졌고 ‘장지’라는 종이도 그랬다. 그래서 음, 이제야 좀 되네 하면서 열심히 그렸다.

그러던 작년 9월 초 어느 날, 전에 사온 화선지가 야들야들해 보여 붓을 대고 선을 그었더니 이게 웬일! 선이 면으로 번지지 않고 그냥 선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 사이에 나도 모르게 선을 긋는 방법을 터득한 셈이었다. 드디어 화선지 다루는 방법을 익혔다 싶어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겨우 선 긋는 법을 배웠다고 좋은 그림이 나올 리는 만무했다. 몇 가지 애로가 있었지만, 아무리 진하게 먹을 써도 마르고 나면 먹빛이 진하지 않다는 문제였다.

다시 우울해진 나는 인사동 화방을 들렸다. 아저씨, 아무리 해도 먹이 연한 데, 뭐 좋은 먹이 없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작품용’ 먹이라고 표시된 일본제 먹을 권하는 것이었다. 사와서 써보니 과연 먹빛이 진했다. 그리고 나서 기존의 먹을 보니 그 역시 일본제였다. 신기해서 일제가 이렇게 질에 차이가 있을 리가 있나 싶어 자세히 보니 ‘송연묵’이라 쓰여 있었다.

알아보니 묵에는 송연묵과 유연묵이 있어 성질이 달랐다. 송연묵은 연하게 처리했을 때 운치가 있고 반대로 유연묵은 진하게 쓸 때 광채가 좋다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먹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와 뭐를 구분하지도 못하고 수묵화를 그리고 있었으니 한심하기에 앞서 상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송연묵에는 그 나름의 아름다운 운치가 있었다. 그걸 모르고 진하지 않다고 타박을 해댔으니 ‘아, 미안!’ 하는 마음이었다.

다시 시간이 두 달 여 지나자 비싼 화선지가 왜 좋은 가도 알게 되었다. 좋은 화선지는 물을 잘 흡수해서 확 번지는 맛이 있었다. 그러니 처음에 화방에 가서 사온 고급 화선지를 ‘에이, 못 쓰겠네’ 하고 밀쳐놓았던 것 역시 기량 부족이었음을 알았다.  

하루에 석장씩 그려대니 6 개월이 지나자 그림이 수백장을 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붓을 쓰는 것도 요령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마구잡이로 붓질을 해댔는데 마구잡이도 세월이 가고 회를 거듭하니 나름의 요령이 있음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저번에 사온 책을 펼쳐보니 책에 바로 내가 터득한 기법에 대해 써놓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마구잡이로 막 한다. 선생이 없으니 누가 말릴 것인가? 책을 선생으로 삼을 뿐인데 사실 책은 아무리 친절하게 핵심을 써놓아도 배우는 이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를 모른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터득하고 나면 책에 있는 말이 정답임을 알게 된다. 늘 이런 식이다, 나는.

붓을 좀 쓰게 되고 종이를 좀 다루게 되고 먹에 대해 약간 알게 되자, 급기야 나는 ‘건방 모드’로 돌변했다.

음, 수묵화는 用筆(용필)과 用墨(용묵)이 전부구나, 나머지야 뭐, 그러니까 구도야 타고난 천재이고 종이나 재료는 최대한 좋은 것을 써봤자 골프장 한 번 가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니 이제 남은 것은 대가들의 그림을 흉내 내는 것 아니겠어 하는 자만에 빠져들었다.

어차피 大家(대가)가 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니 즐기면 되리라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이가염’이란 중국 현대산수화의 대가에 관한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평소부터 늘 감탄해오던 그림이었는데, 이 양반이 수묵화로 뛰어든 것은 40 대 중반이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하고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가염에 비해 겨우 10 년 늦은 것밖에 없구나 하는 점이었다. 물론 그는 주변에 여러 대가들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던 점이 큰 차이이긴 하지만 아무튼 불과 10 년이구나 하는 점이 나의 대가에 대한 욕망, 대가는 아니더라도 中家(중가)는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저나 내나 종이에 붓으로 먹칠하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어! 확실히 나는 돈키호테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다. 좌충우돌형!

그런데 책에서 더욱 나를 불붙게 하는 글귀를 발견했다. 이가염은 수묵화로 진로를 바꾸면서 인장에 廢三千張(폐삼천장), 삼천 장을 그려 모조리 쓰레기통에 넣고 나면 경지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포부를 새겼다는 사실이었다.

계산해보았다. 하루 평균 2 장이라 치고 3000 장을 그리기 위해선 1500 일이 된다. 대충 5 년이면 3000 장을 그릴 수 있고 나는 좋은 선생이 없으니 핸디캡으로 다시 3 년을 더하면 8 년, 그러니 8 년만 졸라 먹칠을 해대면 그 양반 수준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내 나이 62 세 면 된다.

좋아, 그 때까지 그리자 하고 결심을 했다. 원래 수묵화를 제법 보았으니 이미 사정권 내에 들어와 있던 거라고 용기와 ‘급’건방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완전 미친 것은 아니기에. 원래 실력 없는 놈이 건방을 떨지 익은 벼는 머리를 숙인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건방을 떨어야 할 때라고 나는 판단한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그런데 참 이상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림을 막 완성했을 때는 ‘캬- 쥑인다’ 하고 도취된다. 그러다가 두 어 달이 지나 다시 보면 ‘야, 졸라 후지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 사이에 그림에 대한 안목이 계속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림도 보는 만큼 그리는 것이라 하겠다. 예술 한다는 것은 부단한 조울증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일희일비하면서 노는 예술.  

수많은 대가들의 그림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그러니 계속 그려야 하리라, 왼쪽으로 들이받고 오른 쪽으로 튀어나가면서. 삼천장을 불사르기 위해선 삼천장을 그려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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