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량예금에 대한 얘기(225회)를 했으니 이번에는 삼종세트 대출에 관한 얘기도 나름 재미가 있을 것 같아 해보고자 한다.
라틴어로 ‘contractum trinius’, 영어로 하면 triple contract 라고 할 수 있는 이 용어는 아직 한글로 번역된 적이 없기에 그냥 ‘三種(삼종)세트 계약’이라고 해두자.
재량예금이 금리를 인정하지 않던 로만 카톨릭의 교회법(canon law)을 피하기 위한 예금상의 편법이었다면, 이 삼종세트 계약은 대출을 위한 편법이었다.
A 은행이 B 에게 대출을 할 경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계약을 동시에 체결한다.
첫째 계약은 A 은행이 B 에게 1년 동안 1 억 원을 투자-빌려주는 것이 아니라-한다는 계약.
둘째 계약은 A 은행이 B 에게 1년 동안 1억 원을 투자함으로써 생기게 될 기대수익-가령 4천만 원이라고 가정하자-이 있을 것이니 그 권리를 B 로부터 2 천만 원을 받고 매도한다는 계약.
셋째 계약은 A 은행의 투자에 대한 위험을 B 가 보증한다는 일종의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A 은행은 그 대가로 B 에게 5 백만 원을 지불한다는 내용의 계약.
이런 3 가지 계약을 동시에 체결하고 1억 원을 대출해주면, 金利(금리)라는 말은 3 가지 계약 어디에도 없지만 사실상 1 년간 대출에 대한 金利(금리)는 1천5백만 원이 된다. 15 % 대출인 셈이다.
대출할 때 이런 3 가지 계약을 동시 체결하기에 contractum trinius 라 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금리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 세계에서 은행이 대출을 할 때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이 3종 세트 계약의 변형이다.
최근 10 년 사이 미디어들은 ‘금융혁신’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건 뭘 잘 몰라서 하는 얘기, 금리를 인정하지 않는 중세 교회 치하에서 은행업자들이 만들어낸 이런 기법들이야말로 ‘첨단의 금융혁신’이었던 것이다.
예금에 대한 이자는 이면 계약을 통한 선물(gift)의 개념으로 처리하는 재량예금, 대출에 대한 이자는 투자에 따른 이익배분과 보험료의 개념으로 대치해서 3종 세트 계약, contractum trinius 로 금융 비즈니스를 했던 중세였다.
인간의 잔머리는 이토록 탁월하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上有政策(상유정책)이면 下有對策(하유대책)이라.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그 대책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중앙 정부가 정책, 가령 부패방지책을 내놓으면, 省(성) 단위에선 이행하는 척 시늉은 하되 정작 그 아래 市(시)나 縣(현) 단위로 내려가면 중앙의 정책을 헛되게 만들 수 있는 대비책을 만들게 된다는 말이다.
중국은 오늘날에도 부패가 만연하다. 우리 사회의 부패가 보다 교묘해지고 은밀해졌다면 중국의 부패는 길거리에서 거의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고 그로써 질서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중앙 정부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워낙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인지라 어느 선만 넘어서지 않으면 묵인하고 있다.
다만 중앙 권력의 교체가 이루어질 경우, 갑자기 부정부패에 대한 고소고발과 법집행이 급증한다. 강택민에게서 지금의 호금도로 권력이 이전될 때 많은 부패사범이 처리되었다.
갑자기 중국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인간의 잔머리가 얼마나 탁월한 가를 말하기 위함이다. 어떤 정책이 나와도 그것이 기존의 이해관계에 부담을 줄 경우, 사람들은 얼마든지 그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최근 모 국세청 직원이 그림을 통해 부정한 일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결과가 나와야만 진위를 알 수 있겠지만, 그 수법 자체는 수백년 전 중국 청나라 때 이미 일반화된 부패의 기법이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가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회가 어떻게 전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이 장기적으로 사회의 번영과 발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유적으로 제시한 개념이 ‘神(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그 ‘인비지블 핸드’의 대표적인 메카니즘은 바로 ‘시장’이었지만, 부패의 영역에서도 보이지 않는 ‘그 손’이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를 나는 ‘부패의 시장논리’라 이름을 붙이고 있다.
부패의 시장논리를 예로 들면 이렇다.
오늘날 정부의 역할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권력의 분산에 따라 지방자치제까지 들어섰다.
이에 따라 부패의 시장논리가 활개를 칠 수 있는 여지는 더 커져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에 따라 문화와 역사적 배경에 따라 부패의 문화와 스타일이 다를 뿐, 부패의 여지는 엄밀히 말하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별로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부패의 사회학’이란 제목으로 책을 한 권 써볼 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 적이 있다.
사업 규모도 크고 국가적으로도 파급효과가 커서 정부가 관여하게 된 대단위 사업 안건이 있고 이에 여러 사업체가 경쟁하는 경우가 있다.
정부가 심사하고 판별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일을 하는 것은 사람, 즉 고위직 공무원이나 장관일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정권의 실세들이 관여하기 마련이고.
그 공무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利權(이권)이 크게 엇갈린다. 기업체 입장에선 운명이 엇갈리게 될 수도 있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지 않은가!
그런데 정작 그 엄청난 이권을 결정하는 고위직 공무원의 경우, 표면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어떤 결정을 해도 그로 인한 이익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냥 정해진 급여를 받을 뿐이다.
‘내 손에 수천 수조원의 이익이 달려 있는데, 정작 나에게는 생기는 것이 없다니’ 하고 그 공무원은 혼자 속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은 어떤 면에서 공평하지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심리적 틈새로 ‘부패의 보이지 않는 손’이 들어올 여지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물론 이 경우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정부가 사업권을 판매하는 형식이다. 가령 어느 업체가 ‘출연금’을 더 많이 써서 내느냐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중차대한 국가적 사업을 그저 출연금을 많이 내는 기업에게 준다는 생각도 많은 문제점을 가질 수 있다.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는지 자격 요건을 심사해야 될 것이 아닌가!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국가적 규모의 큰 사업이 여태껏 입찰 방식으로 정해진 선례는 없다.
사실 자격요건만을 정하고 그 기준을 통과한 업체들을 상대로 입찰하는 방식이 하자고 들면 못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에는 뭔가 다양한 요인들이 그 뒤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 뒤에 도사린 논리 중에 가장 유력한 것이 바로 ‘부패의 시장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떡나누기가 과연 옳은 이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配分(배분)의 正義(정의)야말로 가장 중요한 논리이지만, 그것을 부단히 교란시키는 인간들의 창의성(?)에 의한 ‘부패의 시장논리’도 엄연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정부의 개입과 간섭이 커질수록 그 여지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흔히들 시장논리를 지지하면 보수이고 정부의 개입을 지지하면 진보라고 하지만, 이 구분법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부의 개입이 커짐으로써 ‘부패의 보이지 않는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은 공식적으로 형식적으로 공직의 부패가 가장 적은 나라로 공히 인정받는 나라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부시의 아들 부시 주니어가 대통령을 두 번씩이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逆說(역설)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재임 중에 不淨(부정)한 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여러 이해 당사자들에게 善心(선심)을 베풀고 그 대가로 무언가를 받긴 받았는데 그 정체가 바로 아들 부시의 대통령 당선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권력에 대한 스탁 옵션’을 대가로 받은 셈이고 아들 부시는 그 옵션을 행사하여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 내 설명이다.
‘부패의 보이지 않는 시장’은 또 다른 구석을 지니고 있다.
‘비밀 회원제’라는 사실이고 회원이 되려면 자격 요건이 있고 입회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비밀 회원제의 형식과 문화, 입회비를 어떻게 내느냐가 나라별로 문화별로 차이가 있을 뿐, 속세의 ‘꽃’인 부패는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가기 마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경우 지방자치제가 제법 시간이 지난 결과, 지자체의 건물이 호화, 대형화되고 있다. 재미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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