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이르는 길(3)--도 시리즈 제 5 회  _  2009.5.15
많이 배우고 수련했다 해도 자신의 내공인 神功(신공)인지 헛된 공력인지는 세상에 나가 검증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은 이는 강호로 나가야 한다. 江湖出頭(강호출두)!

대표적 케이스로 싯다르타가 처음으로 법의 수레바퀴를 굴린 일, 初轉法輪(초전법륜)을 들 수 있다.

싯다르타가 사슴 동산, 그러니까 ‘녹야원’이라 불린 곳, ‘바라나시’ 교외의 ‘사르나트’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다섯 수행자에게 전수했던 일이다.

이로서 싯다르타는 ‘불멸’의 부처님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그것이다. 산은 높은 곳이니 하나님이 계신 하늘과 닿은 곳으로 그곳으로부터 내리는 말씀이니 垂訓(수훈)이다.

모두 두 성인의 강호출두 이후 깨달음을 검증받는 순간들인 것이다. 이 순간은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부처님의 경우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땅이 여섯 가지 모드(mode)로 진동을 하니 ‘육종진동’이라 한다.

그러나 강호출두 이후 그럭저럭 고수 소리는 듣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느끼는 경우도 많다.

중국 무당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장삼봉’은 처음에 소림사에서 무술을 익힌 뒤 강호로 나가 자신의 공력을 검증했지만 부족함을 느꼈다. 그리하여 다시 산-바로 무당산-으로 들어가 수련과 연구를 거듭 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장삼봉은 학과 뱀이 겨루는 모습을 보고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연구를 거듭한 결과 만들어낸 무술이 강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태극권’이었고 나중에 시험을 해 본 결과 천하무적이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로서 중국 내가무술의 본류인 무당파가 생겨난 것이고 장삼봉은 개산조사가 되었다.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재미나게 그려져 있다.

이처럼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세상에 나가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기성 종단의 경우라면 종단의 높은 사부로부터 인증을 받게 되는 데 이 또한 강호출두에 해당된다.  

흔히 불교 선종에서 ‘선사가 묻자 어느 제자가 홀연히 일어나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선사의 주장자를 걷어가 버렸다’는 얘기가 있는 바, 대단히 드라마틱한 검증의 형식이라 하겠다.

사실 이는 무협지와 동일한 구조, 기존의 절대고수가 이렇게 제의한다. 네가 나의 칼을 세 번만 받아내면 그로서 나는 무림을 떠나겠다고.

이에 신진고수가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세 번의 칼을 받아내면 기성의 절대고수는 狂笑(광소)와 함께 이런 말을 남기는 법.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누나 또는 청출어람이라, 또는 後生可畏(후생가외)로다.

물론 아직은 신진고수가 기성의 절대 고수를 능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성 고수는 신진고수가 십 년 뒤쯤이면 너끈히 자신의 경지를 능가할 것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왜 이토록 빠른 시점에서 물러나는 것일까?

여기에는 중요한 비밀이 있다.  

계속 버티고 개기다가 정작 나중에 신진고수에게 만인이 보는 앞에서 참패를 하느니 지금 정도에서 여유를 남기고 물러남이 가하다고 본 것이다.

周易(주역)에 나오는 유명한 말, 고 최규하 대통령이 해서 더 유명해진 亢龍有悔(항룡유회)는 실로 동양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 용이 하늘 끝까지 올라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경지에까지 가서 내리기 시작하면 자칫 ‘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없다’는 꼴이 될 까봐 여유를 두고 물러나는 것이다.

항룡유회 이게 실로 어려운가 보다.

우리 대통령들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항룡유회 정도를 이해할 수준이라면 그런 권력의 자리를 애초부터 탐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당선되는 순간이 절정인 것이고 취임부터 下山(하산)길임을 모른다. 알아도 모르게 되는 것인지 알고도 모르는 채 하는 것인지 처음부터 더 착각하게 되는 것인지 원! 대통령 해보지 않아 그 속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강호출두 이후 검증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 전부 끝인가?

당연 그렇지 않다.

물론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했으니 그 여행은 끝이 났다. 그러나 길이 어디 끝나는 법 보았던가? 깨달음 너머의 길도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들은 그 길이 어떤 길인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따름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호호당은 함부로 억측하지 않겠다.

다만 길은 이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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